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전 베트남에 갔습니다. #56

새로 시작

by 영순

매년 1월 1일이 되거나, 새학기가 되면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새로 시작하려 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들, 게을러서 하지 못한 일들, 미뤄뒀던 일들과 단절하고 새로운 것들로 새해와 새학기를 채우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새로 시작하는 것이 꼭 새해와 새학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애써 일궈놓은 것이 망가져도 새로 시작해야 하고, 어렵게 얻은 것을 도난당해도 새로 시작해야 하고, 누군가가 나를 이용해도 새로 시작해야 한다. 다이어트나 금주, 금연, 영어회화처럼 이루고 싶은 소망뿐만 아니라, 우리 삶이 끔찍하고, 절망적이고, 쓰라리고, 고통스러울 때도 언제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선택권이 없다.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은 끝없이 바닥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희망과 기쁨, 즐거움 같은 긍정적 감정들은 끝없이 올라가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반드시 어느 한계점이 되면, 그 감정은 사그라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좌절, 실망, 슬픔, 분노, 상실 같은 부정적 감정은 하한선 없이 끝없이 증폭되어 우리 영혼을 더 깊은 곳으로 끌고 내려간다. 영혼이 완전히 무너질때까지.



부정적 감정에 깊이 잠기면 스스로 나오는 것이 매우 힘들지만, 반드시 나오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이 여러 명 와도 못 구할 만큼 더 깊이 빠져들 수 있기 때문에.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빠져나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내가 조금 빠져나오면, 타인이 나를 돕는 것도 훨씬 더 수월해진다.




나는 갑자기, 베트남의 첫 일주일 동안 느꼈던 소소하고, 밝고, 간지러웠던 그 행복, 그 여유로움, 그 따뜻함, 그 달달함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너무나도 간절히. 한국에서 날아온 사춘기 자식이 친 사고 문자를 받고 폐허가 되어버린 마음과 극단적으로 대비가 되었다. 그래서, 그 작은 기쁨들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새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베트남에 처음 온 것처럼, 다시 처음부터 기쁘게 살며 치유하고 싶어졌다.




"진짜로 처음 베트남에 도착한게 아니라, 일주일간 소소한 행복과 여유를 느끼는 법을 알아두었으니, 내가 지었던 작은 성은 완전히 무너진게 아니야. 이전보다 더 빨리 만들 수 있어."




난 동생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너도 알다시피, 형이 죽을만큼 힘들어서 죽기 직전에 한국을 떠나서 베트남에 왔어. 이미 그 자식 때문에 일주일은 날아갔어. 남은 29일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아. 내가 귀국할때까지 니가 대신 아빠 노릇 좀 해. 형수하고 연락주고 받으면서 일들을 좀 처리해줘.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리 큰 일, 아무리 끔찍한 일이 일어나도, 절대로 나한테 연락하지마. 어떤 소식도 들리게도 하지마. 형한테 딱 29일만 시간을 줘. 형도 살아야 하잖아. 그래야 내일이 있지. 우리 모두에게."




동생에게 답이 왔다.


"형. 연락이 안되서 걱정돼 죽을 뻔 했잖아. 왜 그렇게 메세지도 안 읽고, 답장도 안하고 그래? 얼마나 걱정 했는 줄 알아? 알았어. 형 말 알았으니까, 걱정말고 형 생각만 하고 푹 쉬어. 맛있는 것도 먹고. 절대로 형한테 연락 안 가게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