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말이 되어 소년은 늪으로 향했다. 이 날은 전날 내린 비로 아침부터 안개가 키높이만큼 올라와 있었다. 늪은 습해서 물안개가 자주 피어올랐다. 안개가 끼거나 비가 내리는 날에, 늪은 더욱 신비로운 모습이 되었다. 그는 특히 이런 날엔 늪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좋았다. 아무리 유순한 모습으로 늪에 있어도 늪을 나가면 다시 괴물이 될 그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작은 카메라의 렌즈 속으로 안개 낀 늪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마구 담았다. 그가 찍어대는 만큼의 풍경이 카메라 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아무리 많은 사진을 찍어도 늪의 풍경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늪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었고, 마음껏 가져가도 늘 그대로 풍성히 채워져 있는 곳간과도 같았다. 그러나, 소년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풍경을 마음껏 가져가는 만큼 늪이 자신들의 삶을 그곳으로 빨아들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는 그가 늪에서 보내는 만큼의 시간이 늪의 시간에 보태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늪의 입구에서 왼쪽으로 돌아 한참을 걷다가, 좁고 긴 도랑이 느리게 흐르는 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그곳엔 몸통이 뻥 뚫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그는 그 앞에 바로 놓여있는 벤치 위에 나무와 마주 앉아서 사탕을 하나 꺼내어 입에 물었다. 나무는 누군가 맛있는 것을 넣어주길 바라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딱딱한 나무둥치의 겉 껍데기 부분을 빼면 몸통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만큼 안으로 구멍이 깊게 파여있었는데, 그가 그 속에 몸을 반쯤 숨기고 들어가 있어도 충분할 정도로 컸다. 그 구멍은 충치 치료를 하려다가 말아서 오랫동안 그대로 파여있는 어금니와 같기도 하고, 아무도 못 듣는 소리를 매일 지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그 나무가 여전히 잘 살아서 위로 가지와 잎들을 싱싱하게 뻗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장을, 아니 내장을 통째로 도려낸 것같이 속이 뻥 뚫렸는데도 살아있는 이 나무를 보면 오래전에 멈추어 뛰지 않는 차가운 심장을 가지고도 삶을 이어가는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그 위로 겹쳐졌다. 우스꽝스럽다고 해야 할까, 슬프다고 해야 할까. 그의 진료실을 찾는 사람들을 수술대 위에 눕혀 놓고, 두꺼운 껍질과도 같은 피부를 갈라 몸통 안을 열어보면 대부분은 저렇게 텅 비어있는 상태로 있을 것만 같았다. 속은 없는데 겉으로는 혈관이 연결되어 있고, 어떤 기계적 메커니즘에 의해 숨은 쉬고 있지만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모습이랄까. 그런 삶에는 온기가 없었다. 가슴 뜨거운 삶이 아닌 것은 더 이상 삶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삶의 연명과도 같았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괴물이 된 사람들은 꽉 차고 뜨거운 삶보다는 차갑지만 딱딱하고 거칠고 강해 보이는 껍질을 만드는데 더 관심이 있는 듯했다. 그들은 그것을 ‘성숙’이라고 불렀다.
"그거 하나 다시 줄 수 있겠니?"
그는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소녀가 사탕이 들어있는 지퍼 주머니를 가리켰다.
"이번엔 노란색을 꺼내 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지퍼 주머니에 손을 넣어 원하는 빛깔의 사탕 하나를 꺼내어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사탕을 얼른 입에 넣고 달콤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얼굴 위로 덮인 어두운 그림자의 색이 지난번보다 조금 더 옅어진 것 같았다.
"사탕은 원하면 모두 가져가도 좋아. 대신 이제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너는 어떻게 여기에 살고 있는 거니? 여기 어디에 네가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거지?"
그는 소녀에게 물었다.
"이 늪은 살아있어. 모르겠니? 지금 우리가 하는 이야기도 엿듣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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