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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햇살통통의 일상 그리기

#10. 하늘이 열리던 길

by 햇살통통

–구름이 걷히고, 내 마음이 비워진 산책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간월재 억새 길을 걸었다.

늘 반복되는 하루 치매로 낮과 밤이 뒤바뀐 엄마의 간병,

그리고 투병 중인 동생의 돌봄.

그 무거운 시간 속에서도 문득 가을이 나를 부르는 듯했다.

바람이 손짓하듯, 억새의 물결이 은빛으로 출렁이는 곳으로.

산길은 생각보다 순했다.

거칠지도, 위태롭지도 않은 오르막이 이어졌다.

걷는 동안 구름은 천천히 하늘을 열어주었고,

햇살은 산등성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내 숨결’을 느꼈다.


억새는 아직 완전히 피지 않았지만,

능선에 스치는 바람만으로도 가을은 충분히 와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 친구들과 웃음꽃을 피운 사람들,

연인과 반려견이 함께 걷는 모습들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로 이 길 위를 걷고 있었다.


나는 그저 묵묵히 걸었다.

발끝에 닿는 흙의 온기,

바람결에 실린 억새의 노래,

그리고 그 속에 녹아드는 내 마음.


산 아래로 내려오기 전,

능선 끝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바람이 뺨을 스치고, 묵주를 잡던 손끝에 따스한 기운이 번졌다.

누구의 돌봄도, 누구의 병도 없는

짧은 시간의 자유 속에서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오늘의 걸음은,

내일의 간병을 이어갈 조용한 기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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