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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선 Sep 02. 2024

고슴도치, 그거 나잖아?

너는?

내 머릿속에서 사람들이 고슴도치로 보일 때가 많았다. 성을 내면서 가시를 곤두세우고 어떻게 하면 타인에 상처를 입힐까 눈을 부라리며 공격의 태세를 갖추고 언제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 말이다. 어떤 미팅에서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이 전부 그런 고슴도치 같아 보였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몰래 빈 메모장에 낙서를 하며 스스로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 그린 게 최초의 고슴도치의 스케치 드로잉이다. 팔다리가 마구 아무렇게나 달린 미친 고슴도치!


나중에 사람들이 내 고슴도치 드로잉을 보고 "이거 너 그린거지?"라며 웃었다. 나는 본인들을 보고 그린 그림을 보고 나라고 한 게 어이가 없었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어, 그래, 그렇지 뭐." '그런데 내가 왜 고슴도치야, 지들이 고슴도치들이면서!'


최근에 내 동화 <바늘 빠진 고슴도치>에 등장하는 삽화를 직접 그리려 그런 고슴도치가 있는지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한 유튜브 방송에서 고슴도치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고슴도치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그래서 동그랗고 가시가 달렸다는 사실 밖에 몰랐는데, 유튜버가 설명하는 고슴도치의 특징이 꼭 나랑 닮아 있었다. 고슴도치라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면 나에 대해 누가 묘사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예를 들면, 하루 종일 잠자는 것을 좋아한다든가, 야행성이라는 것, 예민하다는 것, 혼자 내버려 두었을 때 가장 잘 자란다는 것, 독립적이라는 것, 등이다. '아, 이거 나였네!' 유튜버가 마지막에 덧붙이기를, 그렇지만 그런 일면들 때문에 고슴도치가 매력적이라고 했고, 이런 걸 감당할 사람들만 고슴도치를 키워도 좋다고 했다.


나는 고슴도치가 급격히 좋아졌다. "그래, 나 예민하고, 만만하지 않다고! 그래도 나 매력적이야!" 참조로 실제로 바늘 빠진 고슴도치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고슴도치가 스트레스를 받아 바늘이 몽땅 빠져 있었는데, 역시 고슴도치는 바늘이 있어야 제맛인 듯했다.


내 그림 by 이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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