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⑧ 좌충우돌 학교 생활

교환학생의 소소한 학교 생활 추억거리

by 모험소녀

지금도 생각나는 러시아만의 대학교 강의실 분위기가 있다.


낡아빠진 책상과 의자, 그 어떤 것도 세련되지 않은 그냥 기본에만 충실한 공간.
향수 가득한 소련 시절 영화에 선생님이 손글자로 적어 역점 하나하나 찍힌 아날로그 핸드아웃, 그리고 줄 대신 네모칸만 가득한 러시아 공책, 수업 자료와 첨삭 받은 과제물 넣어 보관하던 얇디얇은 비닐 파일...
아날로그 프린트물(좌), 그리고 수업 중간 쪽지시험(우)

선생님은 천차만별이었지만, 항상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씀해주시니 학생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대답을 잘하면 아낌없는 칭찬을, 발음이나 문법을 틀리면 하나하나 고쳐주셨다. 특히 듣기 시간은 늘 가시방석이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러시아어에 당황하며 난 언제 들리나 자책한 순간이 많았으니.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교환학생'이라 하면,

교환대학에 가서 현지어나 영어로 현지 학생들과 전공 수업을 함께 듣는 게 일반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우리는 러시아 학생들 한 명 없이 각국에서 온 학생들과 어학 과정을 들었다. 노어노문학과라 해당 과정이 전공 수업이기도 했고, 어차피 러시아 학생들이 듣는 어려운 학부 수업은 이해할 수준도 못 되니.

(실제 러시아 대학 수업을 들으려면 외국인을 위한 어학 과정인 예비학부(подфак)를 지내야 한다.)

강의실 사진은 마지막 날 찍은 사진뿐

어학 코스는 수준별로 운영돼 시작 전 테스트를 치른다.

우리 반은 대부분이 동양계였고, 서양 출신 학생은 많아봤자 한 두 명이 전부. 그건 좀 아쉬웠다.

반마다 학생 수가 적어 수준별 학습에는 좋은데, 한 번이라도 수업을 빠지면 금방 티가 난다는 단점이 있다.


수업 단위는 빠라(пора), 즉, 1과 1/2인 한 시간 반짜리로, 참 긴 시간이다.

하루에 3~4개 빠라를 연속으로 듣는 날이면 녹초가 되기 일쑤.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서 그런지,

지금도 생각나는 추억거리들이 있다.


(1) 너구리 소굴을 뚫고 간 고행길


학교 강의는 하루 빼고 거의 매일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 우리에겐 약간의 산책이 될 정도의 거리를 걸어 학교로 향한다.


허름한 인문대 건물 입구를 지키는 경비에게 당당히 나의 학생증을 보여주고 로비에 들어서면,

아침부터 수많은 학생들이 뒤엉켜있다. 우리 강의실은 8~9층이라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매번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 기약없이 내 순번만 기다리다 수업 시간에 늦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친구와 나는 계단으로 향했다.

.런.데.

계단 오르내리는 중간중간 학생들의 흡연 공간이 있. 정해진 흡연 구역이라기보다 복도 쓰레기통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피워대는 거다. 그래서 그 뿌연 너구리 소굴을 뚫고 8층까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소련의 향이 물씬 나는 인문대 건물

그 좁은 통로에서 많은 학생들이 모두 담배연기를 뿜어대니 괴롭지만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별 수 없다.

숨을 참고 후다닥 올라간다. 그렇게 담배연기 마시며 오르다 보면 옷에는 담배 향이 배어버리고,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내가 담배 피다 온 사람처럼 냄새가 폴폴 새어나온.


매일 등굣길은 그렇게 계단 운동은 됐지만,

연기를 뚫고 숨을 참으며 올라야 하는 고행길이었다.


(2) 입이 즐거운 '감자' 간식


강인 날이면 쉬는시간이 생길 때 반드시 배를 채워야 견딜 힘이 난다.

종종 강의실 중간에 위치한 작은 매점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학생식당의 디저트 코너

그곳에서 파는 메뉴는 주로 샐러드, 샌드위치(슬라이스 빵 위에 치즈나 햄, 연어를 올린 것), 주스, 달달한 등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한 번은 뭘 먹을까 둘러보다 조그마한 검은 떡처럼 생긴게 보여서 값이 싸길래 한 번 사먹어봤다.


그런데 그 맛이 하도 달콤하고 쫀득하며, 뱃속까지 든든해서 계속 사먹게 되었다.


"이게 뭐지?"


판매대에는 떡하니 '감자(картошка 까르또쉬까)'라고 적혀있다.

살짝 묵직한 느낌이 드는 것이 감자로 만든 건가보다 했고,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도 감자로 만든 건 줄 알고 있었다.

이름만 감자인 '까르또쉬까'! (사진출처: cookpad.com)

그런데, 이건 나중에 알고 보니 감자는 하나도 안 들어간, 비스킷 부스러기와 꿀, 연유, 견과류를 부드럽게 뭉쳐 만든 러시아 간식이었다.

이름만 감자였을 뿐...

배를 든든히 채워준 건 탄수화물이 아니라 지방이었던 거다! 그래서 살이 쪘었나보다.


아무튼 그 때의 쉬는 시간 달콤한 기억이 좋아서,

지금도 러시아에 가면 학생시절을 떠올리며 일부러 감자 간식을 찾아서 먹곤 한다.


(3) 외부 세계와의 유일한 소통, 인터넷


공강이 생기는 날이면 인터넷을 하러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물론 인터넷을 하는 것도 돈이 드는 일이라, 매일 하긴 어렵고 여유가 생기거나 일이 있을 때 하러 가는 거다.


모스크바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인터넷 카페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곳 컴퓨터는 한글을 볼 수는 있어도 자판이 안 돼서 어줍잖은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 영어로 안부 메일을 쓰다가 불현듯 '어제'라는 단어가 러시아어밖에 생각이 안 나 당황한 적이 있다. yesterday... 영어로도 무척 쉬운 단어였는데.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보니, 급할 때 아니면 눈팅만 하게 됐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곧 한글 자동 입력창을 찾아,

한글 자판의 기억을 더듬어 해당 입력창에 쓰고 싶은 말을 작성하고, 그걸 복사해서 그대로 갖다 붙이는 식으로 사용하며 만족해했다.


"이곳 러시아에 와서 인터넷에 대한 집착은 훨 많이 줄어든 것 같다."

- 2004.4.14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사실 초반에는 방에 전화 모뎀선을 연결해 인터넷으로 사용해볼까 생각도 있었지만,

설치하는 사람을 불러도 함흥차사고, 온다 해도 언제 설치될지 모르니 그냥 희망을 버렸다.

생존의 기록

외부세계와의 소통은 그렇게 적당히, 했다.

물론 지금의 모스크바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정보통신 발달을 이루어, 우리보다도 나을 때가 많다.


(4) 공포의 강의시간


강의마다 늘 숙제가 많았다. 내 일기 말미는 항상 '숙제해야 하는데..'로 끝난다.

말은 그랬지만 생각보다 착실하게 숙제를 해갔나 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불시에 훅 들어오는 선생님들의 질문에 대비하기 위해서기도 했다.

우리나라만 그런게 아니라, 여기도 선생님들이 수업 때마다 호명해서 무작위로 시켰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숙제도 많아 시달렸었는데 수업시간엔 또 왜 그리 자주 시키시던지..!

정말 세 빠라는 힘들다."

- 2004.5.19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날이 갈수록 호명당하는 건 여전히 공포심으로 남았다.

배울수록 자신감이 붙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러시아어는 갈수록 어려운데다, 내가 내성적이기도 해 외국인 친구들이나 다른 한국 친구들과 비교되는 것 같아 힘들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키면 얼음이 되어버린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한국 문화와 비교해 설명할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내가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부끄러웠다.

우물 안에서 못나오는 개구리가 된 느낌.

그래서 나는 늘 굳어있었다.


"회화 수업시간에 다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데 나는 한 마디도 못했다. 오히려 '날 시키면 어쩌지'하며 쫄아있었고, 머리를 굴릴 생각은커녕 겁만 잔뜩 먹어 머릿속에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떠올랐다 해도 구사 능력이 뒤떨어져 단어만 몇 개 떠오르고, 다시금 혼란해졌다가 결국은 사라져버려 내 머릿속은 새하얗게 돼버린다. 게다가 사람들이 워낙에 말을 가로채가니까 두려워서 말 시작도 못하겠다. 다시금 찾아온 절망... 난 이 정도밖에 안 되나."

- 2004.11.11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무엇보다도 모든 표현을 명확하고 완벽하게 하려는 앞서간 마음 때문에 좌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열심히 했고, 다른 학생들을 따라가려고 애썼고, 숙제도 열심히 해갔다.

내게 있는 건 성실함뿐이었으니, 수업도 빠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잘하는 것만 보여서 그렇지,

분명 내 실력도 늘고는 있었다.


(5) 난 이 점수 인정할 수 없어요!


교환학생 막바지에 이르자, 성적표를 받을 타이밍이 왔다.

그런데 어느 선생님이 나보다 수업도 많이 빠진 친구에겐 좋은 점수를 주고

나에겐 그보다 낮은 점수를 주는 걸 보고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소시민적 마인드를 가진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억울해서 꼭 따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했던 내 자신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 만큼 좋은 성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런 용기가 났다.


"그냥 이렇게 자리를 뜰 순 없다 생각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생님께 내가 프린트물에 쓴 것을 확인, 수정해달라며 보여줬다. 마침 예문 쓴 숙제도 했기에, 필기까지 다 확인하시고는 이내 설득당하셨다. 내가 열심히 적어놓은 결과물 덕에 '우(хорошо)'에서 '수(отлично)'를 받아냈다. ..(중략).. 비교당했던 것, 그런 느낌도 너무 싫었고, 그렇게 내가 빈틈을 보였나. 이제부턴 안 되면 머리라도 박을 심정으로 달려가리라."

- 2004.12.17 나의 모스크바 교환학생 일기


사실 수를 받든, 우를 받든 본학교에 돌아가면 학점만 인정되는 거라서 상관은 없었는데,

그냥 나의 교환학생 1년을 그렇게라도 좋은 기록으로 남기고 보상받고 싶었을 것이다.

1년 동안 수업만 엄청 듣다가 왔다

나같이 조용한 사람이

외국에 나와서 다른 언어로 공부를 해본다는 것 자체가 사실 당시에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스스로를 깨고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으니!


하지만 막상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성적표보다 중요한 건 현지에서 하루라도 친구들과 구석구석 더 많이 놀러다니는 일이었는데.


초반에 여권 분실로 호되게 당한 탓에 몸 사리느라,

더 많이 돌아다니지 못했던 게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나의 교환학생살이도 끝나갔다.

매일 몸도 맘도 열심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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