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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Jun 30. 2020

[나를 인터뷰하다4] 러시아 여행이 나에게 남긴 것

나만 알고 있던 러시아의 매력, 이제 여러분께

여행은 개개인에게 참 많은 것을 남긴다.

어떤 이에게는 추억 사진이나 기분 전환을 주고, 다른 이에게는 삶의 중요한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나 또한 러시아 여행이 삶을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물론 여행 자체가 일이 되고 나서는 피곤해 진 건 사실이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피로함을 코로나19가 잠시 쉬어가며 풀라고 한다.


나에게 러시아 여행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여행작가가 본 러시아는 어떤 곳인가?

마지막으로 시원스쿨 러시아어 '한러수교 30주년' 온라인 토크콘서트를 통하여

미처 전달하지 못했던 얘기를 꺼내 본다.




Q1. 러시아 여행으로 얻은 것, 달라진 것?

여행은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벗어나 단순히 다른 장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낯선 나를 만나는 일이다. 여행에서 부딪히는 상황들을 통해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는 현상 유지를 위해 많은 것들을 감춘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솔직해지지 못할 때가 다반사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지금 나의 상황을 점검해 보고 싶을 때는 온전히 나를 만나는 여행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에게는 인생에서 중요한 기로에 놓인 순간, 러시아 여행 마치 탈출구처럼 마음을 다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회사 생활의 복잡한 관계로 한참 지쳐있을 때 '긴 인생에서 회사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구나'를 알고 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도 러시아, 퇴사하고 마음의 휴식이 필요할 때도 여행을 떠난 곳이 러시아였다.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졌기 때문이다.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며 중심을 잡을 수 있어 좋았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게 된 것도 산책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 러시아 덕분이고, 하염없이 걸어도 가야 할 방향을 잘 아는 곳도 러시아일 만큼 그곳에 익숙함이 있다.

물론 여행작가 이후의 삶은 러시아 여행도 그저 쉬는 게 아닌 일로 되면서, 예전 같은 여유보다는 하나하나 눈으로 살피고 기록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다. 그래도 내가 전달하는 정보와 느낌들이 러시아를 가려고 계획하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또 실제로 내 책 덕분에 좋은 여행을 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이 넘쳐난다. 앞으로도 열심히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겠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Q2. 여행에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그다지 스펙터클한 여행을 하지는 않다보니 재미난 에피소드라고 할 만한 것은 많지 않다. 그래도 역시 여행은 계획대로만 되라는 법은 없어서 그런지 예외적 상황을 만나면 기억에 더 남는 것 같다.

블라디보스토크 가이드북 개정을 위해 2019년 현지 취재 갔을 때의 일이다.

루스키섬 트레킹 코스 사진을 찍으러 가려고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하고자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그 날따라 안개가 자욱했지만 고민 끝에 일단 가보자 생각하며 휴대폰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래 고민한 탓에 정신이 좀 없었다. 다행히 택시를 타고 섬에 다다를 즈음, 안개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섬에 도착해 택시 기사는 비포장도로를 우왕좌왕 헤매며 '뭐 이런 데를 오려고 한담!'하는 구시렁 소리가 들려와 나는 중간에 내려달라고 했다. 나는 황급히 기사에게 돈을 주고 내렸고, 순간 눈앞에 펼쳐진 절경에 시선을 빼앗겻다.

그런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려 보니 휴대폰이 없는 거다! 무릎에 올려논 휴대폰이 택시에서 급하게 내리면서 떨어진 걸 직감했고, 그때부터 무조건 뛰었다. 뒤돌아선 택시는 이미 꽤 멀리 가고 있었는데, 불행 중 다행인 건 나가는 길이 비포장 도로였다는 사실이다. 달리기도 잘 못하는 나는 전력질주하면서 마침 휴대폰 앱에서 봤던 기사의 이름이 생각나 '안드레이!!!' 큰 소리로 외쳤다. 외국 남자 이름을 이토록 애타게 불러 보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못 듣고 포장도로에 진입하려 했다. '아, 정말 끝이구나' 하필 그 때 다리가 풀려 넘어져버렸다.

나는 있는 힘껏 그의 이름을 불렀고 포장도로에 진입한 즉시 뒤늦게 들었는지 그가 차를 세웠다. 결국 택시 바닥에서 떨어진 휴대폰을 찾았다. 그는 너무나 러시아 사람 같은 순진무구한 웃음으로 '전화하면 되지 않냐'고 했지만 내 휴대폰으로 불렀는데 어떻게 전화를 할 수 있었겠는가! 어이가 없었지만, 얼마 전 장만했던 휴대폰을 찾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난게 아니었다. 안드레이를 울부짖으며 넘어졌을 때 내 목에 걸려있던 카메라의 렌즈가 박살이 난 것이었다. 여행작가의 생명과도 같은 카메라 렌즈를! 휴대폰 살리자고 카메라 렌즈 망가뜨리고 만 격. 남은 거라곤 넘어져 퉁퉁 부어오른 무릎과 상처 난 손, 깨진 카메라 렌즈뿐이었지만 액땜이었을까. 그 사건 이후에는 현지에서 기적처럼 좋은 사람들만 만나게 되었더라는. 결국 개정판은 무탈하게 나올 수 있었다.

아무튼 역시 여행 작가에게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은 필수다.


Q3. 여행작가가 본 러시아는?

땅이 큰 만큼 아직 우리가 모르는 장소가 더 많은 나라이다. 새로 알아야 할 것, 찾아가야 할 곳도 많은 것이다. 러시아는 알면 알수록, 가면 갈수록 보석 같은 공간이라는 사실은 한 번쯤 다녀와 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한다. 물론 처음에는 주변에서 알아주지 않고 관심도 없어 나만 알고 있던 보석에 그쳤지만, 이제는 그 찬란한 빛을 많은 이들이 다양한 매체와 수단을 통해 알아보고는 너도나도 몰려들게 되었다. 우리가 앞으로 더 많이 알고 애정을 쏟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30년 역사의 한∙러 관계에 비하면 너무 늦게 그 가치를 안 거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국가를 비롯한 개개인의 관심도 끌어올려야 한다.

여행작가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러시아는 아름다움에 눈이 즐겁고 큰 스케일에 그저 벅찬 곳이었는데, 여행작가가 된 후에는 하나하나 면밀히 살펴보게 되면서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곳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스토리에서 더 마음이 가고 애착이 가게 됐다. 절대 놓칠 수 없는 것들, 한국 사람들이 알아야 할 가치들이 정말 많고, 나는 그것들을 계속해 알려 나갈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세계일주를 다녀왔다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들에게 러시아는 대부분 건너 뛰거나 그저 찍고만 갔던 코스였을 것이다. 다른 나라는 다 다녀왔지만 세계 최대의 면적을 자랑하는 대국 러시아는 도시 한 곳만 갔다오거나 생략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면 정말 세계를 다 여행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걸까?


Q4. 러시아 여행에 대한 총평

늦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나라라고 생각한다. 시작은 호기심이겠지만, 끝은 감동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겉은 유럽 같은 모습인데 분위기는 왠지 예전에 내가 알던 사람을 만난 느낌에 더 정이 갈 것이다. 각양각색 멋이 있는 도시, 선하고 인정 많은 사람들,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대자연까지 만나게 된다면 여러분도 분명 나처럼 러시아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삶의 정답을 우연히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서 코로나19가 지나가고 자유롭게 러시아 여행을 하며, 러시아 다녀왔노라고 자랑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길 간절히 바란다.



*내용을 담은 영상(시원스쿨 러시아어 채널 내 3회분):

.인터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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