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라는 걸 알게 되고

우린 더 좋아졌을까요?

by 영순

함박눈이 연이어 오던

예쁜 풍경의 명절 연휴가 끝나고

찾아온 주말,

밖은 미세 먼지가 너무 심하다.




미세 먼지는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세먼지'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것은 우리 인식 속에 들어와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이 된다.


실제로 존재하는가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미세 먼지라는 말이 없었다.


집에서 뛰거나,

이불 가지고 장난치면,

부모님으로부터

먼지 난다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봄철이 되면,

황사와 꽃가루가

중국에서 넘어온다는 것 정도가

먼지의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미세 먼지가 무엇인지 다 안다.


미세 먼지가 무엇인지 알기에,

좋은 점도 있다.


그것이 폐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마스크는 어느 등급이어야 하는지

오늘은 미세 먼지 수준이 어떻게 되는지 등,

필요한 모든 정보를 알고

그게 맞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과 관련된 단어들은
어떨까?


'미세먼지'처럼
우리 마음에 도움을 줄까?


스트레스, 짜증, 트라우마

이런 단어들은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도움을 줄까?


아니면,

더욱 해를 끼칠까?




나 이것에 트라우마 있잖아~

아~ 짜증나~

아~ 스트레스 받아~


이렇게 현재의 상황에 대한

판결을 내리고,

그것과 어울리는 감정을

즉시 우리 마음으로

소환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미세먼지를 가득 모아서

비닐봉투에 넣고,

조그만 입구에 코를 대고

깊이 들이마시는 것은 아닐까?





스트레스, 짜증, 트라우마란 단어가 없던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은

그냥 적당히 넘어가는

마음의 유연함이 있지 않았을까?




공황장애는 정확한 진단과 함께

치료가 필요하므로,

반드시 그 단어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짜증, 스트레스, 트라우마

이런 단어는 일상에서

너무 자주 사용하여,

그런 존재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며,

고통받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우리 마음의 상처를 줄이기 위해,

치유해야 할 것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