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오자 차가운 바람과 함께 도시의 '블러디'한 모습이 슬슬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과 개인적인 시련이 세차게 몰아치면서 말이다.
때는 많은 출장자 분들께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찾은 겨울이었다.
나도 부임한지 5개월차가 되었으니 어느 정도 눈치껏 일을 할 때기는 했다. 한국 출장자들이 찾아와 치르는 행사는 딱 두 번째라, 그저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원래 손님 맞이가 다 그렇듯 말이다.
현지 시찰, 해외 바이어 상담회 등의 일정이 마련되어 있었고 하루하루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손님맞이 행사 준비
상담회에 오기로 한 바이어가 안 오는 건 아닌지, 그때그때 체크하지 않으면 펑크가 났기에
현지직원들 재촉하고 확인하길 수십 번, 식사가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 불만은 없는지 살피고, 돈 계산하고,
정작 출장자들의 성과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막내들이 늘 그렇듯 행사가 일단 잘 굴러갈 수 있게 일정만 챙겨가며 지냈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며 날씨가 꽤 추워지고 있구나를 느꼈다.
'내가 오던 때가 여름이었는데 이제 정말 겨울이구나.'
겨울 러시아는 모자가 필수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다.
하지만 출장자분들은 외부 일정에도 생각보다 모자 착용을 많이 안하셨던 것 같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겨울, 바다가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
아무튼 그렇게 행사는 무사히 끝났고,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날 밤 모두가 모인 만찬 자리가 있었다.
나는 회사 업무를 마치고 뒤늦게 도착해 함께 저녁을 막 먹으려던 무렵,
갑자기 다급하게 식당 위층 로비에서 큰일이 났다며 누가 쓰러졌는데 여기 손님이 아니냐 한다.
알고 보니 출장자 중 한 분이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돼 03(우리나라로 치면 119)를 불렀다고.
뭐라고요?
다행히 우리 현지직원과 총영사관 담당자가 최선의 조치를 취해주셨으나,
엑스레이(X-ray)를 찍을 만한 병원이 없어 우왕좌왕하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맞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의료가 열악한 지역이다. 시설도 낙후됐고 시설도 변변찮고 무엇보다 믿을 수 없다.
생리통으로 아파하는 학생에게 당장 개복을 하자고 하는 곳이 러시아, 특히 이곳의 병원이라고 누군가 그랬었다.
쓰러진 출장자는 뇌출혈이었고 어찌저찌 수술까지 받았다지만 그래서 더더욱 걱정이 됐다.
추운 날씨에 모자도 안 쓰고 다닌데다, 나름대로 본인도 실적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가 가중된 탓에 이런 변을 당하신 거였다.
다음 날,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회사 임원분과 출장자의 부인께서 급행 비자를 받아 들어오셨다.
나는 상황을 확인하고자, 또 유일한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부인분과 함께 병원에 동행하기 위해 나섰다.
그때 처음으로 악명 높다는 러시아 병원이라는 곳엘 가봤다.
"처음 가본 병원.. 참 열악해 보이던데 여기가 가장 좋은 곳이란다. 총영사님과 마침 삼성병원에서 출장 오신 의사 두 분이 상태를 점검하시더니 상황 설명을 해주신다. 출혈이 굉장히 많았고, 그래서 회복이 정상적으로 진행될지는 알기 어렵다 한다."
- 2008.12.20 나의 블라디 주재원 일기
이미 골든타임을 놓치신거였다.
어저께까지 열일하시던 출장자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산소 호흡기를 낀 채 가만히 누워있다.
부인께서는 그 모습을 보시고는 눈물을 보이셨고, 나는 위로를 해드릴 길이 없어 그냥 자리만 지켜드렸다.
그 상황에서 내 눈에 보인 건 차디찬 병원 중환자실 풍경이었다.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흰 타일에 낡아보이는 의료기기, 이곳이 위생적일까 의구심이 들게 하는 병원 소품과 가구 하나하나.... 도시에서 가장 좋다는 병원이 이 정도라면, 서민들은 도대체 아프면 어떻게 하는 걸까?
그저 아득하기만 하던 그 순간. 블라디의 야경처럼 머리가 온통 까맣게 됐고, 드문드문 빛이 보일 정도
다음 날도 병원 출입에 함께 들어갔는데, 차도는 없었다.
그저 이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뿐.
그 상황이 참 짠하면서도 현실적인 내 맘 속에는 '아직 못한 일이 참 많은데' 걱정이 가득했다. 행사를 마치고 당장 밀린 일들이 산적하건만, 처리하지 못하고 매일 계속 병원행이었기 때문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게 이런 걸까. 함께 슬퍼해 줄 틈조차 없는 내 모습이 싫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안타깝게도 출장자께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멍했다. 어제 내 생각만 했던게 괜시리 죄송했다. 무섭기도 했고, 어떻게 해야 하나 당장이 걱정됐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와서 이런 일을 겪으신 출장자도 참 안 되셨고, 가족들 슬픔은 더할 것이고,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나도 참 어려운 곳에서 일하고 있구나 제대로 실감했다.
그때부터는 모든 일이 행정과 외교적 절차로 진행됐고,
장례와 이송 문제 해결 과정에서 나는 출장자분의 명복을 빌어주는 자리에 가게 됐다.
내가 해외 파견 나와서 러시아 장례 업체까지 방문하게 될 줄 알았을까.
"고인과의 마지막 인사를 위해 관이 모셔진 장례 업체로 갔다. 국화꽃을 놓고 그분을 뵈었는데, 그냥 잠드신 것만 같은 모습. 죽은 사람 같지가 않아 이상하다. 사모님도 생각보다 담담하셨고, 참 이상도 했지만, 여튼 잘 모셔져 다행이었다. ...(중략) 나는 해줄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지금도 미련하게 조용히 내 자리만 지키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같이 다니고 확인하고 같이 슬퍼해줘야 내 맘이 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