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름이 그대로 붙어 있는 과자, 라면, 한국산 귤이나 딸기, 심지어 간장 같은 기본 소스까지!
물론 블라디보스토크의 식재료나 공산품은 중국, 한국, 일본 등 주변국에서 수입해오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한국 제품이 보이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대신 수입산이라 비싸다. 시골이라 해서 결코 물가가 저렴하지 않았다. 모스크바와 맞먹을 정도였다.
마트에 가는 걸 좋아해 이것저것 비교하며 구경하는 재미로 장을 보고 계산대에 서면,
매번 1,000루블(당시로 3만원 이상의 가격)짜리 지폐를 늘 만원 쓰듯 했으니.. 결코 싸지 않은 물가다.
아무튼 매일 장보고 밥 해먹는게 일이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요리는 잘 안 하게 되었고, 그래서 매번 한국에서 공수해온 재료로 찬거리를 넉넉히 만들어두고 밥만 해서 먹곤 했었다. 그게 제일 건강식이었다.
처음에는 외식만 했다가 살이 찌게 되자, 운동과 건강식을 병행하게 된 건 안 비밀.
(1) 자연에서 갓 데려온 재료로 웰빙
This is 두릅!
이곳에 와서 신기하고도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철따라 현지 자연산 식재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나라와 지형과 기후 환경이 비슷해서인지,
한국인이 잘 채취해 먹는 식물들이 도처에서 자라났다.
살짝 날이 풀리려고 한 5월의 어느 날,
사모님들이 두릅이 많이 자라는 곳을 아신다 하여 쫓아간 적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특정 포인트에서 나무 끝에 돋아난 두릅을 채취했다. 그 전까지는 두릅이 땅 속에서 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물을 직접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래서 체험 학습이 중요하구나...
두릅 초무침
열심히 채집한 두릅은 신문지에 싸서 냉장고에 모셔놓고 반찬으로 해먹었다. 두릅 초무침은 최고의 반찬!
얼마나 건강해지는 느낌이던지... 새순을 품고 있는 녀석이니 먹으면 그 에너지가 나에게 올 거라 믿었다.
또 어떤 날은 아는 분께서 미나리를 많이 캤다면서 주셨다.
한국에 있었으면 거들떠도 안 봤을 미나리, 직접 나물로 만들어 먹어보니 향긋하고 맛도 좋은 거다!
역시 나는 한국 사람이었어.
갓 딴 겨우살이
겨울이 끝날 무렵 겨우살이를 따러 근교로 가기도 했다.
좋은 한약재라는데, 난 뭔지도 모르고 그냥 재미나겠다 싶어 지인들을 따라서 간 거였다.
나무에 기생하며 살고 있는 겨우살이는 꼭대기에 새집처럼 매달려 있어 직접 따기는 어렵다. 현지 나무 타는 사람을 섭외해 나무에서 떨어뜨려야 한다.
말려서 차로 우려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말 한 마디에, 떨어진 것 중 한 보따리를 들고서 집으로 가져왔다. 감당도 못할 겨우살이를 하나하나 자르며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건가 싶기도 했지만.
'겨우살이.. 이거를 감당도 못하게 많이 따와서 내게 한 포대를 주셨는데.... 다음 날 집에서 3~4시간 앉아서 주구장창 잘라냈더랬다. 지금 집에서 널부러진 채 건조 중..."
- 2009.4.8 나의 블라디 주재원 일기
그밖에도 더덕, 자연산 송이, 조개 등등 자연이 주는 선물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더욱 귀하게만 느껴졌다.
또 그걸 보고 내 몸이 저절로 찾게 되는 것 보면 내 출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당시 불법(?) 채취를 했던게 아닐까 싶은데, 그래도 바다에서 해삼이나 성게 채취 외에는 크게 생각 안했던 것 같다. 어차피 그들이 식용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기에.
"(사장님과 각국에 주재한 직원들과의 사이버미팅에서) 심지어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낫게 여가시간을 보내시는 분도 있었고. 흠. 여기선 주말에 두릅, 송이버섯, 겨우살이 따러다닌다고 할 걸 그랬나."
- 2009.12.30 나의 블라디 주재원 일기
야생의 겨우살이
(2) 시그니처 메뉴
덕분에 여러 모로 나의 요리 실력도 조금씩 업그레이드되었다.
보통 외지 생활을 하며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거나 초대를 받아 갈 일이 있으면,
자기만의 시그니처 메뉴가 있어야 하기 마련. 나의 주전공은 밑반찬, 특별히 요리라고는 잡채나 떡볶이 정도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분들에게 제대로 인정 받은 요리가 하나 생겼다.
바로 밥통 치즈케이크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전기밥솥은 꽤 유용했다. 콩도 쪄주고, 국도 만들어주고, 죽도 삶아주고. 모스크바 교환학생 시절부터 다양하게 애용했었다.
물론 집에 오븐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 간편하게 만드는 먹거리를 시도하고 싶었다. 특히 베이킹 메뉴로!
그래서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아, 내 나름대로 응용을 해봤다.
부드러운 빵의 식감을 전기밥솥으론 만내긴 어려울 것 같아, 꾸덕한 치즈케이크를 선택했다.
밥통 치즈케이크
그리고 최대한 먹는 사람의 건강을 생각해서,
러시아에 차고 넘치는 꿀, 특히 향이 있는 보리수꿀을 넣어 케이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크림치즈와 보리수꿀, 달걀과 약간의 밀가루로 반죽을 만들고 밥솥 취사 버튼을 누르면,
많이 달지 않으면서도 크림치즈 향이 강한 밥통 치즈케이크가 탄생한다!
그 위에 블루베리잼을 바르고 살짝 오븐에 구워내면 더 맛있다.
비록 디저트였지만 내놓는 곳마다 나의 메뉴는 메인디쉬급의 인기를 자랑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치즈케이크와는 달리 약간의 쫀득함이 있어 더 맛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선보여, 지인들 사이에서 나의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잡게 되었다.
각종 메뉴들
"최근에는 귀찮아서 부엌에 불피울 일이 많지 않았었는데.... 어제 저녁 이벤트를 계기로 오랜만에 칼을 들었다. 어제 선보인 요리는.. 단골 메뉴지만.. 1) 치즈케이크 (완전 대박ㅋㅋ) 2) 해물 떡볶이+파스타 (잡탕이지만 떡볶이맛임) 다들 맛있게 먹어주어 대만족ㅎㅎ 오늘은.. 냉장고를 좀 비울 겸사겸사 냉동실에 있던 복분자를 꺼내 꿀이랑 끓여 복분자 잼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복분자니까 몸에 좋겠지?! 또 예전에 중국집에서 인상깊게 먹었던 가지 탕수를 떠올리면서 마침 얼마전 감자전분도 샀겠다.. 가지, 야채들을 볶아서,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보았는데..... 2% 부족하다ㅋㅋ 아무래도 가지에 간을 제대로 못 들인듯. 역시나 아직은 손놀림이나 민첩성은 떨어지는 요리 견습생. 하면 재밌는데 같이 먹을 사람이 있어야 자주 하지, 혼자 있으니 다 별 의미가 없어보이는건 사실."
- 2009.8.9 나의 블라디 주재원 일기
(3) 간절해서 저절로 개척한 메뉴
정말 이런것까지? 할 만한 메뉴도 있다.
추석인데 송편이 너무 먹고 싶은 거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파는 떡은 중국식이라 입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쌀가루를 사서 반죽을 만들고 마침 한국서 가져온 호떡믹스의 남은 소와 참깨를 넣어 보암직한 송편을 빚었다. 문제는 찌는 거였는데, 찜기가 없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증기를 전달시키는데 성공했다. 분위기는 비슷하게 연출했으나 떡의 쫀득함은 아쉽게도 대실패.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빚은 송편
"추석이다. 블라디에 나와 맞이하는 세 번째 추석 (ㅠㅠ) 송편이 먹고 싶어서 집에 러시아어로 "쌀가루"라고 적힌 정체불명의 가루가 있길래 송편만들기 시도. 실패할게 뻔하니 조금만ㅋㅋ 따뜻한 물로 어설픈 반죽을 만들고, 마침 호떡속 가루가 좀 남았길래 거기다 참깨 좀 섞어 내용물 준비.
사실 반죽이 '떡'의 느낌은 아니란걸 알면서도 계속 진행. 집에 찜통도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전자렌지용 삼발이가 있어서 살짝 세워놓고 뚜껑덮어 증기로 떡을 찌자는 심보로ㅋ 찌고 나선 윤기를 내기 위해 참기름을 슥슥 발라줌. 막상 해놓고 보니 모양은 그럴듯한데, 가루의 한계가 있었는지 떡 같은 찰기는 없었다....ㅜㅜ 푸석거리는 떡.
그래도 찰기 빼곤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슷했음. 나름 만족^_____^"
- 2010.9.22 나의 블라디 주재원 일기
그밖에도 베이킹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파운드 케이크와 곰보빵도 만들어 봤고,
오븐에 구운 돈가스, 떡볶이 등등.. 항상 나의 철칙은 '원래 레시피보다 좀 더 건강하게 만들어보자'였다.
설탕 대신 꿀, 밀가루 대신 쌀가루, 버터 대신 올리브유처럼... 웰빙으로.
그렇게 시도해 나가면서 나의 요리 실력은 매일 일취월장했다.
다양한 요리의 세계
피날레, 김치 겉절이를 담구다
간절함의 절정을 찍은 메뉴는 바로 김치였다.
김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더욱이 구하기 쉬운 반찬이었는데, 왠지 직접 담궈 먹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필을 받은 어느 날 중국시장에서 미니 배추를 사다가 소금에 절여서 다음날 짜고 양념을 넣어 겉절이처럼 무쳐먹었다.
이제 정말 한국에 갈 때가 됐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한국 돌아가기 세 달 전 시도한 음식이었다.
아무튼, 러시아에 와서 제일 많이 발전한 것이 요리! 그리고 운전이라고 자부했는데,
안타깝게도 한국에 돌아온 이후 이 두 가지 모두 퇴화하고 말았다. 다시 소생시킬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