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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May 12. 2024

삶의 역전

우리 엄마는 내게 별수국 화분을 사주었지!

내가 자랄 때 대부분의 시간들 중에서 나의 부모는 가장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 난 가족 얘기를 거의 한 적이 없고, 친구도 사귀지 않았다. 아니 사귀지 못했다. 내 마음엔 두꺼운 철문이 있었다. 다들 나의 상황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족은 내게 열등감의 근원이었다. 항상 다른 친구들의 가족은 더 화복하고 여유로워 보였으며, 생일, 가정의 달과 같이, 늘 일반적인 삶의 소소한 이벤트를 달력의 여느 검은 날들과 진배없이 보냈던 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나의 별난 가족은 그 어떤 것도 일반적인 삶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들과 거리가 멀어서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공유할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기도 전에 나는 미국으로 떠날 생각을 했고, 집이 쫄딱 망한 어느 날 빈 가방을 가지고 도망치듯이 홀로 비행기를 타고 그나마 장학생으로 미국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미국에 도착한 날 나를 픽업하러 온 대학교 담당자는 달랑 빈 가방 하나를 가지고 온 나를 보고 놀라는 표정이었다. 미국은 기본 생활비가 저렴해서 대단한 명품을 사지 않는 한, 적은 돈으로도 예쁜 옷과 넉넉한 먹을거리는 마음껏 살 수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그 도시에서도 비싸기로 유명한 사립대학이라서 기숙사에서도 요리사들이 직접 요리를 해주는 것들이 많았고, 온갖 좋은 음식을 대부분 거기에서 맛보았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힘들 가족들 생각이 나서, 나 혼자 이 엄청난 음식들을 먹어도 되는지 며칠간은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에 있을 때 나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나의 미국인 친구가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적인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주변에서 많은 도움의 타이밍이 있었다. 그때 무일푼으로 어떻게 거기에 갈 생각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기적과 같은 우연이 많이 일어났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래서 미국에 늘 빚진 기분이고, 늘 미국 편에 서 있게 된다. 이후에도 미국은 내게 해준 것이 많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미국을 사랑하고,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들도 대부분 미국에 있다. 미국은 나를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바라보고, 내면의 나로서 살 수 있게 해 준 곳이기 때문에 나의 제2의 고향이다. 나는 내가 외향적 측면이 있는지도 거기에서 처음 알았고, 내가 공부를 꽤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미국에서 나는 꽤 똑똑하고 잘난 학생이었다.


사정 상 다시 한국에 돌아오니, 가족들에게서 벗어난 그 열등감이 다시 내 마음 한 편에 자리 잡았고,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그 부분은 내 마음의 깊은 씽크홀처럼 도무지 채워지지가 않았다. 늘 남의 가족과 남의 부모가 우리 가족과 나의 부모보다 괜찮아 보였다. 사람들이 내게 다가오려고 하면 늘 그 씽크홀 근방에서 사람들에게 울타리를 쳤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역전이 일어났다. 어렸을 때 내가 부러워했던 남의 집 부모들은 이제 많이들 세상에 없다. 나의 두 부모는 아직도 건재한다. 나는 생일과 어린이날 같은 것을 챙겨본 적도, 가족 중 누가 기억해 준 적도, 선물이라는 민망하고 남사스러운 것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젠 긴 시련과 인내의 시간을 버텨 겨우 여유로워진 나의 부모, 특히 나의 엄마는 내게 꽃화분도 사주고 어린이날이라고 다 큰 자식들에게 용돈을 쥐어준다.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받았을 모든 자질구레한 선물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것들을 선물로 난생처음 하나 둘 받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 나의 부모는 늘 어느 집 부모보다 못나 보이고 척박해 보였지만, 지금은 많은 집 자식들이 부모들 때문에 경제적으로 고심할 때 나의 부모는 대부분의 부모들보다는 여유로워졌다. 이제는 아주 조금은 내가 어렸을 때 일반적이라고 생각했던 가족들과 부모의 모습을 조금은 닮아가는 일상이 내 삶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별거 아니었는데...... 물론 자식이 자랄 때 자양분이 되어 주는 부모와 비실거리며 자란 자식들에게 뒤늦게 주는 자양분은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은 우리 부모가 나름의 역전승을 거둔 것 같다. 어렸을 때 힘든 게 더 나은 것일까, 어렸을 때 여유롭고 나중에 힘든 게 나은 것일까. 나는 나중이 지금의 현재이니까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어휴, 다행이다'라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혹자의 말대로 인생에는 희노애락의 총량이 있는 듯하다. 앞으로 그럼 나는 희락의 총량이 남보다 더 남은 것일까? 오늘 엄마가 사준 별수국 화분을 보며 참 행복한 지금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간 혹독한 시간의 총량을 잘 견뎌온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잘 지내왔다, 잘 지내왔다. 엄마에게 별수국 화분을 받는 날도 오다니. 내 마음의 씽크홀이 반쯤은 메워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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