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2023년은 내실을 다지며 새로운 걸 하나씩 시도하는 시간을 보내리라 연초부터 다짐했고 실행에 옮겨봤다.
그렇게 지금껏 미뤄뒀던 독서의 시간을 가졌고, 짜깁기지만 조금이라도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봤으며, 거기에 활용할 일러스트도 하나둘 그려나갔다.
우연한 시도로 시작한 일이 괜찮은 반응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맘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테지.
하지만 그건 사업 센스나 시대를 타고난 사람에게나 들어맞는 이야기다.
결국 나에겐
'대중적인 것은 과연 무엇일까', '러시아는 이제 정말 희망이 없나' 물음표만 깊어진 채,
그저 남기는 일 자체가 의미 있다 여기며 자기 만족에 그치게 됐다.
붉은 광장 스파스카야 종탑 일러스트
사실 그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를 남기는 일, 내 것을 만드는 일'에 대한 집착이 생겼다.
나의 다음 이야기, 내가 쓰고 공감할 거리는 무엇이 될까?
이 질문의 무게는 갈수록 무거워졌다. 할 수 있는 이야기의 범위도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은 물론이다.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나이를 먹고 생각은 깊어지고 직간접 경험은 많아지면서 별거 아닌 일도 복잡하게만 느껴진다.
더욱이 '평범한 또래'에 속하지 못한 나와 동일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많지는 않기에
내 메시지로 공감대를 만들고 누군가를 위로하기엔 제한적이고 알게 모르게 편견도 존재한다.
갈수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보다는
정보성 콘텐츠에 집중하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정보성 글들은 '옳고그름'은 명확하게 밝힐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러시아 문화와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를 찾아보고 붙잡으며나름대로 조금씩 남겨 보는 1년을 보냈다.
양보다는 질을 우선시하다 보니 남긴 글 수가 많지는 않다. 사실 여부, 가독성 등 이것저것 맘에 안 드는 걸 고치다 보면 글 하나 완성하는데 이틀 이상은 족히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이란 꾸준히 써야 하는 법.
앞으로는 글의빈도와 양도 좀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보기 아름답고 좋은 끝이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 능력치 시험 ]
나는 내 능력을 잘 의심하고 믿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요즘엔 책은 누구나 마음 먹으면 쓸 수 있고, 회사생활 잘하는 사람이나 퇴사 성공 스토리 가진 사람도 많으니,
내가 그렇게 특별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남들보다 훨씬 뛰어난 건 없지만
그래도 몸부림치며 열심히 살아온 지금의 나를 만든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결코 모든 상황과 행운이 나의 힘과 능력만으로 된 건 아니리라.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회 생활에서 호연지기는 필수 '그럴 수 있어'
1-2년 전부터 첫 회사의 동기들이 간부 계급을 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부장이라니 현실감 전혀 없지만 시간은 흘러 그들의 경력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 리더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편,
들판으로 뛰쳐나온 나는? 일도 사랑도 성공이라 말할 수 없는 어중간한 경계인인 나는?
수없이 스스로 질문했고 자기객관화해왔다.
회사에서는 지낸 연수를 확인하는 경력증명서라도 발급해주지만,
들판에 나와 지냈더니 '찍어 낼 잉크도 필요 없는' 잡다한 이력뿐이었으니 남는 게 없었다.
얽혔지만 성장은 한다
그러나지나온 시간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을 올해 어떤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알게 됐다.
러시아와 관련성 떨어지는 일인데다, 상황은 앞뒤가 꽉 막혀시작도 하기 전에 도망치고 싶긴 했지만,
'경력이 얼만데 그것도 못하냐'는 소리는 듣기 싫어서 해나가다 보니 결국 6개월의 대장정을 책임지고 말았다.
프로젝트 수행 과정 중에서
활용하기 좋은 잡다한 능력을 내가 꽤 많이 갖추고 있음을 깨달았다.
또 그간의 인맥들도 생각보다 상당했다.
평소 연락도 잘 못하고 지내는 편이라 다소 속 보이긴 했지만, 부탁할 지인들이 있는 게 어디인가?
간만의 안부로 느닷없이 들이댄 부탁이나 초면에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닥쳤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그들의 호의적인 모습에 감사했다. 내가 헛살진 않았구나.
결국은 무엇이든 혼자 완성하는 일은 하나도 없고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서로 도움을 구하고 또 도움을 주며 해결해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쌓인 연차나 사회에서 지낸 시간들은 모두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태도의 성숙 척도가 되는 것 같다.
사람관계란, 참 지나고 보면 '이제야 알겠다' 하면서도
매번 닥치면 처음처럼 어려운 건 사실이다.
여전히 고수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근불가원의 원칙. 역시 사회에서 사람 사이에 약간의 거리감은 필요하다.
대장정 그 한가운데
1년의 절반이 업무 고충으로 가득해 괴로웠지만,
아무튼 프로젝트 덕분에 일적으로나 관계적으로나 한계치를 제대로 시험할 수 있었다.
매번 느낀다.
지난 시간 겪었던 모든 일들이 그 어느 것 하나 헛된 건 없다.
그러니 지금 매순간 늘 최선을 다하며 감사하자.
때지난 작가 나부랭이 타이틀로 지낸지 6년이 좀 넘었다.
한국 사회에서 타이틀이 중요한지 잘 실감하지 못했었다. 물론 자격지심으로 요즘 살짝 위축된 것일 수 있으나, '소속'에 민감해진 건 어쩔 수 없다. 하다 못해 자기소개 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직장이니 말이다.
이제는 시기적으로 새로운 타이틀을 만들거나 또 다른 책을 쓸 때인 것 같은데, 그 어느 것 하나 쉽지는 않아 보인다. 내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묻는 끊임없는 내면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어 그렇다.또 주변 상황이나 외부적 요인으로 마음이 흔들려 섣불리 선택하게 되진 않기를 바라는 맘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