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은 '나 닮았다'라는 말이다. 작품을 만들 때 꼭 무엇을 목표로 창작을 하지는 않지만, 마침표를 찍고 나면 보는 사람들이 먼저 '나 닮았다'라는 말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면, "It's you!", "이거 선생님 그린 거죠?", "이거 딱 너이네?" 뭐 그런 것들이다. 나는 그제야 빙그레 웃는다. 나를 닮으려고 굳이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그런 피드백을 주면 작품이 제대로 완결되는 느낌이 들고, 나 자신에게 진실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내 작품들이 여전히 나를 닮아 다행이다.
사람들은 어떤 것이 나라는 존재와 닮아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인지하는 방식이 있는 것이다. '나'가 무엇인가? 나는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그런 '나'의 다양한 인지방식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것이 즐겁다. 심지어는 인간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는 어떤 타인이나 다른 정의 내릴 수 없는 동물들을 그리려 시도했는데도 불구하고, 보는 이들이 나라고 할 때에는 난감할 때도 있다. 나는 열이 받거나 기분이 나쁜 사람들을 대할 때 그것을 작품 안에 코드처럼 심어놓고 혼자 즐거워하는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게 날 닮았다고 하면, 결국은 미워하려는 대상을 사랑해야 하니 난감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하는 수 없이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놓고 보면 한 편의 화풀이같이 시작했어도 그 안에 귀엽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 듯하다. 무척 무섭게 분노를 표현한 그림에서도 다행인 것은 보는 이들이 이를 두렵거나 기피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웃기다'라고 반응하는 것이 좀 의아하기는 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상에서도 열이 받아 구시렁대고 화를 내는 가운데에서도 상대는 피식 웃거나, 난데없이 사탕 하나를 주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어봐도, 그냥 사탕 하나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어제 아침 오래간만에 연락이 온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두 사람과의 긴 전화 통화 끝에 오전 내내 괜스레 시간만 낭비했다고 생각하고 작업실에 와서 그림을 그렸댔는데, 친한 친구에게 그림을 보여주니 친구가 깔깔거리면서 또 '날 닮았다'라고 말한다. 나는 열이 받아서 내 불편한 마음을 그림으로 퍽퍽 칠해버렸는데, 친구가 우습다고 하니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따라 웃는다. 친구 말로는 악어보다 더 강한 이빨 때문에 한 번 물면 놓지도 않게 생겼다고 한다. 교정치료 때문에 내 몸에서도 이에 대해 더 집중을 하고 있는 시기라 그런지 그림에 이와 연관된 어떤 것이 나도 모르게 투영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