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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수업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by
이영선
Sep 26. 2022
아이들은 얌전히 들어오는 법이 없다.
가방을 내팽개치고 냅다 뛰어 들어오면, 아무도 그러라고 시킨 적이 없는데도 그렇게 한참을 뛴다.
-힘들지 않니?
나는 묻는다.
-아니오, 자유로워요. 뛰면 기분이 좋아져요.
한동안 뛰던 아이들은 바닥에서 서로를 껴안으며 뒹군다.
아이들은 물병처럼 바닥을 이리저리 깔깔거리며 굴러다닌다.
굴러다니는 것이 질릴 때면 하나 둘 일어나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 시작한다.
검은색 커다란 치맛자락이 아이 주변으로 동그랗게 날린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어지럽지 않니?
나는 묻는다.
-안 어지러워요. 돌면 기분이 좋아요.
한동안 멈추지 않는 아이들에게 다시 묻는다.
-안 어지럽니?
아이는 대답 대신 반대로 돌기 시작한다.
-반대로 돌면 다시 처음부터 오랫동안 돌 수 있어요.
나머지 아이들도 따라서 돌기 시작한다.
-어지럽지 않니? 왜 아무도 먼저 멈추지 않는 거니?
-사실은 어지럽긴 한데 속으로 경쟁하고 있는 거예요. 지기 싫어서요.
스튜디오를 두리번거리던 아이가 말한다.
-여긴 숨을 곳이 많이 없네요?
작은 테이블에 시선이 멈춘 아이가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 다른 아이를 부른다.
-여기에 한 명 더 들어올 수 있어.
아이는 더 낮고 작게 몸을 말아 그 앞에 있는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아이들은 좁은 틈을 비집고 거북이처럼 몸을 말고 웅크려 있다.
-너는 왜 그 안에 자꾸 들어가는 거니?
나는 묻는다.
-여기에 있으면 안정감이 들어서요.
동그란 전등 앞에 얼굴을 바짝 댄 아이가 한동안 불빛만 바라보고 앉았다.
미동도 하지 않는 아이에게 나는 묻는다.
-왜 그러고 있는 거니?
-이러면 아무 생각이 없어서 마음이 편해져요.
베란다 밖을 나가보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스튜디오 문을 열어 주었다.
아이들은 이내 나무를 보며 하늘을 향해 몸을 움직인다.
-안에서도 똑같이 움직일 수 있는데 왜 밖에서 움직이니?
-그냥 달라요. 이곳이 더 좋아요.
-여기서 그림을 그려도 돼요?
한 아이가 묻는다.
-너희들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지 않니? 거기에서 그림을 그리면 되잖아.
-거기에선 자유롭지가 않아요.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내 마음대로 그릴 수가 없어요.
창문 위로 내린 블라인드 사이로 붉은 노을빛이 들어온다.
한 아이가 외친다.
-블라인드를 다 걷으면 안 될까요? 노을이 정말 진한 붉은색이에요.
-불도 끄면 안 될까요?
아이들은 질문과 동시에 벌써 블라인드와 조명기가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나도 오래간만에 활짝 열린 통창을 통해 보랏빛 섞인 붉은 하늘을 본다.
-Charlie Puth의 음악을 틀어주세요. 제목은 몰라요.
-아니, 아니, 그냥 검색창에 butterfly를 쳐서 아무거나 나오는 걸 틀어주세요.
노을이 지는 저녁에 컴컴한 춤파티가 열렸다.
아이들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더 강하게 표현한다.
나는 이곳에 들른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맘껏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을 보석 같은 표정을 공간에 내뿜으며 그렇게 춤을 춘다.
나는 아이들이 남기고 간 보석들을 이곳에 걸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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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드로잉> 출간작가
춤추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통합창작예술가. 장르와 경계를 녹여내어 없던 세상을 만들고 확장하는 자. 그 세상의 이름은 이영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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