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의 재해석
자식 놈이 모두 망쳐버린 베트남에서 일주일간 느꼈던 나의 평온한 마음과 치유 과정을 새로 시작하는데 무엇이 필요할지,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될지 생각해야 했다. 단순히, '훌훌털자', '잊어버리자', '오늘부터 새로 시작이다'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새로운 스테이지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은 아이들이 하는 게임처럼, 새로운 스테이지부터 말끔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이전의 기억을 안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날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단 하나도.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도, 이미 나는 베트남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있었고, 쉬고 싶어도 이미 일을 하지 않고 쉬는 날들이었다. 경치 좋은 곳에서 멋진 풍경을 담고 싶어도, 이미 그러고 있었다. 어느 하나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되면, 나에게 새로운 것을 주는 것이 되지만, 늘 하고 있던 것에서는 나에게 따로 해줄 것이 없다. 이런 경우에는, 하지 않던 것을 새로 주어야 모든 과정이 새로 시작되는데, 이미 나는 가능한 모든 것을 나에게 해주고 있었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 나의 일상에 줄 수 있는 변화는 전혀 없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새로 해줄 것이 없는데, 나 자신에게 어떻게 새로운 시작을 알려줄 수 있을까? 이 질문과 고민은 내가 한국에서 하던 고민과 정확히 같은 것이었다. 새로울 것 없는 한국에서의 모든 것이 나를 새롭게 하지 못했었다. 익숙한 것은 고통이 되고, 새로운 것이 없는 삶은 더 큰 고통이 되었다. 처음 베트남에 와서, 새로운 것을 먹고, 새로운 곳에 가보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새로움을 줄 수 있었다. 그 새로움이 아직 익숙함이 되지 않았는데, 사춘기 자식 놈의 소식은 그 새로움을 아무 의미없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끝없이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우리 인간에게, 한정되어 있는 자원에서 새로움을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방법은 논리적으로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익숙한 것을 매번 새로 해석해서,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것.
익숙함과 새로움은 뇌가 인식하는 꼬리표에 지나지 않는다. 즉, 늘 하던 행동도, 마치 새로운 행동을 하는 것처럼 재해석 하면 그것은 새로운 것이 된다. 우리의 뇌가 가진 능력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매일 느끼는 햇살도, "오늘은 선선한 바람이 부니 햇살이 더욱 좋은 걸?", "눈이 오는 겨울인데도 햇살이 비추니까 마냥 춥지만은 않은 걸?", "오늘은 뜨거운 햇살이지만, 덕분에 빨래가 아주 뽀송뽀송하게 마르겠는 걸?" 이렇게, 같은 것도 매번 새롭게 해석한다면, 같은 것도 같은 것이 아니게 된다.
나는 일주일간 내가 먹던 음식과 가던 모든 곳을 새롭게 인식하고 새롭게 느끼기로 결심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학기에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마주하며 들뜬 학생처럼.
이른 아침, 나는 늘 가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늘 먹던 그것을 먹을 것이지만, 오늘이 베트남 첫날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그랬다. 나 자신은 이게 모두 가짜인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해야 내가 살 수 있고, 고통속에 아파하는 나 자신을 구할 수 있기에, 그렇게 믿기로 한다. 이것도 반복하다보면, 종교처럼, 정치색처럼, 신념처럼, 습관처럼 내 것이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