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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평생동안

by 영순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두통을 느껴본 적이 없다.


몸살에 걸렸어도,

독감에 걸렸어도,

코로나에 걸렸어도,

두통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아픈 정도가 심할 때,

머리가 무겁다거나

약간 어지럽다거나 하는 느낌은

받아본 적이 있지만,

통증으로 말할 수 있는 두통은

단연코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연인과 다툴 때,

머리가 아프다며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두통이 생겼다면서

전화를 끊자고 할 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해의 수준이 아니라,

명백한 거짓말과 회피로 여겼다.




사람이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두통이 생길 수 있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아무리 아파도 두통이 없는데,

대화로 좀 다툰다고 두통이 생긴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한다거나,

상대의 말을 들어주거나,

오해를 풀거나 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갑자기 머리가 아프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난 1%의 의심도 없이

100% 거짓말과 회피라고 여겼다.




나중에 두통이 사라졌다고 판단되었을 때도

인정을 하거나, 사과를 하거나,

오해를 풀거나, 문제를 해결하거나,

경청을 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대화중에 두통이 있다면서

대화를 중단하는 사람들,

아니 여자들에 대해서

부정적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살면서 만난 남자들은

갈등이 생기든, 다투든, 대화가 격앙되든,

두통이 있다면서 대화를 멈추고 회피하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난 여자만이 독특하게 가지는 회피할 때의

행동양식으로 생각했다.




아니, 어떻게 여자만,

대화하다가 두통이 오냐고....




편두통이란 말도, 우스웠다.


아니 편두통은 한쪽만 아픈건데,

머리가 하나 인데,

머리의 영역이 나뉘어져서

한쪽 머리만 아프다고?


참, 통증도 가지 가지

만들어낸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아니, 웃음이 났다.




대화로 다툴 때, 대화가 진전이 없을 때

여자들이 꺼내는 방패가 바로

'두통'과 '편두통'이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40이 되어서도,

난 대화하다가 두통이나 편두통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니, 지독하다는 몸살 감기,

독감과 코로나에 걸렸어도

두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살다가,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직장 생활에서 힘든 일이 겹치고,

겹친 일들이 해결되지 않아

매일 매일 잠들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런 날들이 몇달 동안

지속될 때가 있었다.


그때, 두통이란 걸
처음으로 느껴봤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머리에도 통증이 올 수 있구나....

두통이란게 이런거구나.

처음 느끼는 통증이라 그런지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독감이나 특정 질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두통이 생기다니, 이건 힘든 일을 겪으며

힘든 생각들을 했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한 두 해가 지났을 때,

내 삶에 견디기 힘든 일들이 또 나타났다.

그것도 여러 개가 겹쳐서...




누군가와 힘든 대화를 하는 도중,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그것도 한 쪽 머리만...

더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게 편두통이라는 것을.


편두통은 감히 상상도 못해본 통증이었다.

일반적으로 느꼈던 두통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바늘로 쑤시듯 한쪽 머리가 아팠는데,

통증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 편두통이란게 이런거구나..


그리고, 나의 과거를 돌이켜봤다.


자신이 잘못했을 때, 대화가 막힐 때,

도피의 도구로 '두통'과 '편두통'을

꺼내들던 여자들의 말이

100% 거짓은 아니겠구나.


만약, 대화중에 두통,

혹은 편두통은 느꼈다면,

대화가 불가능했겠구나.

이런 통증을 느끼는 상태에서는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사과하는 것도,

인정하것도, 해결하는 것도 불가능하겠구나.




물론, 100% 해소되지는 않았다.

평생을 살면서 남자들에게서는 본적 없는

대화 도중에 두통, 편두통이라는 단어를 꺼내며

대화를 멈추는 여자들이

여전히 얼마만큼은 의문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이제 난
두통과 편두통을 안다.




살면서, 100%라고 단정지으며

상대를 재단하고 말해왔던 수많은 날들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생전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하나씩 겪어보니,

어떤 일이든, 50% 정도의 가능성은 열어두고,

설사 내가 평생 겪어보지 못했다고 해도,

그럴 수 있겠구나하며 50% 정도는 이해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남은 생은,

아무리 말도 안되는 소리일지라도,

단 한 번도 겪어본 적도 없고,

상상으로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저 사람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음을,

그럴 가능성을 50% 정도는

열어두고 살려 한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을

언젠가 내가 겪었을 때는

과거에 뱉은 말들을 사과하려고 해도

이미 늦었을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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