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작업실 앞에 낯 선 여자가 후드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서 있었다. 문을 열어 주었다.
"저,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동네 아줌마인가 싶었는데, 모자를 벗으니 그보다는 앳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나름 이곳의 문을 두드린 것은 용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친구는 몇 달 전 서울 유수의 학교를 1등으로 마치고, 독일에서 오르간 전공을 하다가 여타의 이유로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 몇 달간 소통할 사람이 없이 집에 있는데, 독실한 기독교인인 모친이 "저기에 너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라며 가보라고 했단다. '나와 비슷한'이란 어구가 거슬리긴 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이 나를 만나본 적도 없는데 나를 나름의 이미지로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그 친구와 나는 금세 공감대를 얻으면서 몇 시간 동안 대화를 하고 아주 가끔씩 연락을 하고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독일에서 조울증까지 겪으며 방황기를 맞은 그녀는 여러 고민을 하고 있었고, 그런 고민들은 내겐 이미 익숙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나와 그녀가 처한 상황이 같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예술가의 길을 걸어온 과정은 그 누구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탓인지, 이 친구는 몇 번씩 찾아와서 고민의 진행상황을 들려주고는 했는데, 처음에는 '독실한(나의 해석: 기독교라는 그루밍과 가스라이팅에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세뇌된)' 기독교인인 모친이 본인이 관심 있어하는 현대음악을 '악한 음악'으로 분류하고 '선한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등의 기본적인 예술적 이해도의 차이로 인한 불통이었고, 이후에는 부모의 가이드만 따라 살아온 자신이 갑자기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것에 대한 고민, 그리고 어제는 불쑥 찾아와서 '그 나이가 되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밥값만 축내는 비생산적인 인력'인 것처럼 언급한 가까운 누군가 때문에 상처를 받은 이야기를 하며 우울해했다. 그녀는 여태 부모의 기대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처음으로 인생의 방황기와 치유기를 가지면서 나름은 열심히 노력하고 고민을 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고 있는데 그런 말을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상처를 준 이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악마, 가족의 일원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상대가 비하하는 말을 털어놓기 전에 자신을 묘사한 부분, 즉, '나는 여태까지 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살다가'까지가 객관적인 사실이자 본인의 모습이고, 이후의 비난은 숫자에 집착하고 본인이 보유한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상대의 기준과 상황인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주었다. 또한 유명한 네덜란드 의사이자 작가인 반 에덴의 '독버섯'에 관한 동화를 일례로 들면서, 누가 버섯에게 독버섯이라고 한 것은 그렇게 말한 사람의 필요에 의한 것이지 버섯 자체의 정체성이 아님을 강조해 주었다. 그게 좀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에게 절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존재감을 타인의 결정에 휘둘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돈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가장 모욕적인 일이다. 물론 가급적 성인으로서 경제적 자립성을 길러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녀의 상황은 학업을 계속해 온 학생으로서, 가족의 상황이 허락된다면 집에서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일이고, 또 그런 환경을 제공한 것도 부모라는 것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엊그제까지 예술가가 되라고 예술학교에 보내 놓고서는 갑자기 '돈 벌어오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말 황당한 일이다. 본인도 그 전환점을 겪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종종 자식들에게 예술을 전공시킨 부모들의 이중성과 모순을 경험한다. 그건 문화예술 수준이 매우 낮은 작은 나라에 예술학교가 그렇게 많은 이유를 모르겠는 모순과 일치한다. 예술을 전공시킨 부모들은 대부분 본인들의 결정에 의해 '좋아 보여서', '대학을 쉽게 가려고' 등의 이유로 쓸데없이 돈을 들여 대학교 문턱을 넘어가게 해 놓고서는 왜 돈을 못 벌어오냐고 자신들의 투자대비 생산성과를 들먹이며 이런저런 하소연으로 자식들을 힘들게 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예술로 돈을 버는 일은 도박과 가까운 승률을 보인다. 예술이 뭔지도 모르고 부모들의 결정에 이끌려 대학에 온 학생들은 대부분 이런 처지에 놓인다. 돈을 벌어야 하면 애초에 상고를 보내던가 직업전문학교나 그런 학과에 가는 것이 맞다. 투자나 사업을 가르치는 것도 좋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방황하고 탐색할 여유도 주지 않는 교육환경을 따라 아이는 그저 열심히 따라왔을 뿐인데, 이제 와서 자신도 혼란을 겪어 마음이 아파 1년 여에 걸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자식에게 그 나이에 돈 안 벌고 뭐 하냐는 식의 말은 그 자식에게 혼란과 상처를 가중시켰을 것이다.
가끔 예술을 전공시키려는 아이들의 부모가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예술가적인 재능을 가진 경우가 우선은 드물고, 있다 해도 본인이 굳이 그것을 원하거나 즐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절대로 예술을 함부로 전공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할 수 있고 원한다면 가장 행복감을 줄수도 있지만, 그 길은 매우 험난해서 목숨을 걸고 이 사명을 살아내겠다는 각오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가장 논리에서 벗어나고 위험한 일이다. 가끔 농담으로 우리끼리는 말한다. 코로나바이러스나 역병보다 무서운 건 예술에 발을 들이는 것이라고. 그건 평생 끊어내지도 빠져나오지도 못하는 세상 어떤 것보다 강한 중독이고 삶의 외형을 폐허로 몰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말이다.
예술가는 무당과도 같다. 숙명처럼 타고나는 것이고, 어느 날 불현듯 발현되는 것이고, 그게 진짜 재능이라면 거부할 수도 다르게 살 수도 없다. 공부한다고 예술가가 될 수 없다. 무당끼가 없는 사람이 신내림을 엉뚱하게 받으면 이상하게 되는 것처럼, 예술가적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괜한 예술가 교육을 잘못받으면 돈 못 버는 자본주의 사회의 저능아가 되거나 사람의 인생이 망가져 버린다. 그뿐인가? 그 주변의 문화예술 수준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교활한 예술정치가가 된다. 하지만, 그게 진짜 숙명이라면 거부할 수도 없고 그런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건 그 사람 개인의 인생에서는 물론 가장 황홀한 일이다. 오리지널 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예술을 부흥시키려면 예술 학교 한 두 개만 남겨놓고 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감히 단언한다. 실제 예술대학에 가보면 예술이 스포츠도 아닌데 온갖 허울 좋은 콩쿠르 같은 것을 수상을 하고 대학에 와서는 더 이상 그 길을 걷지 않는 학생들이 90퍼센트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예술학교와 입시는 산업의 일부일 뿐이다. 상과 인정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생겨난 것들이 대부분인 게 콩쿠르인지 상장이니 등단제도 같은 것들이다. 춤은 추는 사람이 춤꾼이고, 글은 쓰는 사람이 작가이지, 누가 함부로 금을 그어 여기를 넘어야 작가이고 예술가라고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참조로 등단제도라는 우스운 건, 일본문화의 영향이라고 들었으며 일본과 한국에만 주로 존재하는 것이라 들었다. 감투 좋아하는 나라의 특징적인 일면이다. 궁금하면 서울의 최고 대학을 콕 집어 가서 여기서 예술가가 되고픈 열정에 불타는 사람이 몇 명인지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 된다. 전 학년들을 거쳐 1년에 1명 나올까 말까 한 답변을 얻을 것이다. 정말로 집에 여유가 있어 자식이 재능이 없어도 허울이라도 갖추고 있게 하려면 시키든 말든 상관이 없지만, 어설픈 자본력과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 등으로 예술을 전공시키려는 부모가 있다면, 그 결과에 대해 자식에게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