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등을 돌려
난 동생에게 온 문자를 확인하고 나서, 휴대폰을 껐다.
일주일간 소중하게 하나씩 쌓은 치유의 성을 신이 다시 무참히 짓밟아버린 느낌이었다. 내가 믿던 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언제나 감사와 찬양만을 입에 올리던 그 많은 사람들의 말들이 떠올라서, 이젠 그들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사랑이시다. 자비로우시다. 항상 함께 하신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사람의 때와 그분은 때는 다르다.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 고통이라는 포장지를 열어보면 선물이 들어 있다. 의심하면 안된다."
한때는 나 역시 철석같이 믿고 되뇌이던 말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북한의 김일성 찬양과 뭐가 다를까 싶다. 이렇게 말하면, 그 사람들은 사탄이 씌였다고 벌떼같이 달려들려나?
어쨌든, 난 신에게서 등을 돌리기로 했다.
신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한 인간도, 자기 자식이 번번히 꺾여 넘어지면 그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식이 도박빚에 시달려도, 자신의 노후 생각하지 않고 전재산을 팔아서 해결해주려 한다. 자식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어도,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양심마저 저버린다. 그 어떤 일이라도,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완전무결한 신이 끝없이 추락하고 죽어가는 자식을 보고 그대로 둔다.
가정의 평화만 바란다고, 가족이 서로 사랑하기를 원한다고 그렇게 피맺히게 절규했건만. 신은 우리 가정의 평화와 사랑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난 등을 돌리기로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신이 먼저 내게서 등을 돌렸는지도 모른다. 이미 등을 돌린 부모에게 끝없이 애원하며 자식이게 해달라고 간청했던 것 같다.
신을 믿는 누군가와 자식의 사춘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가 말했다.
"저도 우리 애 사춘기가 너무 심했었는데, 그럴때마다 남편하고 더욱 믿음으로 매달리고 손잡고 기도했어요. 그랬더니, 결국 응답해주시더라구요. 제대하고 나더니 자격증도 따려고 하고, 변하더라구요."
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아니, 그게 때가 되서 멈춘건지, 신의 응답인지 어떻게 알아요?"
그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힘들때일수록 우리 부부가 더 간절히 기도했기에, 응답해주셔서 멈춘 거죠. 안 멈추는 애들도 있는데요? 멈춘 거 보면 응답하신거죠."
한 번 더 물어봤다.
"아니, 그 응답이 왜 한창 고통받을때가 아니라, 제대하고 난 다음, 즉 모든 게 지나간 다음이었을까요? 기우제를 지내서 비가 멈춘 건지, 비가 그칠 때까지 기우제를 올린건지 말이에요."
그랬더니 날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 보니까 믿음이 약하시네요. 그러니까 아직 애 사춘기가 심한거예요. 더 믿고 기도하세요. 반드시 응답해주실거에요. 그분의 뜻은 아무도 몰라요."
내가 등을 돌린 신에게, 그는 절대적인 믿음을 품고 있었다. 절대로 의심의 말을 바깥으로 내서는 안되는 북한 주민처럼 말이다. 그는 정말 믿는걸까? 믿으려고 노력하는 걸까? 안 믿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걸까?
신에게서 등을 돌리자, 신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빠르게 사라져갔다. 없는 존재에게 감정을 느끼는 것은 멍청한 일이니까. 하지만, 즉시 사라지지는 않았다. 신을 마음에 두었던 날이 너무 길었기에.
휴대폰을 꺼놓은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불안했다. 그 모든 고통으로부터 단절되고 싶어했었는데, 막상 단절되니 불안이 극에 달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단절을 원한 게 아니었나보다. 해결되기를 원했던 거 같다. 한때, 말을 아예 듣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자식과 아내를 보며, 영원히 숨는 것을 상상했었다. 끔찍한 고통을 쉬지 않고 가하는 그들로부터 영원히 사라지고 싶었었다. 하지만, 휴대폰을 끈 한 시간 동안 느낌 감정을 미뤄보면, 숨어서도 나는 결코 행복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자극되는 고통은 단절되었지만, 불안의 고통이 온통 마음을 덮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걸까? 내가 치유를 할 수 있기나 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