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의 주도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러시아 도시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는 러시아어 'владеть(정복하다)'와 'восток(동쪽)'이 합쳐져 '동방을 정복하라'는 의미를 가졌다. 러시아의 극동지역 진출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여실히 드러난다고나 할까. 재미있는 점은 1860년까지 중국 영토일 당시 중국어로 블라디보스토크는 해삼위(海參威)로 불렸다는 점. 우리가 생각하는 해삼이 그 인근지역에서 수확이 많이 되었기 때문이란다.
아무튼, 블라디보스토크.
이름만 들어도 왠지 삭막함이 느껴지는 이 도시에 필자는 엄청난 애착을 가지고 있다.
비단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러시아 도시여서만은 아니라, 필자의 가장 젊은 시절에 사계절을 모두 두 번 이상 보낸 절실함이 깃든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도시와는 달리 '여행지'가 아닌 '삶의 현장'으로서 이 도시를 신경써서 이야기하려 하다보니 그 부담에 미루고 미루어 작성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시작하겠다고 쓴 지가 어언 작년 11월이었는데 말이다...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
#2 감추어진 보석
'마피아가 살고 있는 회색빛 거친 항구도시?!'
필자가 처음 가지고 있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 편견이다.
도시 곳곳 강력범죄로 위험할 것 같았고, 시골인지라 생필품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지 걱정도 했다. 2008년 여름, 해외 파견근무로는 처음 발을 들이게 될 그 곳에 대해 마치 유배지에 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엇 하나 기대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각오를 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 분명 모스크바와는 다를거야... 뭐 제대로 되어 있겠어?"
물론 환경은 예상대로였지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가서 그래서인지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 나의 인상은 오히려 좋았다. 물론 처음 도착하여 필자의 짐 하나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점과 공항을 나서며 열린 방문을 지나니 정말 출구였다는 사실에는 다소 당황했지만 말이다. 그래, 이해해. '에따 러시아(이것이 러시아)'니까!
그것 말고는 도시 규모는 작아도, 그리고 좀 투박하고 어설퍼도 백화점, 마트, 영화관, 약국, 시장, 카페, 서점 등 나름 있을 건 웬만큼 다 갖추어져있단 사실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 특히, 대형마트에서 한국산 식품(과일, 과자, 라면, 김 등)을 파는 것을 보고 살만한 곳임에 더욱 감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한국보다 맛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딤섬 가게, 맛있는 빵과 케이크를 만드는 카페, 고구마를 파는 시장 등 새로운 장소들을 매주 발굴하며 허전함을 달랬다.
그렇게 블라디보스토크의 숨겨진 보석을 하나씩 발견하는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던 것 같다.
※ 사실 지금 블라디보스토크는 필자가 있을 당시(2008~2011년)보다 여러 여건에서 훨씬 더 좋아졌다.
필자가 좋아했던 주정부 청사 앞 카페(지금은 바뀜)
#3 변덕쟁이도 적응이 되는 법
사람이 살아가는데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 것 중 하나는 단연 기후다. 여행으로 며칠 머물다 갈때만도 그 나라와 도시에 대한 인상이 날씨로 인하여 상당히 결정되는데, 순간순간의 날씨가 내 마음의 문을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흔들어놓겠는가.
블라디보스토크의 날씨는 사람의 성격으로 비유하자면, '변덕쟁이'다.
정형화된 날씨가 있는 건 아니고, 심한 날에는 하루에 몇 번이고 날씨가 변한다. 아침에는 해무가 일었다가 비도 내렸다가 오후에 해가 나는가 하면 좀 지나서는 바람이 세차게 분다. 겨울에는 눈이 비처럼 내리는데 너무 촘촘히 내려서 앞을 볼 수가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렇게 한 두 시간 지나면 사람이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눈이 쌓인다. 그 눈은 또 녹았다가 다시 기온이 급강하하면 지저분한 빙판길로 그대로 얼어 붙는다. 어떤 때는 기온이 너무 떨어져 자동차 배터리 방전으로 시동이 걸리지 않아 차를 버리고 길을 나서야 할 때도 있다. 겨울 기온은 대체로 영하 20도 안팎인데, 바람 부는 날이면 체감 온도는 영하 30도 훨씬 더 내려간다고 봐야 한다.
녹은 눈이 그대로 얼어붙은 빙판. 미끄럼 방지 신발은 필수.
이곳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추위에 잘 단련되어있고 참 잘 참는 것 같다. 그 추위에도 추운 버스정류장에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버스를 그저 그냥 아무렇지 않게 기다린다. 인내심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들이 참 존경스럽다. 지하철도 없는 환경에서 버스나 택시, 트롤리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니 생계를 위해서는 그래야 하겠지. 물론 지금은 자가용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많아 이제 이 곳에 러시아워라는 것은 따로 없는듯하다. 옛날엔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 신호등조차 없었는데 말이다.
차가 무덤에서 나오지 못했다.
아무튼 이런 열악한 기후 속에서도 블라디보스토크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두 달 남짓 되는 여름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여름 블라디보스토크의 기후는 앞서 말한 추위와 변덕을 모두 보상해줄 수 있을만큼 훌륭하다. 기온은 영상 25도 안팎으로 올라가도 습기가 차지 않은 더위라서 일광욕과 피서에 그만이다. 이곳 사람들이 해만 나면 무조건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서 거적대기(?)를 바닥에 깔고 옷을 홀라당 벗고 일광욕을 하는 이유가 다 있다. 기나 긴 겨울을 보냈으니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이다. 나도 이 때의 생활패턴이 몸에 익어서인지 코리안스타일이라 일광욕은 아니지만, 해가 필자는 주말에는 별다른 목적이 없어도 무조건 집 밖을 나서서 산책을 한다.
여름이라면 날씨는 응당 이정도 되어야 한다.
종종 여행일자를 잘못 맞추고 와서 안좋은 기후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찾는 여행객들을 마주했는데, 그냥 진정한 블라디보스토크의 날씨를 경험하고 가시는 거라고 위로해드리곤 했다. 해무에도, 거센 바람에도, 퍼붓는 눈에도, 한달 내내 해가 나지 않는 우기에도 그냥 그런거라고, 현지 체험이라 말하고 적응하는 것이 오히려 기억에 남아 추억이 될거라고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기후가 열악해도 거기에 다 적응을 하면서 사는건가 보다.
#4 우리 민족의 혼이 잠들어있는 곳
극동 연해주 지역은 여행지로서의 매력도 있지만 우리 민족의 터전이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차로 한 두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우수리스크시는 우리 조상들이 일제 강점기 당시 이주하여 한인마을을 형성하여 지냈던 도시 중 하나다. 우리 조상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늘 나라를 위하여 희생을 마지 않았던 독립운동의 근거지이기도 한 것이다.
현재 우수리스크시에는 이상설 선생 유허비, 안중근 의사 기념비, 최재형 선생 고택 등이 고스란히 있다. 우리나라의 힘겨운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이는 단순한 비석으로, 허름한 집으로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 후손들이 이렇게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이기에 생각할수록, 바라볼수록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상설 선생 유허비
최재형 선생 고택
그리고 이 곳에는 왠지 한국인으로 방문하면 항상 시골 할머니 댁에 간 것처럼 나를 반겨줄 것 같은 곳이 있다. 고려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하면서 지은 '고려인문화센터'가 그 곳이다. 이곳에는 발해시대부터 한인의 연해주 이주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관, 공연장, 교육센터 등이 있다. 매년 한국의 명절 설이나 추석때는 한인 행사가 열린다.
고려인 문화센터 입구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끝이 보이지 않은 먼 길을 떠나게 된 우리 조상들. 목적지도 모른 채 가진 것 없이 열차에 올라야 했던,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던 그 분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거저 얻어서 사는 삶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