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남과 되돌아감
나의 불안감은 결국 두시간 만에 휴대폰을 켜게 했다. 고통의 자극으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되고 싶은 감정이 가득 찼는데도, 모르는 것에 대한 고통,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은 자극 차단로를 다시 열게 만들었다. 인간의 고통과 감정은 이토록 복잡하다. 그리고, 자신을 더 힘들게 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아내와 동생으로부터 여러 개의 메세지가 왔다. 그것을 열어보면, 나는 한계를 모르고 폭발할 것 같아서 온 마음을 다해 클릭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쌓여가는 메세지를 보면서도 꾹꾹 불안을 눌러 담았다. 생각 같아서는 귀국할때까지 남은 29일간 완전하게 연락두절을 하고 싶었다. 아주 지긋지긋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29일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 내가 있던 자리에 차곡차고 쌓여가고, 귀국해서 그것들을 마주하면, 내가 베트남에서 치유한 모든 것은 순식간에 날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 형제자매, 배우자처럼 가까운 관계도 극단적인 경우에는 모두 끊어낼 수 있다. 힘들긴 해도 단절해낼 수 있는 관계다. 즉, 이들로 인해 삶이 지옥이고 영혼이 결국 무너져 완전히 죽는 지경에 이른다면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자식은 다르다. 미성년자 자식은 다르다. 끊어낼 수도 없고, 멈추게 할 수도 없다. 오는 공격을 무방비 상태로 전부 받아내야 한다. 끝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자식이 벌인 일들을 수습하기 위해, 허리를 숙여야 하고, 합의를 해야 하고, 돈을 물어줘야 한다. 자식은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연락은 받지 않으며 필요한 것만 요구한다. 절대로 절대로 끝나지 않는 지옥이다. 20살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이를 악물고 버티지만, 20살은 너무 먼 이야기다. 하루 하루가 1분씩 가는 것 같다.
우린 저마다 힘든 길을 걷고 있다. 누군가는 아주 끔찍한 경험을 하고, 끔찍한 관계를 맺고, 끔찍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런 고통은, 내가 베트남으로 출국하듯이 한번에 피하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멈춤없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고통이 멈추지 않고 영혼을 찌르면, 영혼은 마침내 스러진다. 설사 나처럼, 고통을 피해 잠시 달아났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다.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제자리로 돌아가면, 다시 시작이다. 아니, 밀린 것 까지 합쳐서 시작이다.
끊어낼 수 없는 인간관계에서 겪는 고통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위로한답시고 "사춘기, 그거 다 지나가. 뭘 그렇게 힘들어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과연 당신은 어느 정도까지 겪어봤느냐고, 얼마의 기간 동안 겪어봤냐고, 그 이전에, 그 동안에, 내가 어떻게 노력했는지 당신이 아느냐고 따져묻고 소리지르고 싶다. 생각만해도 폭력성이 차오른다.
휴... 난... 이제 대상도 가리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분노가 차오르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쌓여가는 카톡, 베트남에서의 남은 29일, 한국으로의 되돌아감. 난 어떻게 될까?
일주일간 소꿉장난처럼 이것 저것을 생각하고, 먹고, 경험했던 시간들이 모두 헛짓거리 같았다. 골절이 되고, 출혈이 멈추지 않고, 고름이 가득한데, 뽀로로 밴드 두어개 붙이고 좋아하는 꼴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