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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Mar 22. 2024

순수 지성이 사라지는 이유

모두가 억울하다, 세상은 원래 그렇다, 그래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억울해한다. 그런 사람들은 어찌 보면 순수하게 자신의 일에 정진해 온 사람들이 많다. 다르게 말하면 세상물정을 모르고 살았다고나 할까? 세상물정을 모른 이유는 이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세상물정에 쏟을 만큼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자신의 다른 분야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그 혜택을 물질적으로 모두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특히 우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보다 눈에 보이는 것에 가치를 더 매기기 때문이다. 그 깊은 것을 볼 줄 아는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얕은 것으로 돈을 벌기 좋은 세상이지만, 그보다 깊고 어려운 공부와 지성이 필요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은 굶어 죽기 딱 좋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의료문제로 인해 의사들이 많이 억울해한다. 그들은 억울하게도 생겼다. 그리고 그건 우리들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우리들의 문제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그들만 억울한 것이 아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의료 수가제처럼 나라에서 어떤 것의 가격을 강제로 책정해 놓은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학원의 수강료 규제도 그렇고 기업의 임금 및 납품업체 단가를 후려치는 것도 그렇다. 규제가 현실적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편법이나 불법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야 하고, 그런 계산을 하면서 삶을 살아야 하는 순간 사람들은 급히 불행해진다. 완전히 투명한 사회도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너무 불투명한 사회에 사는 것도 많은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 한국 사회는 너무나 높은 수준의 알량한 영악함을 요구해서 대부분 불행하다. 편법이 더 복잡한 규제와 제도를 만들고 그 복잡한 규제를 파고들고 사는 과정에서 일의 순수한 즐거움과 깊이 있는 학문 혹은 지성을 쌓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대충 살고, 가벼운 것을 팔고, 생각이 없이 단순해야 행복할 수 있는 나라가 된 듯하다. 아니, 그건 행복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은 타인의 상황을 공감하지 못하고 남이 행복하면 끌어내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불행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억울한 농부들은 지천에 널려 계절마다 풍성히 사 먹었던 제철 딸기에도 과대 포장을 해서 딸기가 뭐나 되는 것처럼 만들어버렸고, 정작 필요한 필수의료는 앞으로는 극소수만 대단한 돈을 지불하고 받을지도 모르며, 진짜 중요하고 깊은 것을 찾으려면 어디에도 찾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제대로 하는 무언가를 원하면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돈이 안되니 더 이상 그렇게 일을 하지 않아요, 있긴 있겠지만, 찾기 힘들걸요?"라고 말한다. 결국 사람들은 쓰레기 화학약품에 뒤덮여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삶을 연명하다가 오지 않을 행복한 때를 기다리다가 불행히 삶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진짜가 없다. 진짜는 굶어 죽기 딱 좋은 세상이다. 온 천지에 가짜가 많다. 경박하고 알량해서 구토가 난다.


아침에 누군가의 음성메시지를 받았다. 직접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음성 편지를 써서 내게 보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일상에서 쌓인 마음의 어두운 찌꺼기들이 녹아내렸다. 내 생일은 나도 기억 못 한다. 나는 편지를 내게 보낸 그녀의 존재도 잠시 잊고 있었다. 생일은 그저 인생의 첫날 한 번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나를 감동시켰다. 살면서 진짜인 것과 순수함이 주는 감동과 행복이 무엇인지, 많은 순간 경험하며 살기를 바란다. 과대포장 없는 누군가의 마음 덕분에 나도 그런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살기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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