무너지기 전 베트남에 갔습니다. #42

그 많은 눈물 4

by 영순

힘들면 울어도 된다고 했다. 슬프면 울어도 된다고 했다. 마음껏, 실컷 울어도 된다고 했다. 책에서도 그랬고, 강연가의 영상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우리는 울어도 된다는 울음의 허락이 필요한 게 아니다.




낯선 타국의 바닷가에서 2시간 동안 눈물이 흘렀던 것을 보면, 울음은 허락의 문제가 아니다. 그 바다에서 누가 갑자기 허락해줘서 눈물이 난건 아니니까. 책이나 영상에서, 울어도 된다는 말을 들으면, 눈치보던 아이가 마치 허락 받는 거 같아서, 순간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지만, 결국 우리는 울지 못하고 살아간다.




울음은 허락이 아니라, 장소, 때, 사람, 방법의 문제다.




울고 싶어도 언제, 어디서 운단 말인가? 밤에 잠들기 전에 펑펑 운단 말인가? 아침 출근하는 차 안에서 운단 말인가? 점심을 일찍 먹고 카페에서 운단 말인가? 아니면 누가 볼 수 있으니 회사 화장실에서 운단 말인가? 커플들이 가득한 바닷가에서 운단 말인가?




울고 싶어도 누구 앞에서 운단 말인가? 등을 토닥여주거나 눈물을 닦아줄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서럽게 운단 말인가? 왜 우는지 의아해하면서 놀라는 친구 앞에서 운단 말인가? 궁상 좀 떨지 말라고 하는 가족 앞에서 운단 말인가?




가만히 돌이켜보면, 울어도 된다는 허락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울어도 되는 때, 울어도 되는 장소, 울어도 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이렇게나 끙끙, 작은 가슴에 눈물을 담아두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확실히 그런 거 같다.




우리나라의 문화나, 나의 성별, 나의 성격 때문에 울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아니 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재된 무언의 교육이나 압박 때문에.




20살, 처음으로 소주를 마셨다. 술 기운에 잠이 금방 들었는데, 새벽에 잠이 깼다. 다시 잠들지 못해 안절부절 했다. 무엇을 해야할지도 몰랐다. 그런 날들이 몇번 더 반복되고 나서 알았다. 소주때문에 속이 타서, 목이 말라서 잠이 깬 것이다. 그후로, 나는 잠이 깨면 냉수를 한 컵 들이키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소주를 마시면 새벽에 냉수 한 컵이 필요하다.




눈물도, 울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내 마음에 해주는 일. 몰랐으면 모를까 알았으니 마음을 위해 울어주는 일. 울기 위해, 적당한 때와, 장소를 찾아 울어주는 일.



나에게 울음이 필요하다는 것, 눈물이 흘러내려야 한다는 것을 불혹의 나이를 넘길때까지 몰랐다니, 이 세상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니 슬픈 일이다.




자식에게, 젊은이에게, 후배에게 말해주고 싶다. 살면서 가슴에 쌓이는 눈물은 반드시 흘려보내야 하는데, 그 눈물이 가장 편안하게, 잘 흘러내릴 장소, 때, 사람을 선택해서 잘 흘려보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