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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Sep 02. 2022

사마귀, 잠자리, 여치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커다란 연두색 사마귀가 유리문 밖에 앉았다.

나는 작은 삽자루로 사마귀를 쫓는다.

자루 끝이 사마귀의 앞발가락에 맞았다.

사마귀는 입으로 연신 찍힌 발끝을 핥는다.

곤충이 신경이 없다는 말은 바보가 한 말이다.

사마귀는 나 때문에 불구로 살지 모른다.

커다란 눈이 나를 원망하는 듯하다.

나는 내 손끝을 내 입술 끝에 문다.


작은 잠자리 한 마리가 문 안으로 들어왔다.

날아서 밖으로 도망을 가면 좋겠는데

내 탁자 위에서 맴을 돈다.

나는 걸레자루 끝으로 잠자리를 쫓는다.

꼬리를 맞은 잠자리는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잠자리는 창 끝에 누워서 연신 날개를 끄덕인다.

나는 너를 맞추려고 그런 게 아닌데......

잠자리는 잠시 쉬다가 날아갈 거야.


흙색 여치가 가을바람을 따라 들어왔다.

너른 풀밭으로 다시 나갔으면 좋겠는데

의자 밑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발을 구르고 실내화를 던진다.

덩치 큰 여치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다가

더 깊은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내일 아침이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거야.


나는 오늘 집게를 들고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있는 잠자리와 여치를 집어서 쓰레기통으로 넣었다.

나 때문이 아니야.

너희들이 온 거야.

너희들이 나가지 않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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