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전 베트남에 갔습니다. #58

속임수

by 영순

오늘부터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새로운 치유를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마치, 모든 것을 처음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느끼기로 했다. 늘 가던 식당이 저만치 앞에 보인다. 식당이 점점 다가오자, 나는 오늘이 베트남 첫날이고, 이것이 첫끼라고 생각했다. 식당에 막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 뇌는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에 있는 사람이 강도임을 어제 경험했는데, 오늘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우리의 뇌는 이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어제 경험한 강력한 감정적 표지가 나의 뇌 신경회로에 각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식의 사춘기로 인해, 온 마음이 쑥대밭이 되고 분노로 불타올랐을 때 나는 몇번이고, 베트남의 음식, 경치, 경험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며 부정적 표지를 잔뜩 표시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새로운 생각을 주입하고 있다. 애시당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직장동료를 오늘부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거나, 끔찍한 관계에 놓여있는 배우자를 보며 그 사람의 장점을 생각하는 것이 아무런 효과가 없고, 오히려 내 마음에는 더 안 좋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나는 그 식당으로 그냥 들어가려 했던 것이다. 직장동료와 배우자는 헤어지기 전에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주체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음식과 경험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훨씬 더 쉽게 리셋이 가능하다.




정답은 이거였다. '환경을 바꾸는 것'. 전혀 새로운 식당에 가서, 아무것도 몰라서 두리번 거리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 나의 뇌는 조금은 더 잘 속을 것이다. 뻔히 아는 식당에 가서, 오늘이 첫날이라고 어거지 쓰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는 Grab을 켜서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가본 적 없는 시장을 목적지로 정했다. 어디에 식당이 있는지, 어떤 식당이 있는지 전혀 모른 채 시장 근처에서 내렸다. 그리고, 마치 처음 온 사람처럼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설레임으로 두리번 거리며 걸었다. 그러자, 식당들이 중간 중간 보였다. 그중에서 현지인들이 많이 갈 것 같은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사진 조차 없는 메뉴를 보며, 사진을 찍고, 번역기를 돌리며 10분간 끙끙 거렸다. 그렇게 주문한 음식은 10분 뒤에 나왔고, 먹어본 적 없는 새로운 메뉴였다. 맛이 어떨지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첫 한입을 맛보는 순간, 나의 뇌는 온갖 새로움을 탐색하며 충분히 그 정보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뇌를 거의 속인 것 같았다. 장소도 모르는 곳이고, 식당도 모르는 곳이고, 음식도 모르는 것이고, 모든 게 모르는 것이었다.




"오늘이 베트남 처음이야. 알았지? 이 음식 맛을 잘 느껴봐.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치유하자."




식사를 다 하고 나오면서 난 조금 행복했다. 난 조금 미소가 나왔다. 난 조금 발걸음이 가벼웠다. 난 조금 고통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공을 바꿀 수 없으면, 배경과 무대를 바꾸어본다. 그럼 그 주인공은 배경과 무대에 맞게 다시 연기를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감독은 바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