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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Jan 24. 2024

고객님 특이사항?

웬만해서는 전화를 받지 않는데, 지독하게 전화를 해대는 영업직원들이 있다. 전화로 성질도 부리고. 좋게 설명을 해도, 그리고 결국 전화번호를 차단해 버려도, 핸드폰 전화번호를 바꿔가면서 집요하게 전화가 온다. 처음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배려를 하면서 대응을 했는데, 지금은 아예 모르는 전화번호가 뜨자마자 차단 버튼을 눌러 버린다. 그래도 어쩌다 뜨는 핸드폰 번호는 혹시나 해서 받을 수밖에 없는데, 다짜고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모니임!' 하면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기서부터 기분이 확 나빠진다. 그렇게 부르면 상대가 좋아한다고 교육을 받은 건가? 뭔가를 사려고 하다가도 돈을 다시 지갑에 넣고 싶은 단어들 중 하나이다.


참조로, 나보고 '사모님'이라고 하면 정말 상대의 입을 그 자리에서 꿰매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고 전 국민에게 경고라도 하고 싶다. 제발 십 년 넘게 배워도 엉망인 영어는 고사하고, 사람들이 국어라도 제대로 배우고 쓰는 건지 모를 때가 많다. 전 국민 언어 사용에 병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규 교육을 졸업하기 전에 전국의 국어교사들은 하나 '쓰잘데기 없는' 수능문제는  집어치우고, 서로를 지칭하는 호칭부터 제대로 교육시키고 졸업을 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사모님'의 국어사전적 정의와 사용처를 수능시험에라도 출제해서 사회의 기본 소양부터 가르쳤으면 좋겠다.


전화를 바로 끊으려고 했는데 지금 집이냐고 묻는다. 나는 문득 시키지도 않은 택배가 오거나, 혹시나 나를 아는 사람인가 싶어 그대로 수화기를 잡고 있는다. 나는 지금 집에 없다고 하니, 상대가 더 당황스러워하는 듯하다가, 자신의 직원들이 나에게 전화를 한 적이 없느냐고 묻길래, 누구냐고 물었더니 핸드폰 대리점이라고 하며 신형 핸드폰 소개 때문에 전화를 했단다. 나는 요즘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가 와도 다 지워버리기에 그런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한 술 더 떠서 자기 직원들한테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라고 받아친다. 잔꾀 많은 여우 같은 놈! 그게 무슨 얘기냐고 했더니, '고객님 특이사항'에 내가 바쁜데 전화를 하면 아주 싫어한다고 적어 놓았기 때문에 다른 직원들이 전화를 할 일이 없었을 거라며 능청스럽게 떠든다. 나는 그 대목에서 상대의 능청스러움에 헛웃음이 나서 전화를 끊지 못하고 한참을 어이없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는 전화를 하면 아주 싫어하는 고객'이라는 특이사항이 붙은 사람이었구나. 나는 "그건 맞네요, 잘했네요!"라고 맞받아친다.


그는 핸드폰 사전예약을 하면 뭔가 혜택이 있다면서 한참을 떠드는데, 이전까지는 온갖 핸드폰 구매절차가 복잡해서 나도 모르게 상대의 말에 넘어가서 신형 핸드폰이 나올 때마다 별 계산 없이 '그런가'하고 바꾸었지만, 전국에 깔린 대부분의 상품과 서비스에 장착된 마케팅 사기에 매번 잘도 속아 넘어가면서 나도 정신을 차리는 법을 배웠기에 그가 하는 말에 따박따박 질문을 해가며 말하는 사람 스스로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랬더니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말을 꾸며내지 못하는 지점까지 이르렀다.


나는 세상 돌아가는 것에 문외한이었는데, 코로나 기간에 유튜브도 많이 보고, 이런저런 작은 사기꾼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의 본성에 조금씩 눈이 트이게 되었다. 사기꾼들이 나를 산교육을 시킨 꼴이다. 하나의 사기를 당하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다. 커다란 물질적 손해가 없는 작은 사기 한 두 번은 당해봄 직도 하다. 말보다 실전경험에서 배우는 게 더 많고, 학습 속도도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작은 사기는 백신과도 같다. 백혈구 조금은 전사하여 고름으로 배출되겠지만, 내성을 길러주고 진짜 적군이 나타나면 몸 전체를 강하게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기꾼을 가장 민망하게 만드는 하나의 비법을 공유하자면, 모르는 것, 이해 못 하는 것에 당당해지라는 것이다. 사기꾼은 이해를 못 하고 모르는 것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는 인간의 심리를 아주 잘 이해한다. 상대가 어떤 때에는 답답해하고, 화가 나는 걸 억지로 꾹 누르고 있는 것도 느껴질 테지만, 그런 것은 상대에 아주 잘 대처하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더 자신 있게 상대의 사기본능을 밟아버릴 수 있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친절히 전화를 끊고, 바로 연락처를 차단해 버렸다. 삶이란 사기꾼 밭에 놓인 가상의 게임 공간 속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특히 요즘처럼 통신이 발달되고 개인 정보 유통이 범람하는 시기에, 사기꾼이라는 지뢰를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돈을 떼어가는 놈들보다,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놈들이 더 악질인데, 그런 놈들을 나는 인간이 아닌 '좀비'라고 부르는 바이다. 영혼은 죽고 몸만 움직이며 살아있는 자들의 온기와 영혼을 빼앗는 자들 말이다. 도처에 깔린 크고 작은 좀비 지뢰를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다. 어쨌든 하나의 좀비를 해치우고 나니 '뿌듯한' 기분이 든다. 핸드폰이 뭐라고 책 한 권 살 형편도 안되면서 그거 신형으로 바꾸는 재미에 놀아나는 기업의 호구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쯧쯧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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