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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Aug 11. 2022

풀벌레 소리 가득한 여름

호화로운 여름 잔치

베란다 쪽 풀이 자라서 죄다 곡선으로 구부러졌다. 반복되는 반원 모양의 곡선이 패턴을 이루어 묘하게 흥미를 끌면서 내내 멍하니 시간을 잊게 만든다. 푸르른 식물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저절로 힐링이 되고 창가를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풀이 한가득 자라나니 보이지 않는 각종 벌레들이 풀숲 어딘가에 숨어서 각자의 음색과 리듬을 따라 노래를 한다. 찌르르르, 째애애앵, 찌지 찌직, 쓰르르르르, 흉내를 낼 수는 없지만 나름 조화롭고 아름다워서 유연한 풀들의 곡선을 눈에 담으며 그 소리에도 멍하니 젖어든다. 빗물을 먹고 싱그럽게 자란 초록빛 식물들로 나의 마음에 더욱 생기가 돈다. 늘 그렇듯이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내려서 컴퓨터 너머로 창밖을 보다가 간혹 떠오르는 상념을 끄적거린다. 아, 행복하다!


며칠 전 멀리서 새롭게 알게 된 지인이 찾아와서 풀을 자르고 파라솔을 가져다 놓으라고 했는데, 나는 그 소리가 잔인하고 운치 없게 들렸다. 풀이 자라서 이제 겨우 풍성한 초록이 되었고 그 가운데 간간히 흰 꽃이 피었는데 누구의 눈에는 그게 잘라버려야 할 무엇처럼 보이나 보다. 자연은 자연스러운 게 멋이다. 청량한 빗물과 초록의 유연한 풀과 모과나무, 벌레들의 오케스트라, 그리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이 호사스러운 시간을 사랑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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