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② 주재원의 자격

작은 집에 살며 덩치 큰 차를 몰고 다닌 아담한 한국 여인

by 모험소녀

[2008년 기준의 글입니다]


생각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괜찮은 곳이었다.

한국보다 2시간 앞서 있어(당시에는 서머타임 운영) 미래를 살고 있는 듯한 기분(?)에,

이래봬도 인구 60만 '도시'라 있을 만한 것들 다 있고,

구석구석 찾으면 '이런 것도 있어?'하며 놀라기도 했다.


이제 한국에서 파견 나온 주재원 생활을 위해 몇 가지 갖춰야 할 것들이 있었다.

나는 당시 이러한 것들을 특혜로 생각하기보다 치러야 하는 귀찮은 업무로만 여겼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현지에서 먹고 살기 좋은 환경을 만난 건 참 감사한 일이었다.


먼저 집 구하기.

입국 직후 며칠 간 친구집에서 지냈다.

대학 부지 내 기숙사 근처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내부는 놀랍게도 깔끔하게 수리되어 있었다. 가구, 전자제품 등 대부분 풀옵션이라, 몸만 들어가도 돼 좋았다.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보안도 걱정은 없었다.

해바라기 그림이 나를 맞이하는 아파트

그래서 나도 주저없이 친구가 사는 아파트 다른 층에 있는 작은 집 하나를 보고 주저없이 계약을 진행했다.

방 하나에 혼자 살기 딱 좋고 깔끔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집이 크면 청소도 귀찮고 손이 많이 가서 싫었다.

월세가 당시 기준 200만원 가까이 됐으니 비용도 지방 도시치곤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그곳에서 돌아올 때까지 살았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좀 더 큰 집에서 살지 못한 게 아쉽다. 내 손님이 와도 쉬게 할 게스트룸도 없었고 누굴 초대하기도 부끄러운 크기였으니.

난 누구 좋자고 회사돈을 아꼈던가?

리바트 가구가 있는 아늑한 집

"어제 내가 살게 될 집을 계약했다. 12~15평 남짓. 그래도 깔끔해서 괜찮았다. 근데 주인이 집값을 요즘 마구 올리고 있어서 거기 휘말리면 안될텐데.. 그래도 친구네집 바로 4층 위라 가까워 좋다."

-2008.8.1 나의 블라디 주재원 일기


그래도 집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잘 청소되어 있어서도 좋았지만 아마도 집을 단번에 결정한 이유는 가구가 고급져 보여서 였을 거다.

나중에 보니 가구에 "리바트"라고 써있는게 아닌가. 내가 끌린 이유가 있었구나. 그런데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면 뭔가 빈구석이 보이고 어설펐다. 쓰던 가구거나 가지고 와서 엉터리로 조립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엇보다 아파트에 한국 TV가 실시간으로 나와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그만이었다. 한국에서 위성 접시만 가져와도 채널이 다 잡힐 정도로 블라디보스토크는 물리적으로도 가까운 곳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여름에 블라디보스토크로 오게 된 게 행운이라고.

아무튼 사람 사는데가 맞긴 맞구나.


그리고 자동차!

회사 차 얻어타고 다니면서 동네 도로 사정을 익혀 길눈이 생길 때가 됐을 즈음,

나는 생애 첫 자동차를 사기로 했다. 개인 자가용은 회사 지원은 아니라, 정착금에 사비를 많이 보태야 했다.

그래도 이 얼마나 두근두근한 순간이란 말인가?


하지만 첫 차 구매를 앞둔 나의 설렘과는 달리,

블라디보스토크 도로 사정은 언덕이 많고 구멍도 숭숭 나 있어 좋지 않고, 눈까지 많이 오니 사륜구동 차는 필수였다. 게다가 한국에서 운전 경력 없이 나온 나에게 새차는 너무 큰 모험이었다. 차가 조금이라도 망가지면 눈물 흘릴 건 뻔한 일. 그렇지만 현지 중고자동차 시장에는 오른편 운전대의 일본차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회사 현지 고객사로부터 한국의 중고차를 수입하여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SUV 차량으로 말이다.

처음 운전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하는데 SUV 차량으로 하게 되다니! 감격스럽기도,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자동차가 내 손으로 들어오기까지는 순탄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배로 실려 오는 시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세관을 거치는 시간, 차량 번호판을 받는 시간까지 거의 한 달 넘게 잡아야 했다. 내 실수로 기관 차량으로 들어오게 돼 차량 운전자 위임장도 필요했고, 보험도 들어야 했다. 러시아에서는 모든 게 행정, 시간인지라 수없이 왔다갔다하며 주변 분들 도움도 많이 받았다.

한국차 하나 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세관에서 만난 첫 차, 소렌토! 나보다 더 신나 보이던 세관 아저씨가 찰칵!

세관에서 내 차가 도착했다고 해서 확인하러 가던 그 날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두침침한 현지 공무원들과 달리 그때 만난 유쾌한 극동 세관 아저씨는 친절하게 기념 사진도 찍어줬다.


차가 블라디에 정박한지 한 달만에,

야호! 나에게도 첫 차가 생겼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도로는 선이 다 흐릿하게 지워져 경계가 없고,

눈으로 뿌린 염화칼슘으로 아스팔트가 부식돼 곳곳에 구멍이 많은데다,

신호등이 전무해 모든 운전자들은 서로 눈을 맞춰가며 운전해야 했다.(과거형)


하지만 매너는 한국과 달리 끼어들 때 양보도 잘해주고 보행자를 무조건 우선으로 하며,

물론 거칠게 달리지만 초보 운전에게 다급하게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신사 스타일이다.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운전대를 잡았던 거기도 하다.


관련 일부 내용은 아래 다른 이야기 링크에서 만나보시길.


첫 운전을 시작하기 전 혹시 몰라 운전 연수도 받았다. 하지만 연수 차량은 우측 핸들의 일본차였고,

젊은 러시아 선생의 속사포 랩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어 한 번만 듣고 그냥 실전에 옮기기로.


아무튼 그렇게 겁 없이 첫 운전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했다.

첫 차를 몰게 되었던 그 날의 에피소드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한 달 여 만에 상봉해 번호판 붙인 차로 신나게 회사에서 아파트까지 운전해서 왔다. 유난히 주차가 약한 내게 가장 난코스는 아파트 일렬 주차였다. 통로도 좁아 열심히 넣고 빼고를 몇 십분을 씨름했는데,

결국 나는 차를 처음 가지고 집으로 온 그 날 바로 벽에 긁고 말았다.

가뜩이나 초보인데 SUV 차량이라 얼마나 덩치가 크냔 말이다.


다음날 출근할 땐 더했다.


아침에 주차된 차를 꺼내는데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이렇게 좁은 곳에 주차를 하라니 초보에게!

"'부아아아악!'

이번엔 좀 벽에다 심하게 긁었다.ㅠㅠ 이거 핸들도 익숙치 않고.. 눈은 사방에 두어야 하고..뭐냐고 이게!
그래도 출근할 맘에 노래를 들으며 서서히 차를 움직이는데, 평소에 가면서 기억해놓던 그 갈림길을 오늘은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오른쪽 갈림길로 가야 하는데 차선도 애매하게 있었던데다, 순간적으로는 왼쪽길이 맞는 것 같아서 갔는데.... 이 길이 아닌거다.! 가다보니 공항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전혀 모르는 길은 아니어서 다행이었으나... 유턴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주욱 밟는데 이거.. 유턴 길은 나올 생각조차 않는다ㅠㅠ 다리가 나오질 않나, 갑자기 길이 막히질 않나. 직진해야 하는 운명.

차가 와글와글

오늘따라 좀 늦게 일어나 출발했더니 이게 무어냐. 흑흑 10~15분가량을 달렸을까... 그나마 아는 길이 나와 다리 밑에서 유턴을 할 수 있게 됐다. 여기까지 오게될 줄이야. 길은 또 얼마나 막히던지. 잔뜩 긴장해서 차를 몰고, 평소에 안하던 지각을 해버렸다. 하하하하하;;;

중고차라 참 다행이고, 평소에 그나마 길눈이 좀 있어서 다행이다. 뭐 이러면서 배워가는거겠지!!!"

- 2008.11.25 나의 블라디 주재원 일기


차가 애물단지라는 말이 딱 맞다.

그래도 나중에는 어느 새 (주차 빼고) 파워 드라이버가 되었다고 한다.

차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그건 또 후반기에 따로 다루기로 한다.

애증의 차

아무튼 작은 집에 비해 커다란 차로 반전 매력을 선보인(?)

아담 사이즈의 여성 주재원은,


그렇게 하루하루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화려해 보이는 것 이면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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