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받거나 유난히 힘이 달린 날,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면마음이 풀리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가끔 고향의 맛처럼 러시아의 달콤한 유혹들이 생각나곤 하는데, 그 단맛이 진해서 쓴 차나 커피와 제격이다.
더욱이 홍차를 즐겨 마시는 러시아에서 디저트는 필수!
그중 케이크(торт 또르뜨)는 러시아에서 손님 방문이나 가족 기념일에빠지지 않는 단골 선물로,
길거리에 한손 가득 케이크 들고가는 모습은 꽤 익숙한 풍경이다.
러시아 케이크 진열장(출처: novyjcheck.ru)
러시아에서는 나름의 전통 케이크로서 오랜 시간 사랑받은 종류들이 있다.
역사 깊은 케이크라 사연도 제각각,저마다 탄생 비화가 있다.
그중 가장 대중적인 네 가지 케이크 속을 들여다 보았다.
(1) 메도빅 Медовик: 꿀 못 먹는 사람도 먹는 꿀케이크
꿀이 들어간 케이크, 메도빅(출처: bondik-kids.ru)
메도빅은 대표적인 러시아 케이크로,
가정에서도 홈레시피로 만들어 먹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명칭에 꿀을 뜻하는 러시아어 ‘묘드(мёд)’가 있는 걸로 보아, 꿀케이크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메도빅은 포근한 시트 사이 스메타나 크림 필링이 채워있고, 시트 위로는 부드러운 빵가루가 소복히 쌓인 갈색빛 케이크이다. 만든 사람에 따라 그 외관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은은하게 스민 꿀 향은 공통적이다.
메도빅은 19세기 러시아에서 시작됐다.
이야기는 황제 알렉산드르 1세 시절(재위 1801~1825) 까지 올라간다. 그의 황후 엘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의 식성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황후는 독일 남서부 바덴 대공국 공녀 출신으로 러시아에서는 이방인이었다.
그녀는 음식 중꿀을 못 먹었고, 그래서 궁정의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황후가 먹는 요리에 꿀을 빼고 조리하는 것이 원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때는 1820년대, 어느 젊은 요리사가 이 법칙을 어기고 말았다.
자신의 할아버지 레시피 대로 꿀을 넣어디저트를 만들어 황후에게 바친 것이다.
모두의 우려와는 달리, 그가 만든 꿀케이크(메도빅)를 먹은 엘리자베타 황후는 그 부드럽고 깊은 맛에 빠지게 되었고,꿀케이크만든 요리사를 크게 칭찬하고 상을 내렸다고 한다.
엘리자베타 황후와 메도빅을 만든 요리사(출처: ru.wikipedia.ru / dzen.ru/a/Y5wp8v-5mhDg6qyu)
꿀케이크 레시피는 지금도 러시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꿀 싫어하는 사람도 먹게 하는 매력,
그것이 바로 메도빅인 것이다!
(참고로 러시아에 꿀맥주도 있다. 도대체 러시아에서 꿀의 매력은 어디까지인가!)
(2) 나폴레옹 Наполеон :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후대의 만인 전리품
케이크 이름이 나폴레옹?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제패하려던 프랑스의 유명 황제
‘나폴레옹 1세’ 이름에서 온 케이크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출처: novyefoto.ru)
페이스트리로 만든 파이 같기도 한 모습이, 언뜻 프랑스 디저트 밀푀유(millefeuille)와 닮았다. 페이스트리가 수많은 층으로 쌓여있고 그 사이사이 크림이 스며있어 공이 참 많이 들어갔을 것 같다. 한 입 무는 순간 여러 겹의 파이는 바스락 쪼개어지고 페이스트리 조각들은 이리저리 흩어진다.
나폴레옹 케이크(출처: magcakes.ru)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나폴레옹 케이크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여럿이 있는데,
역시 프랑스와 무관하지 않은 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설을 러시아에서는 제일 신뢰하는 편이다.
러시아에서 역사상 중대하게 생각하는 전쟁이 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조국 전쟁(나폴레옹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대조국 전쟁(독소 전쟁)이다. 나폴레옹 케이크는 조국 전쟁과 관련이 있다.
러시아의 조국 전쟁(1812) 승리 100주년 되는 1912년,
모스크바에서 기념 축제가 한창이었다.
축제의 현장에서는 당시 내로라하는 파티시에들이 자신이 만든 디저트를 선보이면서 경연을 벌이게 되었는데, 여러 출품작 중 단연 돋보였던 작품은 프랑스 파이에서 착안해 만든 케이크였다.
나폴레옹 모자 모양 같은 케이크(출처: papik.pro / za-edoy.ru)
당시 이 파이 케이크를 삼각 모양으로 잘랐는데,
그 모양이 꼭 나폴레옹 모자 같아 보여케이크의 이름은 모자의 주인 '나폴레옹’이 되었다.
이처럼 러시아 역사 속 승리의 기쁨이 디저트로 승화되면서,
나폴레옹 케이크는 마치 후대에 모두가 공유하는 달콤한 전리품처럼 남게 된 듯 하다.
(3) 새의 우유 Птичье молоко : 실존하지 않는 맛을 만든 기막힌 노력의 산물
새에겐 우유가 나지 않는다!
이는 상식적으로 모두가 아는 사실. 그 이름처럼 '실존할 수 없는 맛'을 가진 케이크이다.
새의 우유 케이크(출처: cake-dance.ru)
새의 우유 케이크는 달콤한 초콜릿 코팅 아래로 수플레처럼 부드럽고 폭신하게 녹는 맛이 일품이다. 입에 넣으면 어느 새 스르르 사라지는 부드러움의 비결은 놀랍게도 우뭇가사리!
그 맛은 소련 시절 시작되었다.
1960년대 소련 한 식품부 장관은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를 방문하고 와서 어떤 지시를 내렸다.
그곳에서 맛본 디저트 마시멜로에 반해버린 나머지, 소련에서도 먹을 수 있도록 이를 모방해 생산하라고 한 것! 그렇게 소련 자체 개발이 진행되었고, 바다가 인접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뭇가사리를 넣어 만든 젤리 식감의 새의 우유 생산을 성공하게 된다.
당시 생산된 새의 우유는 사탕처럼 포장돼 러시아 전역에서 지금도 판매 중이다.
새의 우유 초콜릿(출처: mykaleidoscope.ru)
식감은 성공했지만 케이크로 만드는데는 더 연구가 필요했다.
당시 모스크바 레스토랑 '프라하'*의 파티시에 블라디미르 구랄닉(Владимир Гуральник)은새의 우유 케이크 레시피만 6개월을 연구했다.
결국 1974년 그는 새의 우유로 수플레 식감의 케이크를 만들어냈고,
이 케이크개발로 인해 구랄닉은 1980년 케이크로는 소련 최초 특허를 받게 되었다.
새의 우유 케이크를 개발한 파티시에 블라디미르 구랄닉(출처: newsrobotics.ru)
얼마나 혁신적인 케이크면 그랬을까?
이건 꼭 먹어봐야겠다.
* 레스토랑 '프라하'는 모스크바 구아르바트 거리 초입에 현재도 있음
(4) 프라하 Прага : 유럽 고급 초콜릿케이크의 러시아식 재탄생
프라하는 러시아의 대표 초콜릿케이크이다.
놀랍게도 체코의 것이 아니다. 체코 수도의 이름을 가진 이 케이크는 오스트리아 유명 디저트 자허토르테(Sacher torte)의 러시아 버전으로, 달지만 부드럽고 세련된 맛을 가진다.
프라하 초콜릿케이크(출처: eco-recept.ru)
진한 초콜릿 코팅 아래로 보드라운 초콜릿 시트, 그 사이 크림이 든 완벽한 초콜릿케이크 프라하.
이를 개발한 사람도 새의 우유 케이크를 만든 블라디미르 구랄닉이다.
프라하 역시 소련 시절 탄생한 케이크이다.
레스토랑 ‘프라하’ 재직 시절, 파티시에 구랄닉은 제과기술을 배우러 체코슬로바키아에 방문했다.
당시 그는 거기서 오스트리아 고급 디저트 자허토르테와 매우 흡사한 케이크를 접하게 되었는데,이를 똑같이 재현하고 싶은 마음에 연구를 이어갔다.
하지만 오리지널을 따라하기에는 재료가 고가인데다 만드는 방법도 어려워 불가능했고, 레시피를 수정해야 했다. 소련으로 돌아와 그는 해당 레시피 개발에 전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