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늪에 다시 올 때마다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소녀와 함께 늪에서 보냈다. 특히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어 늪의 바닥이 물러질 때에는 소녀와 더 많은 곳을 누비며 함께 할 수 있었다. 소년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조금씩 소녀에게 할 수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지퍼 달린 껍질 안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자신의 본래 모습이 점점 더 매끄럽고 강하게 펴지고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네가 늪에서 흥미롭게 본 것들을 말해줄 수 있니? 너는 늪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니?”
어느 날 함께 늪을 멀리 돌아 산책을 하다가 소녀가 물었다.
“늪은 우선 너무 아름답고 평화롭지. 누구라도 와서 쉴 수 있고 여기에서는 한밤 중에도 길을 잃거나 무서운 느낌이 들 것 같지 않아. 아무도 나쁜 생각을 할 것 같지 않거든.”
소녀는 소년의 대답을 듣고 갑자기 깔깔거리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소년은 의아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뭐가 우습다는 거지?”
소년이 물었다.
“너는 늪을 아직 잘 몰라. 네가 늪에 대해서 안다면 네가 했던 행동 중에 어떤 것들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야. 아마 소름이 끼칠 정도로 충격을 받을지도 몰라.”
“내가 뭣 때문에 충격을 받아야 하지?”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 소녀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 무서운 것들이지.”
“예를 들면?”
소녀는 늪의 안쪽에 태풍에 꺾이고 뿌리째 쓰러진 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 늪이 아주 오래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
소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봤어?”
소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기에 누워있는 나무들을 처음 본 건 아니지?”
“응. 나는 다치고 쓰러졌어도 그 자리를 시작으로 다시 담담히 힘 있게 살아나가는 이 나무들을 보고 감동을 받곤 하지.”
“이 나무들이 사실은 밤에 돌아다녀.”
“뭐라고? 그게 사실이야? 말도 안 돼!”
소년은 흠칫 놀란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나무가 누워서 아무 문제 없이 자라는 게 신기하지 않아? 나무들은 태풍에 쓰러진 후에 오히려 자유로워진 거야. 다행히 나무가 다쳐서 꺾인 게 아니고 그냥 뿌리째 흙덩이와 함께 넘어진 것이기 때문에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거야. 늪에서는 커다란 나무가 넘어진다 해도 크게 다칠 일은 없어. 어차피 사방이 무른 땅이거든. 나무들이 밤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피곤해지면 해가 뜨기 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이렇게 누워서 낮잠을 자는 거야.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말도 하나도 들을 수 없을 거야. 저렇게 큰 몸뚱이를 밤새 느리게 움직여서 다니려면 아주 힘이 많이 들거든. 나무는 원하면 다시 제자리에 서서 자랄 수도 있지만 우연히 자유를 얻었는데 또다시 땅 속에 옴짝달싹도 않고 붙잡혀 있고 싶지 않을 거야. 나무도 힘이 세지만, 땅의 힘이 더 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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