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기숙사 친구들은 대부분 교환학생 신분으로 왔기 때문에, 학기가 끝나면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 동안 더 신나게, 틈나면 모여서 얘기하고 놀러가고를 반복해야 아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중에 우리 친구들의 모임 이름은 '도 우뜨라(До утра)',
즉, '아침까지'라는 의미였는데 그 정도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함께 했던 거다.
"어휴.. 이젠 보낼 일들만 잔뜩 남았구나.
휴... 자꾸 사람들이 가니깐 마음이 휑하다."
- 2004.6.23~6.24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여름만 되면 환송식이 줄줄이 이어졌다.
학기가 교체되는 방학 시즌이기도 하고, 주변국 여행을 다녀왔다가 나가는 친구들도 있어,
기숙사는 텅텅 비게 되었다.
친한 친구들이 떠날 때면, 우리는 모두 무리를 지어 공항 배웅을 나섰다.
사실 말이 배웅인데, 모스크바 쉐르메치예보 공항은 학교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어,
당시만 해도 별도의 차량이 없으면 지하철에 미니버스를 갈아타서 먼 길을 다녀와야 하는 여정이다.
(지금은 고속철도가 있어 공항 가는 게 큰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매번 그 먼 길을 나서서 공항까지 직접 가서 귀국하는 친구들에게 잘 가라고 인사해주고,
헛헛한 마음을 가지고 텅빈 기숙사로 돌아오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하고 끈끈한 의리다.
도 우뜨라, 일본 친구들과 마지막 날 새벽 산책
우리보다 6개월 전 먼저 왔던 일본 친구들을 떠나보내던 여름 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옆집 식구로 친하게 지냈기에 그 아쉬움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들은 새벽까지 함께 술마시며 얘기하고 시간을 보내고, 바로 그 날 공항 배웅을 갔다. 참 체력도 좋았나 보다.
"새벽까지 일본 친구들과 내내 잡담을 나누다가 우린 5시 넘어 참새언덕으로 나갔다. 사진도 많이 찍고 참새언덕에서 바라본 모스크바 시내도 감상했다. 아주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사람도 얼마 없었다. 일본 친구들은 오늘이 자기들이 가는 날인 게 믿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 또한 안 믿기는데... (중략).. 일본 애들이 있을 공항으로 향했다. 서로 마지막으로 사진도 찍고, 너무 아쉬웠다. 결국 친구들은 출발했고, 우리는 다시 그 힘든 길을 터덜터덜 왔다."
- 2004.6.28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아무튼 친구들이 떠나면 마음은 늘 허전했다.
그 빈 자리는 다른 누군가 와서 다시 채워지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적응하는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라 그저 익숙한 것들이 그리워진다.
나중엔 복도 바닥에서 이루어진 환송 파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자리를 새로 채운 이웃에게
일본 친구들이 우리가 기숙사에 처음 왔을 때 한 것 처럼 복도로 초청해 환영 파티도 열어줬다.
어차피 또 만났다 헤어질 인연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우정을 쌓아갔다.
그렇게 쌓인 인연은 나중에 한국에서도 이어갈 수 있었다. 가까이 지낸 일본 친구들 중 몇은 우리를 보러 한국 여행을 종종 왔었는데, 처음 왔을 땐 서로 왜 이리 세련돼졌냐며 놀리기도 했다. 러시아에 있을 때랑 다를 수밖에.
친구들이 한국에 오면 교환학생 멤버들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이게 되는데, 바쁘게 사느라 못본 얼굴들을 그때야 만난다. 그렇게 같은 추억을 가진 이들과 행복을 곱씹어보는 시간들이 참 귀하다.
매일 추억을 만들며 친구들 환송만 해주던 나에게도
드디어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러시아에 하루라도 더 있다가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또 왜 그리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던지.
결국 못 참고 1월 초 연휴 막바지에 귀국표를 끊어버렸다.
찐한 공항 배웅
보내는 일은 내가 늘 해왔던 일인데, 이제는 친구들이 나에게 잘가라고 환송 파티도 해주고,
떠나는 날 10명이 넘는 이들이 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너무 고마웠다.
"언제나 헤어짐의 시간은 아쉬운 법.
그런데 정신이 없어 내게는 슬퍼할 틈도 없었다."
- 2005.1.6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배낭, 컴퓨터 가방, 쇼핑백 등 무거운 짐들과 씨름하느라 몸은 땅으로 꺼질듯했고
출국 심사하러 들어가기까지 도무지 정신이 나질 않는거다.
친구들과 정신 없는 이별을 하며 환송의 주인공이 됐지만,
정작 러시아는 나를 그렇게 쉽게 보내주지 않았다.
그래, 그냥 보내줄 러시아가 아니지.
같이 귀국하는 언니와 나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공항 검색대를 들어왔는데,
그때 들은 소식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가뜩이나 정신 없는데 원 세상에, 비행기가 5시간이나 연기돼서 새벽 1시 20분 출발... 사무실에서 레스토랑 공짜 티켓을 얻어 언니랑 나는 거기서 12시 넘어서까지 앉아있었다. 다... 지쳐버렸다."
- 2005.1.6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5시간 연착이라니.... 너무 힘들어 기다리다 지쳐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공항 카페에서 마신 커피 한 잔과 피스타치오, 초콜릿 찍은 사진만이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다.
집으로 가기 위해 기다리는 5시간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마지막은 이렇게 장식된다.
정말 나답고 러시아답다.
"이게 러시아 유학의 마지막 장식인가? 러시아식으로... '끝까지 가만두지 않는다?' 이젠 내 1년 간의 모스크바 생활을 다시금 돌아보며, 앞으로 어떤 변화된 삶을 살 것인가 연구해야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