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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Sep 17. 2023

사물에 생명이 없을까?

사물에 생명이 없을까?


어렸을 때에는 무속신앙이나 사물을 섬기는 것을 무조건 미신으로 배척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고, 이후에는 점점 이것을 전통문화의 한 단면으로 수용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느낀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어쩌다 자연스럽게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의 테두리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분법적인 사고에 치중해 있었고, 사물이나 석상 등을 섬기는 듯한 관행을 금기시해야 하는 미신 정도로 생각했다. 지금은 여러 계기를 통해 기독교적인 사고의 테두리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고, 그렇다고 무속신앙에서처럼 사물이나 석상 등이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소원을 들어주거나 세상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사물이 단지 죽은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의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관찰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물이 살아있는 것도 아니지만 죽어있을 수도 없는 것이, 각 개인의 시각과 환경에 따라 그 사물이 각기 다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하나로 똑같이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을 죽었다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사물은 가만히 있을지언정 이를 인지하는 시각이 각 개인 간에, 혹은 개인 안에서도 개인의 느낌과 감정, 시간에 따라 실제로 매번 달리 인지되기 때문에 그 사물은 계속 움직인다는 것이고, 계속 움직이는 어떤 것은 결국 살아있는 게 된다. 내가 아무리 고정된 어떤 하나의 상으로 그것을 보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사물이 죽어있으려면 이에 대한 내 인식이 죽어야, 혹은 아예 망각해야 가능하다. 내 인식이 죽어야 그 사물이 내 인식에 살아있는 것으로 더 이상 인지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물을 여전히 신처럼 섬기고 있고, 각종 종교는 모두의 동의를 얻거나 입증이 되지 않은 어떤 것을 절대적으로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런 믿음은 단순히 믿는다는 정신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실제 물질세계까지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대상은 더욱더 강력하게 있는 것이 되고, 믿지 않으면 그것은 그런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 된다. 모두에게 입증이 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믿음'이라는 용어를 종교에서 쓰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동안, 그것을 내가 믿지 않는다고 완벽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을 각자의 삶에서 선택한다.


나는 머리를 식히거나 운동을 하려는 이유로  집 근처의 산에 있는 경치 좋은 절에서 산책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쩐지 숙연하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진 적이 있었다. 고요한 자연환경, 절의 처마 끝에 달린 풍경소리, 스님들이 입고 다니는 소매가 넓은 제복 같은 승복, 높은 천장, 실내 천장마다 매달린 소원을 적은 온갖 쪽지들, 커다란 불상, 묵직한 석탑, 향내음, 늘 불이 켜진 채 있는 몇 개의 초들, 그리고 산에 올라가는 길목마다 여러 사람들이 주워 올렸을듯한 자잘한 돌무더기 석탑들...... 아무도 조용히 하라는 사람이 없는데 그곳에 가면 사람들이 왠지 경건한 모드로 무언가를 빌고 있거나, 숙연한 마음가짐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은 성당이나 교회 건축물의 이미지들로 확장되었다. 이들의 간판과 세부 디자인은 다르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점이 있었다. 위로 향할수록 뾰족해지는 석탑, 숙연한 모습으로 특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석상들, 건축물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각종 기괴한 모양의 동물, 혹은 상상의 도깨비나 악귀들의 모습, 높은 천장, 촛불, 풍경 혹은 종소리, 약수를 받아 놓은 커다란 돌그릇 혹은 성수통, 치렁치렁한 유니폼(종교인 제복) 등, 마치 수학의 방정식처럼 등호를 가운데에 두고 양 쪽으로 두 개의 다른 종교들의 공통된 것들이 배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건축 구조물과, 장식물, 촛불 등만 있다면 나도 뭔가 소매가 늘어지는 옷을 입고 서서 종교처럼 보이는 것 하나를 창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끔 촛불 앞에서 절을 연거푸 하거나 손을 모으며 불상을 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예전 같으면 '저건 미신이고 돌에 지나지 않는데 왜 자꾸 앞에 대고 뭘 빌거나 굴러다니는 돌을 죄다 쌓아서 돌무더기를 만들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때 문득 '저건 그냥 사물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물론 무속신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물에 뭐가 들어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은 아니다. 돌의 물성이 아니라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그 돌과 장소를 신성한 어떤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마음이나 영혼에 에너지가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것이 실제로 측량이 가능한 건지 등은 알 수가 없지만, 마음과 영혼이라는 단어가 이미 있기에, 그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는 돌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많은 마음과 바람과 기도들이 쌓여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발로 차버려 무너뜨려도 상관없는 아무것도 아닌 돌이 아닌 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순전한 마음과 영혼의 문맥이 아닌, 돌 자체를 눈앞에 있는 인간보다 더 신성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부작용이 미신이나 다른 종교적 갈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사물이라도 거기에 담긴 스토리, 추억, 기억, 마음, 바람들을 담고 있다면 어떤 신성하거나 순전한 것의 상징물로써 단순한 물질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그 돌을 훔쳐서 가져가더라도 그 돌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 문맥과 마음까지 훔치지 못한다면, 그건 그냥 아무 의미도 없는 돌을 소유한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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