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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소녀 Mar 30. 2016

닿을 듯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2)

뭔가 있을 것 같은 그 도시, 가보고 싶지 않나요?

블라디보스토크 첫번째 이야기를 쓰고 한 달이 훨씬 넘었다.


한국에서는 역시 계획대로 살기 어렵다. 모든 일들이 급하고 빨리 해야될 것들 투성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10년 후, 그 이후의 발전한 자신을 꿈꾼다. 그러니 중요한 지금을 놓치고 산다.

난 그러기 싫다. 러시아사람들처럼 다시 오지 않을 '지금'에 집중하며 순간순간 행복하게 살거야.


아무튼 다시 이어서 블라디보스토크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5 격세지감


가장 최근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온 것은 2015년 겨울, 그리고 여름이었다. 유라시아 친선특급 행사의 첫 시작이었고 또 예전 내 고향이었으니 얼마나 설렜겠는가. 블라디보스토크 근무를 마치고 2011년 1월 한국으로 복귀한 이후 처음이었다. 워낙 발전이 없었던지라 오래 지낸 교민들은 그곳이 10년, 20년이 지나도 시간이 멈춘 도시라고 했었다. 하지만 2012년 APEC 개최를 계기로 블라디보스토크는 꽤 많이 변해있었다. 4년 만의 방문에서 나는 달라진 모습에 많이 놀랐다. 그 혼란의 도시가.... 상전벽해였다.


먼저 비행기 티켓 가격부터 놀라웠다. 예전에는 족히 700~800달러는 줘야 서울-블라디보스토크 왕복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200달러도 되지 않는 가격의 저가항공들이 생겼다. 그 당시 이 가격이면 자주 오갔을텐데.


다음으로는 공항도 충격이었다. 처음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던 날, 달랑 열려있는 방문같은 문짝이 출구여서 경악을 금치 못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신식 공항으로 바뀌어 있어서 솔직히 좀 낯설다. 자동 입국신고서 작성에, 모든 것이 현대화된 시스템... 여긴 어디, 난 누구? 게다가 공항-도심 간 급행열차라니! 택시기사와 말도 안되는 가격흥정에 황당했던 기억, 지인에게 공항 픽업을 부탁하면서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있는데. 세상 일 참 모를 일이다.

(좌) 예전 창고같던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내부  (우) 현재 신식의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내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지내면서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찾던 일명 '독수리 언덕'을 가보았다.

금각만과 항구가 보이고 가슴이 뻥뚫릴 듯한, 가끔은 눈이 나를 속이면 나폴리라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그런 곳이었다. 지금은 금각만 다리가 생겨나 또 다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내가 지낼 당시 기둥만 세워져 있어 '도대체 저 다리는 만들어지기나 하는걸까?' 의심이 들던 그 다리... 지금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이 되었다. 사실 미스테리인 것은 2010년만 해도 이 다리는 APEC이 개최 이전에 때려 죽어도 건설되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가 파다했는데... 어떤 마법을 부린걸까? 아마도 안되는 것도 되게 하는 푸틴 마법에 걸렸었나보다.


(좌) 예전 독수리 언덕에서 내려다 본 금각만-다리 없음  (우) 현재 독수리 언덕에서 내려다본 금각만


다른 마법에 걸린 오페라 하우스와 루스키섬(2012 APEC이 개최된 곳)의 극동연방대학교 캠퍼스는 외관상 '블라디보스토크가 이제 좀 살만해졌네'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안타깝게도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예전의 모습을 알던 나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참 재미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교통체증은 여전하다. 한국의 중고버스는 아직도 다닌다.

예전에는 차가 많지 않아서 도로에 신호등이 거의 없었다. 신호체계를 갖출만큼 도로가 복잡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신호가 불필요할 정도로 차가 많지도 않았다. 그래서 눈치 운전이 성행했다. 나는 안다. 눈치 운전이 신호등 준수 운전보다도 훨씬 더 안전하다는 것을. 운전자들이 서로 아이컨택을 하며 '너 먼저가'하는 제스쳐는 멋있기까지 하다. 나도 많이 흉내내봤다. 이들은 급할 것이 없으므로 주로 양보를 많이했다. 끼어들기에도 관대하다. 너도나도 끼어들어본 경험이 있으니 잘 양보해준다. 물론 러시아 사람들의 난폭 운전은 유명하기도 하지만, 반면 이런 관대한 모습에 여성 운전자였던 나는 반했다.

지금은 차도 너무 많고 통제가 안되니 신호등은 필수가 되어버렸다. 옛날이 더 인간적이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차가 꽉 막혀있다


또 하나 변한게 있다면 콜택시가 진화했다는 것이다. 지하철이 없는 블라디보스토크는 주로 이동수단이 버스나 트롤리버스, 아니면 택시다. 택시가 우리나라처럼 부담스러운 대중교통이라기보다 이들에겐 일상화된 수단인 것 같다. 블라디보스토크 내 이동수단도 마땅치 않고 지형이 험준해서 차 없이 가기 어려운 곳들도 많다는 환경적 특수성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가격도 착하다. 200루블 내외로 미터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정해놓고 목적지까지 가니, 택시를 타고도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에는 콜택시 앱이 발달해서 예약을 하면 차번호와 가격을 알려준다. 빠르고 신속하고 고객관리도 해준다. 이런건 한국보다 나은듯!


#6 이건 꼭 해보세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해볼만한 것들은 참 많다. 나의 뇌리 속에 그곳의 기억이 뚜렷한 것도, 평범하지 않은 경험들을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로 가공되지 않은 자연과 함께 한 체험이라 더 의미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도심에서 바닷가를 거닐 수 있다. 얼핏 보면 흡사 한국 시골의 불량 놀이공원에 온 듯한 장소도 있고, 나름 예술가들도 나와서 작품활동 내지는 돈벌이를 한다. 시내 바닷가 산책로는 생각보다 짧지만, 곳곳에서 재미난 구경거리들이 많다. 특히 햇살이 뜨거운 여름, 나는 주말 바닷가 산책을 하다가 눈을 뗄 수 없었더랬다. 러시아 사람들이 일광욕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한 자유로운 영혼의 일광욕 과정을 보면서 신기해했다. 평상복만 입고 외출한 한 여성이 바닷가 백사장 어느 한 곳에 자리를 잡더니, 조그만 거적대기를 꺼냈다. 그 거적대기를 펼치니 딱 한사람이 누울만한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그녀는 상의와 하의를 벗기 시작했다. 헉! 했는데 다행히 수영복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고는 드러누워 일광욕을 시작했다. 이들에게 이런 모습은 아무렇지 않았다.


시내 바닷가에서 일광욕을 즐기다


또 블라디보스토크 바닷가! 하면 곰새우를 빼놓을 수 없다.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그 이름도 재밌는 곰새우. 러시아어로는 메드베드까(медведка)인데, 정말 새우가 곰처럼 생긴 느낌이다. 가재와 새우의 중간 맛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참 맛있다. 시내 바닷가에 있는 어시장에서 이미 삶은 것들을 대량으로 팔고 있다. 지금도 종종 그 짭쪼롬한 맛이 생각날 때가 있다.


시간을 돌려 겨울로 가보면, 블라디보스토크 겨울 바다에선 얼음낚시가 제격이다. 날씨가 춥고 바람도 많이 불어 체감기온은 영하 20~30도다. 염분이 있는 바다가 얼어붙을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춥다는 것일까? 부동항으로 알려져있지만 실제 바다가 얼어붙는다.

얼음 위 차와 사람들. 멀리서 보면 하얀 종잇장 위의 무수한 점들로 보인다


얼음은 추위가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그 두께가 깊어진다. 어느정도 얼어붙은 후에나 사람들이 그 위를 다니기 시작하기 때문에 초겨울이나 늦겨울 얼음바다 난입은 위험하다. 가끔 덜 얼어붙은 바다가 갈라져 빠져 죽는 사람들도 종종 생긴다고 한다. 얼음 바다를 자동차로 달리는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짜릿하다. 그래서 그런 사건들이 왕왕 발생하는걸 이해할 수 있다.


얼음 위를 달리는 것은 정말 신기하다. 도로체계도 없어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고 교통법 적용대상도 아니라고 한다.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차가 빙그르르 돌기도 한다. 한참 가다보면 멀리 수많은 검은 점들이 보인다. 그곳이 바로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포인트인 것이다. 그 작은 점들은 가까이 가면 자동차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그 옆에는 낚싯대를 잡은 아저씨들이 보인다. 도대체 이 추위 속에서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걸까?


얼음낚시하는 러시아 사람들


얼음낚시, 나름의 매력이 있다. 주로 꼬류시까라는 생선이 많이 잡히는데, 잡아서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한단다. 날씨는 춥지만 잡은 생선은 그냥 얼음 위에만 올려놔도 자동 냉동이 되니 참 재밌다. 바람이 심하고 한파인 날에는 물고기도 잘 안잡힌다고 한다. 아, 그리고 얼음 낚시하면서 먹는 우리나라 컵라면은 정말 최고다. 우리나라 사람이 얼음낚시꾼들 대상으로 컵라면 장사를 하면 대박날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할 수 있는 자연체험은 다양하다. 산으로 가면 더덕, 두릅, 미나리, 송이버섯 등을 직접 따올 수 있다. 후문에 따르면 두릅이나 송이버섯 등의 경우, 이미 한국 사람들 사이에 자라는 장소가 알려져 제철에 이미 누군가가 한 번 훑고 지나가면 채집할 것이 별로 없다고도 한다. 겨울 지방도시에서는 나무에 매달려있는 하루살이 수집도 가능하다. 나무를 타고 올라 새집같은 하루살이를 떨어뜨리고 잘게 잘라서 한약재로 우려먹기도 한다.


연해주산 야생 두릅


참으로 재미있는것이 가지가지다.

직관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 했을 때 나올만한 이야기거리는 아닌 것 같다.


#7 에필로그


그렇다면 블라디보스토크!하면 먼저 떠오르는것이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작점이라는 점이다.

장장 9,288km 잇는 긴 여정의 시작이다. 이미 영화 '태풍'에서도 많이 알려진 블라디보스토크 역사. 이 곳 관광을 온 사람들은 놓치지 않는 주요 포인트이기도 하다. 2015년 유라시아 친선특급 원정의 시작도 바로 이 곳에서 진행되었다. 하나의 대륙을 꿈꾸며 보냈던 그 시간도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플랫폼


생각해보면 유라시아 친선특급 원정대로 참여하면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함께 여행을 시작하면서 친해지게 된 대원들. 그들 중에는 나처럼 러시아를 잘 아는 사람도 있었고, 그 나라에 대해서는 귀동냥만 해서 알고 여행길에 올랐던 사람들도 있었다. 대체로는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도시가 세계 어느 구석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서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북한 때문에 열차를 타고 갈 수 없어 비행기로 이동해야 했다.

비행기 안에서 사람들은 여행에 들떠있었고, 장거리 여정에 의욕이 대단했다. 나는 나름대로 러시아에 대한 썰을 풀기도 했고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어차피 2시간만 조금 넘으면 도착할거 미리 기운 뺄 필요도 없었다. 약 2시간 30분 후 곧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할거라는 기내 안내메시지를 들은 대원들은 놀라며 "벌써 도착한거에요? 8시간은 더 가야하는거 아니에요?"라고 반응했다. 블라디보스토크도 유럽에 붙어있는 줄 아셨거나, 아니면 비행기를 많이 안타보신 분들이리라. 아무튼 이렇게도 별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도시다.

그 이후로 내가 러시아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그 나라의 매력을 알려줘야 겠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다.


떠나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 요즘 인천-블라디 왕복하는 저가항공사(시베리아 항공) 비행기 모습


얼마 전에는 갑작스럽게 지인이 연락을 해왔다.

올 여름휴가 계획을 짜고 있는데, 블라디보스토크 항공료가 생각보다 저렴하여 다녀올까 하는데, 거기 도시가 어떻냐는 문의였다. 역시. 지금은 블라디보스토크가 저렴한 비행기 티켓 가격 때문만이라도 한 번쯤은 호기심이 생기는 도시가 되었구나. 물론 루블 가치 폭락으로 러시아 여행은 가히 황금기가 되긴 했다.


아무튼 이 나라와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낯선 도시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에 내가 왜 이리 반가운걸까. 나 혼자 알기 아까운 비밀들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얻는 기쁨. 또 다른 사랑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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