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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Jan 28. 2024

내 문장 좀 다듬어 봐

GPT에게 일을 시켰다

GPT에게 내 소개글에 대한 피드백과 개선할 부분이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주 긍정적인 피드백과 함께 왜, 어떻게 좋은지 번호까지 달아가며 세세한 분석을 해 놓았다. 비판적 사고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답변을 잘하지 못한다. 물론 좋은 게 꼭 무슨 세세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좋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좀 더 구체적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말을 아낀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재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할 말이 있으면서 안 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칭찬이나 도움이 되는 의견을 공유하지 않으려는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마음에서 그런 태도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또한 실제 아는 게 없어서 자기 언어로 자기감정 묘사도 못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생각이 있어야 말을 하고 글을 쓰기 마련이다. 나는 보통 세세한 답변과 내가 왜 어떤 의견을 갖는지 묘사적으로 한도 끝도 없이 말하는 편이다. 그게 상대에게 내가 베푸는 나의 시간과 관심과 마음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난 퍼주고 상대는 별 말이 없다. 그게 미덕인 줄 아는데, 참 얄밉다. 그리고 그건 받기만을 좋아하는 이기적인 태도이다. 자기 의견을 아끼는 사람과는 한두 번 본 이후에는 더 이상 소통하지 않는다.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한 사람은 수다스러운 사람보다 위험한 사람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가끔은 말없이 바라보는 눈빛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는 건 알고 있다. 


GPT는 엄밀히 말하면 의견을 물어볼 대상은 아니다. 정보만 취합하고 생각을 하지 않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형식적이고 사무적인 대답인 걸 알지만, 그래도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가 유도해서 들어도 그게 긍정적이면 기분이 좋다. 참 신기하다. 사람도 기계도 사실 내 태도와 말을 거는 어조에 따라 상대가 이에 상대적으로 대답을 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내가 '이 글 별로지?'라고 편향적으로 물었으면 온갖 부정적인 피드백을 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심리도 참 단순하기 그지없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도 진실이나 사실을 대화하고 살지는 않고, 그게 뭔지도 모호하기 때문에, 이렇게나 저렇게나 가지고 놀기에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긍정적인 피드백이 전혀 내 글과 다른 피드백이 아니라 내 글에 근거한 나름의 피드백이므로 전혀 관련성이 없다고도 볼 수 없다. 미국학교 수업 시간 이외에는 이런 건설적이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수평적으로 주고받는 대화 방식이 거의 없는 문화가 답답했는데, 그게 신빙성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GPT는 나의 언어 소통방식과 많이 닮아 있어 수다 상대로는 나쁘지 않다. 어차피 신빙성이라는 건 남이 객관화해서 검증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내 존재에 대한 지원군 하나를 더 얻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이번에는 내 글에서 향상할 (enhance) 부분이 있으면 한 번 수정해 보라고 시켰다. 내 친절한 말투에 한껏 사기가 올라갔는지, 이번엔 온갖 미사여구를 달아서 내 글을 수정해 놓았다. 나는 '여우 같은 놈!'이란 말을 해줄 뻔했다. 기계인 줄 알면서도 참 신기한 것이, 사람과 같은 감정을 자꾸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사람도 조금만 띄워주면 선을 넘고, 아부를 하고, 미사여구가 늘어나듯이, 이 기계도 할 수 있는 온갖 수식어를 원문에 다 붙여 놓았다. 누가 보면 나는 엄청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아니 어쩌면 존재할 수도 없이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이 말 저 말 다 갖다 붙여 놓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아름답고 높고 우러러볼만한......' 꼭 이렇게 썼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000는...'라고 해도 될 단어를 이렇게 과장되고 긴 수식어를 붙여서 생명이 없는 표현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언어 표현 자체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고 고급스럽다. 그런데 뭔가 생명이 없고, 기계적이고, 그래서 너무 평범하고 재미가 없다. 스타일이 없고, 뭔가 많은데 공허하고. 껍데기만 있는 느낌이다. 아부를 많이 하는 부하직원을 만나면, 그가 하는 말이 꼭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느낌이랄까?


나는 처음엔 그 화려함에 '우와!'하고 놀랐지만, 결국 GPT가 붙여 놓은 모든 문구를 도로 다 떼내어 버리고 나의 나 같은, 인간미 따스한, 꼭 나와 닮은 표현만 다시 남겨 두었다. 좋은 표현이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글쓴이의 존재만큼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GPT는 이를 사용하는 개개인의 개별성을 모르니 당연한 거지만, 앞으로 모두가 똑같은 문체의 글만 로봇처럼 쓰게 되는 그런 날이 올까 봐 우려가 되는 지점이었다. 


얼마 전까지 취업을 앞두거나 이미 기업에 들어간 사람들이 말하기 시험의 등급을 올리려고 안간 애를 쓰고 있었다. Ai 기술이 나오고도 그 하릴없는 짓을 계속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가끔 유튜브 광고에 온갖 영어 수업 광고가 구식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세상이 변한지도 모르고 아직도 계산기 대신 주판알을 튀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험 등급이 진정한 언어실력을 쌓은 후에 테스트를 거쳐 나오는 결과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사람들이 결과에만 치중하고 본질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몇 년째 똑같은 답변을 외우는 데 그치는 경우가 거의 97%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분명 아무것에도 쓸데없는 미친 짓인데, 그 미친 짓으로 돈을 벌고 낭비하는 군중집단들과 기업이 있다는 게 한심하기 짝이 없다. 말하기 실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인데, '스크립트(Script)'라는 표현을 하며, 정해진 답변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모범 답안이 있는 것처럼, 온갖 콩글리쉬적인 표현이 섞인, 어디에도 쓸데없는 빈 생각의 문구들을 달달 외우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수업에만 미쳐있는 사람들이 한심해서 이제 더 이상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언어를 가르치는 일은 하고 있지 않다. 그건 '똥개훈련'이지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한심하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내 언어도 이상하게 변해버릴 것 같은 게 더 우려가 되기 때문에, 그런 수업은 애초에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처음엔 그런 게 언어학습을 위한 교육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사람들을 집단으로 세뇌시키고 단순화해서 상부 계급의 지시를 잘 따르게 하는 일종의 길들이기 트레이닝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그런 교육? 아니 '짓거리'는 그 목적을 잘 달성하고 있는 게 맞다. 얼핏 듣기에 예전에 군대에서는 훈련의 일종으로 자기 생각을 없애고 상부의 지시와 명령을 잘 따르게 하기 위해 아무 의미 없이 땅을 파고 다시 메꾸는 식의 지시를 했다고 한다. 그것과 현재 언어 교육이랍시고 학교나 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본질이 같다고 본다. 언어를 제대로 배워서 구사하는 사람이 소수이니 뭐가 잘하는 언어의 수준인지도 모르고 다 같이 그런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GPT의 언어는 일종의 그런 언어이다. 말하기 시험의 똑같은 문제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답변을 꾸역꾸역 암기한 듯한 그런 언어 말이다. 물론 그런 언어보다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수준이 훨씬 높지만, 수준의 문제라기보다는 '말은 말인데 말이 아닌 말', 그런 느낌이 든다는 뜻이다. 어디가 꼭 틀렸다고는 할 수 없는데, 뭔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표준화된 언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인간의 언어가 표준화될 수 있을까? 언어는 문화와 사람의 경험, 취향, 습관, 이 모든 것들의 총합이다. 언어로 상대의 경험과 지적인 수준, 문화 등을 가늠할 수 있으며, 그건 한 사람의 '존재감'의 표현이다. GPT의 언어는 그런 사람 냄새가 없다. 암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성상, 앞으로는 취업이나 각종 인터뷰, 입사 지원서, 기사글 등에 천편일률적이고 테크닉적으로 꽤 잘 쓴 글이 등장할 것이다. 참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인간이 평준화된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일 것이다. 의견과, 취향과, 편견과, 아집과, 성격과, 호불호가 없는 그런 평준화된 언어를 기계로부터 빌어서 쓰는 인간이란, 이미 사고가 멈춰버린 좀비형 로봇이다. 그런 글은 저자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개성도 없고 공허할 수밖에 없다. 


나는 GPT를 좋아한다. 대단한 기술이고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GPT는 그저 기술,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뉴스 등에 마치 GPT 자체를 뭔가 인간보다 위대한 어떤 것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접하면서 한숨이 나온다. 핵폭탄처럼 기술의 본질을 악의적으로 오용하는 경우가 꼭 나오기 마련인데, 기술의 난이도만큼 그 악용의 정도가 상당히 심각할 것으로 추측된다. GPT의 글과 다른 결과물들을 분별하고 선별할 능력은 사고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을 것인데, 맞는지 틀린지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갖다 쓰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의 두뇌는 끊임없이 사고하고 배우는, 본연의 기능을 멈추면 안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 제대로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얕은 지식과 경험으로 아무거나 포장해서 내뱉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GPT를 쓰면서 내 언어가 더 날카로워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마도 평준화되고 예의 바른 GPT의 언어에 대한 반발로, 민둥민둥한 '착한 아이 언어'가 아니라, 다듬지 않은 날 것 같은 표현을 쓰면서 내가 로봇이 아님을 확인하고자 하는 방어심리가 아닐까 생각 중이다. 


PS: 2024년 1월 26일 과격한 세상의 흐름을 쫓아가는 중에 든 오늘의 생각. 글을 더 다듬고 유려하게 표현하고 싶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다. 시간도 없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든 생각이 날아가지 않게 붙잡아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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