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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Sep 02. 2024

타조가 날려면

한계를 넘는다는 것

나는 타조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 나는 내가 보지 않는 것도 많이 그리는 편이다. 특히 동물들은 그렇다. 이 동물들은 내 머릿속의 상상에 존재한다. 그 동물이 실제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생물학적 특징을 갖는지 세세하게 모두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면 미키마우스도 도날드덕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창작물이란 그렇다. 어느 정도의 허용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자유로운 예술창작을 하는 이 일이 좋다.


왜 타조를 그리는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그렸던 타조 드로잉을 캔버스로 옮겨 새롭게 그리려는데 미국에 있는 한 친구와 안 좋은 일이 생겼다.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가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며, 사과도 하지 않고 변명만 했다. 실제로 금전적인 손해도 약간 있었다. 원래 친구라고 부르기에도 어색한 지인보다는 조금 더 가까워지는 사이였는데, 역시나 순수한 친구관계를 갖기에는 버거운 사람이었나 보다. 화가 나니까 원래는 예쁘고 얌전했던 분홍색 타조가 머릿속에 있었는데 그리다 보니 우악스럽고 거친 타조가 나와버렸다. 그 와중에 다른 한 친구와 통화를 할 일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나를 위로하며 타조가 화가 나면 침을 뱉는데 그 냄새가 고약하다는 재밌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도 모르게 통화를 하면서 그리는 그림의 배경이 분노에 찬 타조의 기세로 벌겋게 타오르고, 얌전히 담겨있던 타조알은 타조 둥지 밖으로 다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 어쩌다 그리게 된 사람모양 위로 타조가 침을 '퉷퉷' 뱉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서열 1위의 오래된 친구는 그림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나는 다른 친구 때문에 예뻐야 할 내 작품이 망했다고 했는데, 나의 서열 1위 친구는 '분노의 타조'가 느껴진다고 그림이 재밌고 맘에 든다고 했다. 그래서 망했나 싶었는데 그냥 간직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내 그림을 좋아하면 나는 그걸로 대부분 만족한다. 속은 시원했다.


그러고 나서 마음이 좀 정화가 되어 다시 원래 그리려고 했던 이쁜 분홍색 타조를 그리고 싶어서 붓을 들었는데, 이번엔 분노를 넘어서서 내가 더 힘을 내서 잘 살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는 다짐이 들면서 비장한 기분이 올라왔다. 얌전하려고 했던 타조의 다리는 힘이 들어가고,  침을 튀겨가며 온 힘을 다하고 있는 힘찬 타조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타조를 날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공중에 떠 있게 만들었다. 그게 땅으로부터 10 센티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얼마나 날았는지보다, 원래 날 수 없는 새로 알려진 타조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서 땅으로부터 단 몇 센티라도 펄쩍 뛰어올라 날으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싶었다. 날고 있는 모습은 대부분 희망차고 우아하게 그려질지 모르지만, 나의 타조는 하나의 존재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할 때 마지막 한 방울의 노력까지 소진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실제로는 거칠고 치열한 모습일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매사에 이 정도의 죽을힘을 다해야 그다음의 단계로 성장하고 한 걸음의 비행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땅을 밟고 있는 우아한 타조보다 괴팍하고 우악스러워 보여도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뛰어넘으려는 이 힘찬 타조의 모습이 또 내 모습처럼 보였다. 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날기를 포기하지 않고 그래도 땅 위에 두 발이 띄워진 모습의 타조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내 서열 1위 친구는 이 타조는 별로 공감하지 않았으나, 다른 좋은 친구는 이 타조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이 그림도 좋아하기로 했다. 나는 욕심이 많지만, 사실 욕심이 없기도 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한 두 명이 내 그림을 좋아하는 것으로 충분히 즐겁다. 거기까지가 내가 날기로 한 으로부터 10센티의 비행이다. 더 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그 10센티의 비행도 입에 침을 튀길 정도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내 그림 by 이영선. 분노의 타조와 날으는 타조. 캔버스위 아크릴 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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