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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Jun 06. 2024

운명이 나를 따르게 하는 법

나는 운명과의 갑을관계도 싫다

운명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운명이 삶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있다고 인식을 한다. 하지만 운명의 갑질에서 벗어나 운명이 나를 따르게 하는 방법도 있는 듯하다.


7월 있을 공연을 위한 미팅 후에 근처에 있는 무용 스튜디오에서 오래간만에 몸을 풀 겸 발레 수업을 하나 듣기로 했다. 한적한 낮 시간이라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는데, 그룹을 지어 주어진 동작 순서를 하는 과정에서 무용수가 자신의 순서를 놓쳐서 음악만 흐르고 있는 때가 있었다. 가끔 여러 가지 이유로, 계속해서 뒤에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나와서 다음의 음악을 동작으로 채워야 하는 경우에, 이렇게 수업의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발생한다. 대부분은 소심한 무용수들이 자신이 없어 갈까 말까를 망설이며, 혹은 음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새로운 음악이 반복될 것을 기다리며 주춤하는 간발의 순간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추후 그 강사는 주춤한 무용수에게, "갈까 말까 할 때에는 그냥 가는 거예요. 혹여라도 음악이 끊길까 해서 못하더라도 누군가 하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음악을 다시 틀어 주면 되니까 그럴 땐 그냥 하면 돼요"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그 강사의 말이 신이 내게 던지는 계시처럼 들렸다. 음악과 수업의 흐름을 쥐고 있는 게 강사라면, 삶의 흐름을 연주하는 리모컨을 쥐고 있는 건 운명 혹은 신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음악이 끊겼더라도 vs. 삶의 흐름과 운이 끊겼더라도, 만일 그 무용수가 자신의 동작이 끝나지 않았음을 표현하며 거의 끊긴 음악에 서투른 한 동작을 내디딘다면 vs. 운이 다한 삶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한 발을 내 힘으로 내딛는 용기라도 보여준다면, 어떤 강사는 뒤돌아 보이는 한 사람의 무용수를 위해 다시 음악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거나 vs. 돌아서 등을 보인 신은 다시 그 운명의 에너지를 자신의 삶의 행로를 향해 힘겹게 한 발을 내딛는 한 사람의 마음을 보고 다시 힘을 불어넣어 줄지 모른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손해 보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음악이 다시 흐르지 않은 채 뻘쭘하게 그 무용수의 한 동작이 끝날지라도 아무도 그 수업에서 그 한 사람의 노력을 비웃지 않을 것이며 vs.  운명이 나의 내딛는 걸음에 힘을 실어주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의미 없다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강사가 음악의 버튼을 다시 눌러 더 긴 음악이 흘러나오게 한다면 vs . 운명이 다시 멈추지 않는 내 삶의 행보를 비춰준다면, 그때는 그 무용수와 그 사람이 수업과 삶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이다. 하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옛말이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뻔한 상황에서 뻔하지 않은 시도를 볼 때, 이전의 힘보다 더 많은 것을 실어 주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인간인 내가 그렇다면 신이나 운명도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몇 달 전부터 9월에 미국에 잠깐 여행을 가고 싶은 이유가 생겼는데, 비용과 일정 때문에 갈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었다. 비행기표와 여비와 지금 있는 작업실이 비어있을 것을 생각하면 잠깐 여행을 다녀온다는 것이 꽤 복잡하고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비행기표는 틈틈이 확인했는데 아무리 저렴하게 내려간 날이라도 150만 원 전후였고, 대부분 최소 가격이 200만 원을 훌쩍 넘어서 시작했다. 6월이 되니 그나마도 온데간데없고 대부분 200만 원 이상을 호가했다. 이런 걸 자주 확인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냥 이번주 내로 150만 원 전후의 티켓이 다시 나오면 그대로 구매를 하고 여행을 확정 지으리라 혼자서 내기를 했다. 내심 포기를 하고 있던 것이다. 한 주가 지나니 다시 150만 원대의 티켓이 보였고 이렇게 라도 여행을 가자고 금액을 결제하려는데, 그래도 자꾸 망설여져서 결국은 그대로 구매창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속으로 내가 믿는 존재에게 투정을 부리듯 기도했다. "나는 미국에 정말 가고 싶어요, 그렇지만 이렇게는 내가 가는 게 맞는지 결정을 못하겠어요. 만일 내가 가야 하는 게 맞다면 더 확실하게 사인을 보내주세요. 나를 더 확 가야 하는 쪽으로 밀어달란 말이에요!"라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이미 내 마음은 거의 포기상태였는데, 미국을 가지 않겠다고 결정한 이후로도 일이 심난하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영부영 작업실에 있다가 거의 11시가 되어 집으로 가려고 컴퓨터를 끄려는데 마지막 한 번만 더 항공권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딱 한 번만 보는데 그리 시간을 낭비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불과 네다섯 시간 전까지도 150여만 원이 최저가였던 같은 항공권이 백만 원 정도로 내려가 있었다. 나는 혹시 천만 원으로 오른 걸 잘못 본 줄 알고 정말 눈을 비비고 숫자의 자릿수를 세어 보았는데 분명 백만 팔천 원인가였다. 발권 수수료를 합해도 백일만 원인가였다. 정황상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나는 신이 나를 가라는 쪽으로 확 밀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체 없이 결제를 했다. 돈을 쓰고도 기분이 좋다는 건 이런 때인 듯싶었다.


가끔 인생에서 운명의 흐름에 배짱을 튕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어떤 결정의 한계점에서 마지막 한 번의 버튼에 행운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고요! 그렇지만 이런 나를 만든 것도 당신이니, 내가 그대로 포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건 당신도 원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이젠 당신이 답을 달라고요. 난 못 알아듣겠으니 좀 더 뚜렷하게 말이에요!"


나는 내가 믿는 신에게 여비의 일부를 캐시백 바우처로 보조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왕 여비가 든다면 며칠 안 되는 여정에 항공권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보다는 여행 중에 필요한 여러 것들을 하는데 유동적으로 경비를 쓰는 편이 덜 아깝다고 생각하는데, 마치 그 신이 "여비는 똑같이 들 테지만, 옜다! 항공권 금액 줄어든 만큼 너한테 쓰라고 바우처로 내 줄 게! 그럼 좀 낫지? 됐지?" 그러는 것 같았다. 기숙사 비용을 내면 일부는 다시 먹고 싶은 걸 사 먹으라고 바우처카드로 돌려주는 것처럼, 같은 여행 경비 안에서 신이 내게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바우처를 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또 기분이 좋아서 어제부터 계속 실실거리는 중이다. 이걸로 미국 친구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공항에서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도 맘껏 사먹을 것이다. 나는 가끔 신의 음악에 내가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신이 내 삶에 맞추어 음악을 틀도록 하면서 살고 싶다. 신이 속으로는 "저, 저, 저것이! 못살아!" 하면서도 나를 기특해할 것도 같다. 나는 신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갑을관계'는 싫기 때문이다. 어차피 신이 나를 만들었다면, 나도 신이고 신도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땡큐요!


-나의 개똥 운명 철학. 개똥이든 아니든 하루 종일 기분 좋으면 된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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