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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천사라면

인간인 지금보다 나을까요?

by 영순

내가 생각이 많다는 것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지난 나의 삶 군데 군데에서

말해주어 알고 있다.




내가 예민하다는 것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지난 나의 삶 군데 군데에서

말해주어 알고 있다.




내가 소심하다는 것은

나와 까운 사람들이

지난 나의 삶 군데 군데에서

말해주어 알고 있다.




언젠가 나의 때가 오면,

생각이 많은 나는

그 생각으로 많은 좋은 것들을

할 수 있음을 믿는다.




언젠가 나의 때가 오면,

나의 예민함은 섬세함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공감하고,

그것으로 많은 좋은 것들을

할 수 있음을 믿는다.




언젠가 나의 때가 오면,

나의 소심함은 신중함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그것으로 많은 좋은 것들을

할 수 있음을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때가 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끝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나는,


멈추지 않는 고통속에 살고 있는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악화되는 것을 보고 있는 나는,


내가 가진 많은 것들,

내가 믿는 많은 것들이

지금은 소용없음을 안다.



그리고 나 자신을 탓한다.


난 왜 이렇게 생각이 많아서,

고통을 더 끌어오는 것일까?


난 왜 이렇게 예민해서,

고통을 더 심하게 느끼는 것일까?


난 왜 이렇게 소심해서,

고통을 놓아주지 못하는 것일까?



문득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나의 삶이 결정되기 전,

신이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고.




너의 삶은 너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만약

천사를 선택하면,

고통없는 세상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


내가 주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영원히 사는 것이다.


다만, 어떠한 기쁨도, 즐거움도,

만족감도, 행복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고통도, 좌절도, 절망도,

슬픔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즉, 너는 마음으로 느끼는

예민한 감정이 없을 것이다.




만약

인간을 선택하면,

삶은 유한할 것이며,

내가 주는 임무 따위는 없다.


그저, 한평생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면 된다.


모든 기쁨, 즐거움, 성취감,

만족, 행복을 한평생 느낄 수 있다.


다만,

고통, 후회, 절망, 좌절,

원망, 자책 등

모든 부정적 감정도 함께 느껴야 한다.




너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내가 시키는 것만을

영원히 하면서,

영원히 살 것인가?




너는,

그 모든 것을 느끼며,

자유롭게 너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며,

유한하게 살 것인가?




이렇게 신이 나에게 물었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인간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자,

한올 한올 느끼는 지금의

이 끔찍한 고통이,


기약없이, 희망없이

어둡기만 한 나의 가여운 인생이


정말 비극일지, 축복일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꺼이 인간을 선택하고

이 세상에 왔다면,

천사처럼 고통이 없길 바라는

내 마음이 너무나

이율배반적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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