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병과 나

나?

by 이영선

아침에 우유를 마신다.

병이 비었다.

내 몸엔 우유가 들어있다.

그러면 난 우유병인가?

빈 우유병을 보고 동생이 우유병이라 한다.

우유병은 우유를 평생 몇 잔이나 돌이켰을까?

난 살면서 우유를 열 병도 더 들이켰는데 우유병이 아니다.


사람들이 나한테 우유를 볼 수 있을까?

그건 또 내 안에 우유가 없다는 말인가?

내가 하얗게 몸을 칠하고 우유인 체한다면

사람들이 나를 우유로 볼 것인가?


우유를 백 잔도 더 들이켰는데 난 우유병이 아니다.

물을 백 병도 더 마셨는데 난 물병이 아니다.

포도를 열 궤짝이나 넘게 까먹었어도 나는 여전히 포도가 아니다.

커피를 만 잔도 더 마셨어도 난 커피포트가 아니다.


내 안에 내가 없어도 나다.

나는 나다.

매거진의 이전글마음에 무거운 추를 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