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것 없는 출생배경
본 글은 21세기 청년을 위한 실패록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혹시 주변에 그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한인이지만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아이비리그 나왔고
한국이 좋아서 왔다가
취업을 해서 살고 있는데
서울에 강남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본적은 없지만
일찍이 미국 유학을 가서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억대연봉을 받으며
살아가는 청년들은 많이 보아 왔습니다.
어쩌면 누가보아도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저의 출생과 성장 배경이
보잘것없었는지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저도 제가 부러워하는 부류의 사람들처럼
성장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탑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역시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충남 보령시 청라면 내현리 789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주택이 20채 정도 될까 한 마을이었고
학교에 가려면 걸어서 작은 아이의 걸음으로 40분 정도는 가야 했던
곳이었습니다.
인도가 딱히 없어서 찻길로 가면 위험했고
대신에 농사짓는 분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논길을 따라서 학교를 가면
개구멍을 통해서 등하교를 할 수 있는
지름길이 있었습니다만 거리는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학교를 걸어서 다녔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름이 되면 얼굴이 새까맣게 타버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학교가 끝나면 뙤약볕 밑에서 축구공을 차거나
모래에 있는 조개껍질로 깨 부시며 놀거나
닭싸움을 하거나 팽이치기를 하거나
철밟기라는 놀이터 놀이를 하다가
수돗물로 머리 감기 세수를 하고
벌컥벌컥 마시기도 하면서
보냈던 것이 저의 유년시절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아이들을 의사를 만들기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의사진학입시학원에 보내는 시대의 상황과는
많이 다른 유년시절이었던 건 분명합니다.
나중에 서울에 있는 대학교 오고 나서 사람들을 만나고 보니
정말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배경으로 온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제가 다녔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는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니거나 해외 유학파 출신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에 비추어보았을 때 큰 상대적 박탈감들을 많이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해외 어학연수는커녕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자랐으며
외국어고를 나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당한 시간을 사교육에 보냈고
학원 3~4개는 기본이고
상당한 돈을 투자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저에겐
유일하게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야간 자율 학습을 하며
수능을 준비했던 게 전부였습니다.
화려한 유학의 배경도 없고
빵빵한 강남입시학원도 없었습니다.
그저 가끔 과학이 너무 어려워서
아버지 친구의 딸을 아름아름 알아서
과외를 두어 달 정도 받았던 기억은 있습니다.
어쩌면 그 마저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대학교 영어영문/통번역 수업 때에
대부분 원어민 수업이었기 때문에
1~2학년 때까지는 수업의 내용을 50% 이상은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업 과제가 있었다는 것도 모른 체 과제를 제출하지 못했던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때 정말 낙심했던 것 같습니다.
힘겹게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외대를 만나면 세계가 보인다"라는 문구만 보고
대학교에 갔는데
학점하나 따기가 이렇게 나에겐 어려운 것을
좋은 배경에서 살아온 친구들은 거저먹는 걸
우울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실패자"라고 느꼈습니다.
무엇에 실패했냐라고 물으신다면
빵빵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했고
유학을 다녀올 수 있는 집안이 아니었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지 못했고
그런 나를 이끌어줄 사람도 없었고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바깥에
던져졌다는 것이 저에겐 실패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와 반대로 모든 것을 태어나자마다
얻은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성공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때문인지 항상 기분이 우울하고 어두웠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계획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영어를 잘하고 싶어서
그리고 군대에서 시간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토익공부를 했고
카투사에 지원할 수 있는 점수를 받았으나
역시나 "카투사"도 떨어졌습니다.
카투사가 안되면 통역병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영어를 잘하고 싶었고
통역병이 되면 군대에서도 영어를 사용하고
전역 후에도 학교수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육군/공군 통역병 시험에서 3번 떨어졌고 그냥 일반 육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왜 떨어졌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통역병 시험을 보러 온사람들을 보니
다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고
통역병 시험 준비를 위해 다녔던 학원을 보니
대부분이 해외에서 대학교 졸업 후 석/박사들을 마치고
온 20대 후반 30 초반 형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이분들과 경쟁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였고
그들이 뽑히기도 어려운 통역병을
아무런 뒷받침되는 배경이 없는 제가 지원을 해서
될 리가 없었습니다.
군대 가는 것조차도 제 맘대로 되지 않았고
실패했습니다.
본투비 실패자입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로 실패한 사람이었을 까요?
물론 실제로 많은 실패를 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진짜 실패는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보다도 더 열악하신 분들도 계시고
저보다도 좋은 조건에서 살아계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실패자", "루저"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지 마시고
계속 걸어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