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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치매엄마와 말기암을 투병하는 남동생 돌봄 일지

#2. 이 길 위에, 누군가는 끝까지 있어야 하니까

by 햇살통통

– 힘겨운 간병의 나날 속에서도, 누군가는 끝까지 곁에 있어야 하기에


오늘 하루는 유난히 더웠다.

숨이 턱턱 막히는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서

나는 마음까지 눅눅하게 젖어들었다.

정신을 붙들어 매려 애써도, 몸은 점점 축 늘어졌다.


동생은 간 전이로 초음파 레이저 시술을 받은 뒤

계속되는 고열로 아직 병원에서 퇴원을 못 하고 있다.

전화를 걸면 기운 없는 목소리로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그 말에 오히려 마음이 더 무겁다.

몸은 엄마 곁에 있지만, 마음은 병원 침상 곁에 함께 누워 있다.


그런 와중에 오늘, 엄마가 자꾸 “어디를 가야 한다”라고 하신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시면서도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 하셨다.

비척비척, 불안한 걸음으로 신발을 신으시는 엄마 곁에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나섰다.

어디라도 함께 가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몇 걸음 채 가지 않아 땀이 줄줄 흐르고

몸의 기운이 쏙 빠졌다.

뜨겁고 무거운 바람 속에서

나는 이 상황 자체가 한낮의 열기보다 더 뜨겁고 견디기 어렵다고 느꼈다.


겨우 엄마를 모시고 다시 들어왔더니

이번엔 짐을 싸신다.

말려도 소용없다.

가지 말라고 말리는 내 손을 뿌리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신다.

그 소리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이해받지 못한 마음과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의지,

그리고 남은 생을 향한 마지막 실랑이가 섞인 울부짖음이었다.


동생이 함께 있을 때는

그래도 내 마음이 덜 흔들렸다.

말없이 함께 있어주는 존재만으로도

무언의 지지가 되었고, 내 마음이 외롭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독박 간병이다.

모든 일과 감정, 결정, 돌봄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하루하루가 진을 빼놓는다.

몸의 피곤함을 넘어서

마음이 비틀어지는 느낌이다.

눈물조차 제대로 흘릴 수 없고

도망치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기 위해

애써 마음을 추슬러야 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엄마 곁에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끝까지 있어야 하니까.

누군가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하니까.


엄마의 흔들리는 걸음을 막아주고

동생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내 안의 작은 등불 하나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묵주를 쥐고

이 삶의 매듭을 조용히 묶는다.

단단히 묶였다가도 풀어지고,

다시 매듭을 지으며 하루를 살아낸다.


하루의 끝에서,

나는 다시 조용히 묻는다.


“주님,

이 길 위에

제가 아직 있어야 한다면

오늘도 저를

잡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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