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맛집들을 위한 헌사
잠시 짧은 프로젝트를 맞아 영등포 쪽으로 2주간 출근하게 되었다. 사는 곳과 좀 떨어져 있고 딱히 올 일이 없다 보니 영등포역 근처를 온 것이 10년도 넘은 느낌이다. 이왕 온 김에 이 근처 맛집이나 가볼 만한 곳들을 들러보기로 마음먹고 같이 일하는 직원과 거주하고 있는 분들에게 맛집이나 좋은 팁 공유를 부탁드렸다. 그중 당기는 정보가 하나 들어왔다. 떡볶이집. 여럿이 맛있다고 추천해 주어서 그날 당장 가보기로 했다. 맛있는 떡볶이를 찾아 평생을 떠도는 떡볶이 귀신에게 이토록 중요한 첩보가! 점심시간 전에 일이 끝나 당장 지도를 찍고 걷기 시작했다. 하필 날도 유난히 추웠다. -12도. 동태가 되어도 좋다며 떡볶이 집이 있는 골목길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런.... ‘4시 30분에 오픈합니다.’ 왜죠? 떡볶이는 점심부터 먹어야 하는데요. 낭패였다. 이미 내 뇌와 입은 온통 APT노래처럼 떡볶이로 염불과 랩을 동시에 외우고 있었다! 이럴 수는 없어.. 으음... 실망했으나 포기하지 않겠다. 근처에 있는 쇼핑몰로 일단 피신해 있자. 다시 먼 길을 떠나며 나는 냉동인간이 되어갔지만 죽지 않으면 된다. 아니 죽더라도 떡볶이를 먹고... 멍청하고도 지독한 집착으로 일단 점심을 해결하러 따뜻한 자본문명의 집결지로 피신했다. 이런 날씨에 검증되지 않은 떡볶이 1인분을 먹겠다고 이게 맞나 싶었지만 한 고집하는 본인을 스스로 막을 수 없음에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말 그대로 죽이며 집착의 칼날을 갈며 기다리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스벅으로 향했다. 언제나 사람이 많지만 무료 쿠폰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삐대고 앉을 수밖에. 8인 테이블 한 곳에만 앉을자리가 있어 일단 이곳에서 글을 쓰며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일단 채워진 배, 얼어버린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따뜻한 공기, 널찍한 공간 속 추위를 피해 혹은 약속을 위해 온 많은 사람들. 쿠폰의 혜택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내가 앉은 8인 테이블 맞은편에 좀처럼 보기 힘든 ‘광인’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 자리만 비어 있었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단 걸 1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었다. 평범하게 야구 모자를 눌러쓴 중년의 남성. 눌러쓴 모자 아래로 보이는 입 모양은 흡사 조커처럼, 억지로 웃는 사람처럼 인위적으로 반원을 그리며 끝을 올리고 있었다. 언제든 우연히 쳐다봐도 언제나 그 표정이었다. 그건 상관없었다. 20분마다 테이블을 발로 치는 행위만 없었다면 나는 그 분과의 동석이 살면서 전혀 기억되지도 않을 일이었다. 일정 시간이 되면 틱처럼 발을 동동거리며 테이블을 찼다. 몇 분을 그렇게 차고 다시 20여분 뒤에 반복. 아무도 그런 그를 막을 자는 없었다. 같은 테이블 사람들은 불편한 얼굴로 일을 보거나 조금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무도 말은 하지 못한 채 그저 빨리 커피를 마시고 용무를 마치고 자리를 뜨던가 새로운 자리가 나면 서둘러 이동할 뿐. 나 역시 원하는 자리가 나자마자 옮겼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도 그 몰에서 점심을 먹고 스벅을 가려고 다시 가보았기 때문이다. 아.... 그가 그 자리에 똑같은 자세로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 구역 유명인이시구나. 영등포에 있는 쇼핑몰 스벅에 가면 그분이 계신다는 흥미로운 정보를 알아 버렸다. 어쩌면 나는 다음에 또 그가 궁금해서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오게 될지 모르겠다. (아니 다시 와 볼 것이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4시가 좀 넘은 시간이 되었다. 다시 나갈 엄두가 안 나는 날씨였지만 이제 먹고 집에 가면 된다. 한 스텝만 더 뻗으면! 단단히 몸을 두르고 핫팩을 장착하고 비장하게 길을 떠난다. 제발 오픈 시간에 맞춰 열려 있기를 그리고 줄 서는 일 없이 그냥 운 좋게 매장에서 바로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며 칼바람 속으로 나아갔다. 골목을 들어서는 나는 두근두근 기대로 눈은 확장되고 걸음을 빨라지고 있었다. 고양이가 사냥감을 잡을 때처럼 엉덩이를 들썩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나 역시 스벅 광인 못지않은 떡볶이 광인이기 때문이다. 나의 광기는 가게에 다가갈수록 뿜어져 나와 숨소리마저 커지고 있었다. 이미 사람들이 좀 있었지만 포장이나 간단히 드시는 분 들 이어서 매장에 내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오오 조리되고 있는 떡볶이 때깔이 골져스지져스... 나의 미식적 동물적 본능이 포지티브를 외치고 있었다. 학교 앞 떡볶이. 흔히들 인생 떡볶이를 말할 때 말하는 그 모습 그대로. 동그랗고 날씬한 밀떡, 오래 익혀 푹 숨이 죽고 잔뜩 양념을 머금은 파, 꾸덕한 빨간 소스가 네모 철판에서 나야... 학교 앞 떡볶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홀린 듯이 사진을 찍고 주문을 했다. 떡볶이 1인분, 어묵 2개요. 일단 욕심부리지 않고 침착하게. 나의 흥분된 모습을 사장님이 알게 하지 말라... 영롱한 2025 떡볶이 레드의 향연.. 그리고 모서리가 둥그스름하면서도 전체적인 형상은 직사각형인 전형적 학교 앞 떡볶이 그릇 모양하며.. 모든 게 날 미치게 만들었다. 나오자마자 경건하게 떡을 하나 포크(이것 또한 정말 예전 학교 앞 그 바이브 그대로다.)로 집어 아앙 먹어본다. 이거다. 달달 꾸덕 그러면서 살짝 매콤한. 너무 심심하지도 너무 간이 세지도 않지만 깊은 맛이 나는 환장의 맛. 머릿속이 형형색색 불꽃들이 터지면서 나는 아이가 되었다. 행복한 입안 그리고 사장님의 씩씩하고 자상하신 멘트들로 실제 가게 분위기마저 훈훈했다. 사장님에게 소개받아서 왔는데 너무 맛있다고 말씀드렸다. 친구를 데려오고 싶은데 주말에도 하시는지 여쭈었더니 토요일은 하신다고 한다. 나는 당장 내 베프에게 사진을 보내며 조만간 꼭 와서 먹어보자며 새로운 맛집에 플래그를 꽂게 된 것에 대만족을 느끼며 떡볶이를 싹 비웠다. 아쉽다... 그렇다고 1인분 더 먹기는 그래서 만두튀김을 2개 시켰다. 남은 소스까지 모조리 먹을 생각이었다. 친절한 사장님은 갓 튀긴 걸로 주시겠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만두와 떡볶이를 조금 더 서비스로 주시면서 같이 먹으라고 하셨다. 뭐야. 여기 너무 홀리한 곳이잖아! 새해 들어 가장 추운 날 가장 따스한 환대를 받은 것이다. 누추한 먹보에게 이 귀한 떡볶이를 한 주걱 더 주시다니. 단골도 아닌데. 사장님 오래오래 뵈어요. 나는 단번에 이곳의 팬이 되어버렸다. 영등포.. 너란 도대체... 스벅 광인과 떡볶이로 나를 매료한 너란 녀석.. 참. 만두에 더 주신 떡볶이도 싹싹 다 먹고 나왔다. 확실히 덜 추웠다. 내 마음도 내 몸도. 역시 떡볶이 테라피.
나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이곳도 문을 닫겠지. 다행이라면 사장님이 중년이셔서 나이가 드셔서 그만두실 것 같진 않다는 것. 내가 사랑하던 음식점들이 꽤나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모두가 알지 않을까? 사라진 그 음식점들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음식의 맛은 혀끝에서 아니 뇌에서 정확히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것을.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기억하는 방콕의 길거리 국숫집의 800원짜리 국수처럼 말이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을 대신해 나는 용돈을 들고 매일 떡볶이 집으로 방과 후 수업을 갔다. 떡볶이와 어묵을 곁들인 사장님과의 대화 시간. 어린아이가 매일 와서 말도 안 되는 말을 조잘조잘하는데도 잘 받아주셨던 사장님의 꾸덕한 가래떡 떡볶이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집 어묵 국물을 내가 거의 다 동냈을 것이다. 그만큼 그 집 떡볶이와 어묵국물은 내 입맛에 잘 맞았던 것 같다. 매일 갔다니. 미친 거 같아.. 날 피해 그만두신 게 아니길 바란다.. 그리고 이사를 하고 자주 가던 지하상가 시장 안에 있던 국물이 많고 색깔도 허옇기만 한데 달달하면서 간이 베여서 짭짤 달콤의 극치였던 떡볶이도 아직도 그립다. 그 맛과 생김이 지금의 인천 남동공단 떡볶이와 매우 흡사하다. 내가 그렇게나 다시 한번 먹고 싶었던 사라진 시장 떡볶이 집이 지금의 유명 떡볶이랑 흡사한 걸 보면.. 나는 그저 본투비로 맛집 콜렉터의 기질을 타고난 걸까?
오래된 나의 단골 식당들이 문을 닫을 때면 정말 하늘이 반쯤은 무너지는 기분이다. 부모님이랑 다니던 카페나 식당이 사라지면 추억의 성이 허물어지는 느낌. 한구석이 그렇게 텅 빈 느낌이 들 수가 없다. 특히 그 음식이 다른 곳에 먹을 수 없는 맛일 때 나는 안타까워 미쳐버릴 것 같았다. 대학 때 배고프면 달려가곤 했던 야식집이 있었다. 그 당시 본인은 언제나 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멋진 대식가였는디(최근에 한 친구는 그 때 내가 너무 많이 먹어 무서워 손절을 할까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고백했다....아직까지 만나주어 고맙고..그래도 지금은 정상 범주에서 잘 먹는 편이다.;;;) 낮밤이 없이 배가 고팠다. 그렇게 먹을 걸 찾으러 어슬렁 거리다 작은 야식집을 찾게 되었다. 그곳은 특이하게 얇은 돼지고기(껍질이 붙은 아주 얇게 썬 냉동 돼지고기를 사용하셨다.)로 자작하고 얼큰하게 끓여낸 김치찌개를 만들어 주셨는데 마늘이 많이 들어가 그런 지 누린 냄새가 없이 진하고 김치 맛이 아주 세지 않고 부드러운 맛이 났다. 이삼일 멀다 하고 가서 먹을 만큼 중독적이었다. 지금도 그 김치찌개는 종종 생각이 난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살던 동네에-맛있는 게 전혀 없는 동네였다...-유일무이한 느낌의 만둣집이 있었는데 아주 허름하고 작은 가게였다. 호박이 들어가 달큰하면서도 돼지고기 육즙을 살짝 매콤하게 눌러 주는 청양고추가 들어갔다. 만두피는 대충 눌러 투박하고 두툼했다. 대체로 늘 손님이 많아 주문을 하면 바로바로 만들어서 쪄서 뒷 주방에서부터 만두들이 잔뜩 연기를 올리며 앉아 있는 둥그런 망째 허리가 굽은 할머님 사장님이 가지고 나오셔서 포장을 해 주셨다. 국물을 달라고 하면 동그란 어묵이 몇 개 썰린 칼칼한 어묵국물도 큰 그릇에 넉넉히 공짜로 주셨는데 그 만두와 그 국물을 같이 먹으면 정말 3인분도 그 자리에서 먹고 또 집에 싸가서 먹을 만큼 기절할 맛이었다. 그런 만두는 어디에서도 이후로 본 적이 없고.. 그 만둣집은 사장님이 연세가 있어 몇 년 후 문을 닫았다. 내 인생 최고의 만두였다.
대를 이어서 내려오는 식당들을 몇 개 제외하고는 어느 순간 사랑했던 음식들이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사장님들은 알까? 그 맛을 이렇게 영원히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장사가 잘 되지 않아,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등등의 이유로 문을 닫아야 했지만 그 맛은 영원히 남는다는 걸. 누군가의 추억 속에 언제든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걸. 나는 이제야 찾은 이 떡볶이집을 오랫동안 잃지 않았으면 한다. 오래 이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문득 든 나의 오랜 친구들.. 사라진 식당들에 대해 한 번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키보드에 손을 얹어 보았다. 나를 키운 게 과연 책과 학교와 사람들 만일 까요. 그대들의 레시피가 한 사람을 이렇게 키웠답니다. 오늘도 나는 감사히 나의 소울푸드를 찾아가고 신체의 풍성해짐뿐 아니라 마음의 성장도 한다. 우리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하루가 되시길.
4시 30분 떡볶이 집 오픈을 또 기다리며. 먹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