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① 생소한 동네 요란한 환영식

첫 해외 근무 우여곡절의 시작

by 모험소녀

지독한 회사 일로 20대 중반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첫 해외 발령에 대한 의사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발령지가 블라디보스토크인데,
괜찮겠어요?


너무 변화가 필요했던 시기. 한살이라도 젊을 때 해외 근무를 다녀와야겠다 생각한 평소의 소신 덕분에

전화를 받는 순간 그 어떠한 망설임 없이 나는 단번에 '너무 괜찮다'고 말해버렸다.

첫 해외 근무라니!

무척이나 설레어 발령일까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발령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인사 주무께 이유를 여쭈어도 인력 수급 문제라는 형식적인 답변뿐.

한껏 비행기 탔던 내 마음은 땅속으로 가라앉았고, 다음 발령철까지 뭘하며 지내야 할지 막막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다시 전화를 받았다.

상황이 바뀌었어요.
이번에는 99.99999%입니다...


덜렁 나 혼자 난 발령

나의 블라디보스토크 발령이 틀림없이 날 거라는 얘기였다. 기존 발령 명단에서 내가 빠졌던 자세한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인사는 관리자들끼리만 아는 비밀이니까!


원래는 철마다 발령이 한무더기로 나서 내 이름을 찾아야 할 판인데, 이런 상황 때문에 나는 떡하니 게시판에 단독으로 블라디보스토크 파견 근무 발령을 받았다.

마치 주목 받고 싶어했던 사람인 양.


이게 뭐라고 사람 마음을 엄청 들었다놨다 한다.


교환학생도 모스크바에서만 했고 러시아 다른 도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당시,

블라디보스토크는 내게 너무나 생소한 도시였지만 갈 이유는 충분했다.


첫째,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였기 때문이고

둘째, 한국에서 거리가 가깝고

셋째, 다른 회사에 다니는 대학 절친이 몇 개월 전 파견 나가 근무 중인 곳이라,

심심치 않게 지낼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였다.

'지낼 만하다, 생각보다 좋다'는 그 친구 말만 듣고 그냥 가기로 했다.


그때부터 급한 대로 도시에 대해 알아봤지만, 정보가 너무 없었다.

중앙광장에 떡하니 서있는 새까맣고 거대한 혁명 동상만 각인될 뿐이었다. 그저 소련 느낌일거란 추측뿐.

처음 인터넷으로 찾아봤던 블라디보스토크. 이 사진밖에 달리 정보도, 내용도 없었다.

놀랍게도 1996년 한국 영사 피살 사건이 있었고, 북한 사람들이 많아 치안 불안 지역일 뿐 아니라, 의료와 교육 환경이 열악하다는 사유로,


블라디보스토크는 당시에 파견지 중에서 살기 힘든 '특수지', 그것도 최고 위험한 '가'지역에 해당됐다.

나는 졸지에 제일 위험한 지역에 파견된 여직원이 된 거였다.(여건이 많이 좋아진 지금은 이미 옛날 이야기)


그걸 알고 막상 간다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겁도 났는데, 친구가 있으니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도 사람 사는 동네일거란 희망을 가지고

그렇게 두려움 반, 기대 반 해외 첫 부임길에 올랐다.


하지만 역시 다시 만난 러시아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2시간 반만에 도착한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비행기에서 공항까지 많은 사람들이 피난민처럼 내렸다가 우르르 버스를 타고 이동한 것도 생소했는데,

도착한 공항이 너무도 작고 창고 같아서 더욱 놀랐다. 그리고 나를 기다렸던 건...!


"블라디 공항에 도착한 후가 문제였다. 공항 연결 통로도 없거니와,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 타고 공항에 들어가서도 입국 심사를 한참하고. 짐 찾으려는데 짐이 다 나올 때까지 기다려도 이민가방이 안 나오는거다. 결국 마지막으로 나와 차장님과 대한항공 사무소에 가서 확인증을 받고 사무실로 향했다. 어떻게 또 이러는지. 러시아는 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 2008.7.30 나의 블라디 주재원 일기


이민가방 하나 나오지 않은 것도 물론 당황스러웠지만,

수하물 찾아서 가는 길에 열려있는 방문 하나를 나서니 입국장이었다는 사실에도 어리둥절했다.


아, 맞다. 여긴 시골이지....

옛 공항의 풍경. 카페도 귀국할 때즈음에 생겼다.


그럼 내 이민가방은 왜 오지 못한 걸까? 설마 대한항공이 내 짐을 분실이라도 한 거였을까?


내가 블라디보스토크를 오지로 생각한 나머지, 생활용품 이것저것을 다 챙겨간 게 문제였다. 수하물 취급 금지품목인 모기 스프레이를 가방에 넣은 게 화근이 된 거다. 공항 측에서 그 물건만 빼내고 보내려다 내 가방이 미처 비행기에 실리지 못한 거였다.

다행히 짐은 다음 날 다른 항공편으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상황 자체는 러시아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러시아에 오니 없던 문제들도 생기는게 괜시리 4년 전 데자뷰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참 잊을 수 없는 환영식(?)이었다.


"첫날부터 공항에 짐이 하나 안 나온 것을 비롯하여,

역시나 러시아는 나를 반겨주지 않았지만,

반드시 반겨주게 하리라.."

- 2008.8.1 나의 블라디 주재원 일기


아무튼 발령 명단에서는 내 이름 떨어뜨리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내 짐을 떨어뜨리고,

두 번이나 내팽개쳐진, 참 쉽지 않은 첫 부임길이다.


그렇게 러시아의 '동방을 정복하러' 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입성한 동시에 도착하지 않은 짐. 그리고 당황스런 순간들.


★ 게재한 모든 사진들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Copyright by 모험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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