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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Apr 27. 2021

내가 예술지원금을 걷어찬 이유

나는 비싼 예술가라고!

최근에 지원한 '전문예술창작지원' 건에 작품이 선정되었다. 2013년 이후 국가 문화예술 지원제도가 창작의 독이라는 말을 지원사업 결과 보고 세미나에 남기고, 또한 구걸하며 예술하지 말라는 모친의 말에 공감하며 예술지원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적이 있다. 그 후 나는 집 앞에 스튜디오를 만들었고, 이런저런 기업체와 대학 강의를 해서 모은 돈으로 작품을 발표하곤 했다. 몇 년이 지나서 나는 산통을 잊은 산모처럼 작품 지원에 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못할 것도 없지'라고 생각했다. 나도 세금을 내니까 말이다. 코로나로 모든 강의가 중단되고 내 인생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서류 작업에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그리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작품 지원에 선정되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예술계를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뭔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술가의 허울 좋은 경력, 학력, 수상이란 작품력과 그다지 상관없는 대부분 쓸데없는 것들이다. 이런 걸로 무지렁한 대중과 공무원들은 속일 수 있어도 진짜 예술가들은 안다. 그게 다 껍데기라는 것을. 그건 예술엔 정작 까막눈인 사회의 여러 협잡꾼들과 일부 사기꾼 같은 예술가들이 협력하여 저희들끼리 소꿉놀이를 하는 것과 같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거 다 빼버리고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을 자기 이름과 목숨을 건 작품 하나 내세울 게 있다면 그런 예술가가 진짜 예술가일 것이다. 나는 지난주 '사업 임의 포기 신청서'를 내고 지원금을 받을 기회를 보기 좋게 걷어차 버렸다. 하늘을 보고 '하하하' 웃었다. 메롱이었다. 나는 예술가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내 작품을 지원금 제도 따위에 헐값에 팔아먹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원금 제도가 내 작품을 위해 지원을 해주는 제도인 줄 알았는데, 있어 보이는 지원금 제도의 존속을 위해 내 작품이 들러리처럼 소용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원금 제도 안에는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내 거친 언사에 정말 아니라고 반박할 자가 있기나 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지원금 제도가 이렇게 예술가의 자존감을 짓밟고 있는 상태로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다. 세금을 어떻게든 다수에게 분배해서 뭔가 그럴듯하게 예술과 문화를 진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한 제도같이 느껴진다. 내 귀한 작품에 고작 몇 백만 원을 쥐어주면서 174페이지에 해당하는 매뉴얼을 꼼꼼히 읽으면서 별 희한한 서류를 온라인으로 꾸며대는 것을 요구한다. 해당 지원금의 기획료 최대 할당치는 30만 원밖에 되지 않아서, 최저시급으로도 행정인력을 따로 구인할 수 없다. 그래서 어쨌든 지원 건으로 작품을 진행하려면 예술가인 내가 행정절차까지 도맡아야 한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는데 과정을 진행하다 보니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 잠재적 '도둑놈'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머리에 태조산 각원사에 있는 대형 청동불상이 내 머리 위로 앉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서류를 꾸며보려고 했는데 춤추는 예술가인 내가 1주일 내내 꼼짝도 못 하고 탁자 앞에 앉아 최저시급도 못 받는 삼류 비서가 된 느낌이었다. 그 서류 작업이라는 것은 대학원에 유학씩이나 나오고 외국인 회사에서 사업계획서를 써내면서 현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나도 쉽사리 못하는 별 거지 같은 절차들이다. 적어도 나는 그게 '거지 같다'라고 생각한다. 그래 별 '거지 같은'! 그런 모든 기회를 박차 버리면서도, 나는 그것보다 더 창작을 잘할 수 있고 좋아하기 때문에 예술가의 길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거지 같은 행정절차에 내 에너지를 소모하기 싫었다.


나도 안다. 한국 사회에서 튀는 것이 무엇인지, 바른말하는 게 무엇인지. 질문하는 게 무엇인지. 한국에선 옳고 그른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눈치가 얼마나 있어서 집단에서 튀지 않는지가 선악과 도덕의 관념을 능가한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다수결의 원칙이 정의로움을 능가하는 때가 많다는 것을. 쓸데없는 경력이지만 이런 겉치레가 나름 쓰임새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문득 과거 외국법인에 근무했던 때 미국인 상사가 내게 한 말이 생각이 났다. 당시에는 바빠진 업무 때문에 자질구레한 일에 치여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하고 허덕이고 있었을 때였다. 미국인 상사가 내가 짜증이 난 이유를 물어보았고,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허드렛일을 추가로 하고 있는지 설명을 했다. 한국 회사였으면 어땠을까. 당연히 그런 수고와 고통은 감내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내 얘기를 듣고 별것 아닌 듯이 상사가 한 말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You are an EXPENSIVE WORKER. We hired you for more important things. Why didn't you hire an assistant?"


상사는 내게 회사가 나를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것은 중요한 일을 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고, 허드렛일은 보조직원 한 명을 진즉에 구했어야 했다고, 왜 그렇게 하지 않았냐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인재는 그만한 일을 시켜서 부려먹어야 비용 효율적인 것이라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그 즉시 보조 직원을 구해서 허드렛일을 위한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역시 합리적인 사고가 선진적인 회사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래, 나는 '비싼 노동자'였다. 그리고 지금은 부가가치가 더해져 더 비싸진 예술가이다. 내가 30만 원에 해당하는 기획비로 내 비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예술가로 할 짓이 아니었다. 말은 '전문예술창작지원'이라고 해놓고 왜 전문창작예술인을 최저시급도 안 되는 공무원 산하 허드레 잡일 직원으로 만드는 것일까? 나는 행정절차에서 예술가에 대한 이해나, 신뢰, 존중의 기미는 하나도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이 지원금을 걷어차버리기로 했다.

나의 "창작과정을 저해하는 행정절차의 비효율성과 지원금 축소에 따른 사업 임의 포기" 사유서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례비 책정의 비효율성과 소모적인 기획행정절차. 한 마디로 내 작품과 예술가의 가치를 덤핑 해버리는 제도인 것이다. 예술가 사례비는 원칙적으로 예술가가 책정하는 것이다. 그것도 작년까지는 인정해주지 않다가 올해 들어서야 재단에서 상한가를 책정해서 소액 인정했는데 예술가의 가치가 목욕탕 슬리퍼의 때만큼도 못하는 것처럼 자존심이 상했다.

 

-창작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모르는 길을 만들어가며 자유롭게 놀면서 이루어지는 조합인데, 예산 항목 책정이 너무 구체적인 것을 요하고, 항목 간의 이동과 유동성이 불가능하므로 창의성을 오히려 방해하게 된다. 그간 예술가를 사칭한 도둑놈들이 많았나 보다. 게으른 제도와 사기꾼 예술가들 사이에서 정작 지원을 받아야 할 순수예술 창작인은 새우등 터지듯 피해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가가 기획, 세무, 재무 일도 모자라 고용보험까지도 챙겨야 한다. 예술가가 고용보험으로 혜택을 보고 있는 경우는 이미 여타 안정적인 위치에서 예술을 하고 있는 소수의 큰 단체밖에 없다. 차라리 허울 좋은 예술인 고용보험 없애는 게 그나마 몇만 원이라도 예술가를 도와주는 게 된다. 더군다나 1인 사업가에 단체 대표인 나는 고용보험에 혜택에 해당되지 않는다.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지원 기회를 위해 웬만한 기업의 총무과 과장이나 알아야 할 것들을 (나는 회사를 다녔음에도 이런 것에는 관여한 바 없다. 기업의 총무과나 유명한 회계법인에 세무 및 회계업무를 맡겨서 했었다.) 배워서 하라고 하는 것은 법전을 주고 알아서 변호사가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 웃긴 얘기는 문화재단의 담당자들도, 새로 시행한 제도의 복지재단 담당자들도 아직 제도를 잘 모르고 질문에 답변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현 예술지원제도는 최저임금을 심각하게 위배하는 불법 지원제도이다. 고용보험이니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서류에 나타난 최저시급도 안 되는 지원금의 불법성을 심각하게 조사해보아야 한다. 예술가의 피나는 창작과정과 시간, 그리고 노력을 이해한다면 심사과정에서 제대로 된 정직하고 열정 있는 예술가에게 묻지고 따지지도 말고 십만 원이든 이십만 원이든 지원금을 주고 나중에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리적인 증빙을 요구하면 그만이다. 아니, 증빙도 왜 필요한지 모를 일이다 (창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지 않으면 그 돈을 도대체 어디에 사용한단 말인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한들, 그게 왜 창작과 관련이 없는 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금액에 상관없이 정말로 본인의 창작활동에 지원금을 지원금으로 아주 고맙게 잘 활용할 것이다. 지원금 없어도 창작을 지속하고 있는 예술가에게 조금이라도 지원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고작 몇 백만 원 주면서 예술가인 나에게 이중 견적서니 뭐니 그 따위 형식적인 서류 꾸미라고 하지 말란 말이다. 그래 봤자 거짓서류 꾸며대는 사기 기획자만 늘어날 뿐이니 말이다.


(*혹시라도 예술에 왜 지원금이 필요하지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또 다른 하나의 글로써 작성해야 할 분량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무료인 줄 알고 받는 모든 예술 감상의 혜택이 사실은 무료나 그 티켓 가격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재원과, 시간의 산물, 예술가의 희생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바란다. 당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히 아주 많은 예술의 혜택을 무료나 헐값으로 누리고 있다는 것만을 알면 된다. 진짜 예술가들은 대부분 베풀기를 좋아하는 바보들이다. 그 바보들 때문에 세상이 그나마 이만큼의 인간미와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예술가들은 또 나한테 총대를 매듯이 글이나 기사를 써보라고 한다. 나는 그런 예술가들에게도 경고하고 싶다. 내 글에 빌붙지 말고 필요하면 너희들이 너희들 입으로 직접 말하라고. 서태지 노래의 가사처럼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는' 그런 음흉한 예술가들은 더욱더 얄미운 존재들처럼 느껴진다. 내 글은 여기까지이다. 나는 오늘도 예술가로서의 삶을 잘 살았다. 아직은 영혼을 팔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나에게 칭찬해준다.



사진> 각원사 청동불상

=내 머리 위를 짓누르고 있던 행정절차의 중압감과 스트레스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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