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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Dec 28. 2020

코로나 1년, 직업의 추억

예상도 못한 2020년을 돌아보며

그럼, 그 날 뵙죠!


예전 같으면 설렜던 이 한 마디, 사람들과의 만남이 유난히 걱정스러웠던 한 해.

코로나19 속에서도 일상은 이어가야 하기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눈치만 늘었고, 정작 평소처럼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예민했나' 애써 태연한척 했던 아슬아슬한 매일이었다.




코로나와 여행작가


'코로나19'라는 악몽은 세상의 그 어떠한 성공도, 부영화도 의미 없게 만들어버렸다.

여행을 업으로 해야 하는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0년 계획했던 현지 취재, 나의 생각과 활동들은 거의 대부분 공중분해되었다.


다음 달 지나면 괜찮겠지, 좀 더 기다려보자,
쉬는 동안 이거나 해볼까, 놀면 뭐해?


집콕하면서 출간 가능성 희박해진 책 원고를 써내려갔다.

방구석 책상에 앉아있는 건 데자뷰처럼 익숙한 일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쓸데없는 일이 되고 있었다.

내 본업의 기반인 러시아가 확진자수 상위권에 진입하면서 정말 손을 놔야 할 상황이 온 거다.


나의 세 번째가 될 뻔한 책아,

이제는 정말로 바이바이~


부캐의 세계

직업을 바꿔야 하나


기로에 놓였다. 그렇다고 여행작가를 완전 놓아버릴 수는 없다.

요즘은 '부캐(부캐릭터)' 시대라는데, 뭔가 다른 일을 해야 찾아야 할까. 먹고는 살아야 하겠고.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자 이런 생각들이 가득할 때였다.


1. 언택트 여행작가

올해가 한러수교 30주년이라, 여기저기 각종 기관에서 온라인 행사를 여럿 진행했다.

아무것도 시작 못하던 봄, 감사하게도 러시아 여행을 주제로 온라인 토크콘서트를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유튜브 첫 출연

러시아를 알리는 일이니 흔쾌히 나섰다. 하지만 남의 유튜브 채널에서 얼굴을 디밀고 나혼자 떠드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참 신기한 경험을 했다.


여름이 다가오니 유명 여행 팟캐스트 섭외가 들어왔다. 잘 나갈 때 불러주시면야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여행 못가는 맘 함께 이야기 나누며 다른 여행작가분들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 기분이라도 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보냈다.


2. 진로특강

코로나 시대 한치 앞도 모르는 여행작가이건만,

배려 넘치는 주변분들 덕분에 대학생 진로 특강도 몇 번 하게 됐다.

솔직히 갈 길을 잃은 지금의 나도 받고 싶은 게 진로 상담이다.

이 시기에 여행을 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학생들과 온라인에서 만났다.

언택트 시대의 진로특강

이때 '줌' 플랫폼을 처음 사용해봤는데,

혼자만 얘기하는 느낌이라 대면만큼의 호응과 교감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새로운 시대와의 조우가 신선하기도 했다.

 

어쩌면 앞으로 우리가 익숙해질 모습인지도 모른다.


3. 국내여행 콘텐츠 협업

코로나19로 해외 여행 업계가 다 죽어가자,

국내여행 플랫폼을 만들던 사촌오빠에게 어느 날 연락이 왔다.

내가 손가락 빨고 있을까 걱정되어 일을 제안한 거다.

국내여행(고성) 콘텐츠 협업


그래, 그럼 국내 여행지에 한 번 가볼까?

그렇게 엉겁결에 강원도 고성 현지 답사를 했고,

가이드북을 구성할 당시의 감각을 되살려 구역별 로컬맵과 콘텐츠 만드는 일을 도왔다.


러시아가 아닌 다른 지역 속에서

잠시나마 여행작가로서 새로운 여행지의 매력에 빠져볼 수 있었다.


4. 구성작가

코로나19가 잠잠했던 어느 여름, 전 회사 선배를 우연히 만나게 됐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선배는 내게 본인이 담당하는 두 책 만드는 일을 도와줄 수 있겠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신다.


책자 구성, 윤문, 교정 등은 그간 숱하게 해온 일이라 못할 것도 없고, 딱히 하는 일도 없어 선뜻 받아왔다.

막상 시작하니 간단한 게 아니었지만, 그렇게 몇 달 동안 애증으로 얽힌 옛날 회사의 일에 투입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나가기도 불안한데 집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이라, 그나마 다행이고 감사했다.


잡다해진 나의 능력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 싶었다. 뭐든 헛된 시간은 없다.


5. 사업 자문

연초에 '이게 될까?'하면서 반신반의하며 다리를 놓아준 사업이 있었다.

어차피 나는 러시아 출장 때문에 끝까지 도와줄 수도 없을 상황이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문으로 참여했던 신북방청년미래개척단 사업


다행히 연결시켜준 두 기관은 청년 비즈니스 공모전 사업을 따냈고, 호흡도 꽤 잘 맞춰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내가 러시아를 못 떠나게 되어 사업 자문 역할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게 됐다.


비록 코로나 시국으로 일정만 길어지고 행사는 절반짜리로 끝나버렸지만,

언택트 방식으로 아무 탈없이 무사히 진행되었다.


나의 역할이 헛되지 않았던 건 정말 다행이다.


6. 갤러리 전시

곧 연말이고 이제 잠시 쉬어갈 즈음,

낙엽이 익어가는 가을 무렵, 난 급작스레 러시아와 관련된 새로운 일에 투입되었다.


여름에 한 차례 크게 붐을 일으킨 러시아 미술,

신생 갤러리의 가을 전시를 돕게 되면서 또 다른 세계를 만났다.

약 한 달 간 인생의 희노애락이 있었던 전시, 코로나19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울고 웃는 순간이었다.

러시아 그림 갤러리 업무

그리고 앞으로 이 자리가 여행작가를 겸비한 나의 새로운 '부캐' 영역이 될 것 같다.

이건 또 다음 기회에 풀어보기로.




정말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던 한 해였다.

러시아 여행작가로서의 생명은 끊어진 듯했지만,

주변에 좋은 분들 덕분에  다른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찾게 되었다. 아이러니하다.


퇴사 이후 일 때문에 바쁜 해는 올해가 처음이다. 코로나19가 판을 치고 있었는데 말이다!

허투루 살지는 않았구나 싶어 감사하다.


가진 것을 잃으면, 또 다른 것을 얻는다.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안목을 가지자.
빛나 보이는 건 다 한 순간이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잘 나간다고 자만하지 말자.
헛되어 보이는 일도 살다가 쓸데가 분명 있다. 하는 일마다 정성을 다하자.
영원한 직업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스펙트럼을 넓히자.
가까운 사람은 지킬 수 있을 때 지켜야 한다. 코로나 시국에 만남은 줄이자.


그냥 이런 생각들로 점철되던 2020년. 이제는 빨리 가버리고,


좀 더 의미있는 일들, 좋은 사람들에 집중할 수 있는

2021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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