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의 바다, 나의 시간
–간병의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작지만 따뜻한 위로를 찾아가는 시간의 기록
서울에서 직장생활로 치열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정년퇴직 후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나에게 예기치 않은 파도가 덮쳐왔다.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 그리고 아직 짝을 찾지 못한 채 대장암 수술과 힘겨운 항암 치료, 장루 제거 수술, 그리고 간과 폐까지 전이되는 상황 속에서 고통받는 남동생. 서울에 두고 온 남편과 사랑하는 딸과 결혼할 때 옆에서 도움을 주지 못해 마음이 무거운 아들내외를 뒤로하고, 나는 망설임 없이 부산행을 택했다. 어머니의 곁, 동생의 곁을 지키는 것이 지금의 내 자리라고 마음이 이끌었다.
낯선 부산에서의 간병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살뜰히 보살피고, 수시로 변하는 동생의 상태를 살피며 밤낮으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오전에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그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선물이 되었다.
나는 그 시간을 붙잡아 집 근처 하천으로 향했다. 햇살 아래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동안, 서울에서의 분주했던 삶의 무게는 잠시 잊혔다. 찰칵, 찰칵. 손에 든 핸드폰에 담기는 것은 흐드러지게 핀 꽃, 물빛에 비친 반영된 그림자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들의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사진 속 풍경들은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작은 위안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나의 작은 창이 되어주었다.
아주 가끔 홀로 떠나는 여행은 또 다른 활력이 되었다. 부산 근교의 아름다운 바닷가나 고즈넉한 곳을 찾아 걷고, 맛있는 음식을 맛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책장을 넘기는 시간 속에서 나는 때로는 주인공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의 깊은 통찰에 감탄하기도 했다. 하모니카의 잔잔한 선율은 굳어있던 나의 마음에 부드러운 위로를 건네주었고, 사진반에서 배우는 새로운 기술과 시선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창을 더욱 넓혀주었다.
매일 봉헌하는 미사 속에서 나는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간절히 기도하며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 가장 힘들고 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가슴 저미는 일이다. 하지만 이 시간 속에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작은 행복들을 찾아내고, 스스로를 돌보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고 있다. 어머니의 푸근한 미소, 동생의 작은 기척 하나에 감사하며, 나는 오늘도 묵묵히 나의 하루를 걸어간다.
서울의 가족들은 늘 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전화 통화 너머로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는 멀리 떨어진 나에게 큰 힘이 된다. 언젠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 함께 웃을 날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부산의 하늘 아래서 꿋꿋하게 버텨나갈 것이다. 엄마의 바다가 나를 품어 안듯, 이 시간 또한 언젠가 따뜻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