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젊음과 행복은 나의 불행?
여수에 있는 한 식당의 불친절이 화두에 올랐다. 사람들은 관광지의 불친절 문제라고 돌려서 이야기하지만, 이건 친절이냐 불친절이냐의 문제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는 세대차이, 그리고 이와 결부된 문화적 차이를 나타낸다. 한마디로, '젊고 예쁘고 자유로운 여성이 혼자 식당에 와서 핸드폰을 켜고 혼자 뭐라고 중얼거렸을 그 모습이 구세대 식당 종사자들에게는 그냥 꼴 보기 싫고 익숙지 않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싫어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것을 상대에게 표현하는 방식은 책임이 따른다.
80대의 고령의 여성이 주인인 식당과 거기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종업원들도 마찬가지로 고령의 나이일 것이다. 고된 격동의 시대와 가족 간의 지지고 볶는 삶을 살아왔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의 행복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들과 같은 여성이면서도 자유롭게 혼자서 여행을 다니는 젊고 예쁜 여성은 은근한 혐오와 질시의 표적이 되기가 쉽다.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불행한 사람들이 집단적 공격성을 표출해도 괜찮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이혼율과 비혼의 증가라는 객관적 수치로도 가늠할 수 있듯이,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는 삶이 그다지 달콤하고 행복하지 않았을 가부장적인 나라에서, 그간에 쌓인 삶의 피로도와 불만족을 결혼을 하지 않고 홀로 다니는 여성이라는, 그들의 시각에서 보이는 약자에게 은근히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그 여성이 그 지역사회에 속하지 않은 경우에는 더 만만히 보였을 것이다. 그건 증명할 수 없어도, 싱글의 화려하고 행복한 여성의 삶을 살아왔다면 대부분은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식당의 연로한 주인과 종업원들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불친절하지 않거나 어쩌면 시골의 할머니처럼 정이 깊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르는 타인들을 깊은 속내까지 이해할 여유가 없다. 그저 오래 보지 않을 사람들에게, 특히나 타지에서 잠시 머무르는 약자처럼 보이는 타인에게 불친절하게 그들의 피곤한 삶에서 쌓인 불만족을 털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해당 유튜버가 유튜버라는 새로운 타이틀과 핸드폰 영상이라는 현세대적 방법으로 자신의 불편감을 드러낸 건 그를 위해서도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도 건강한 일이었다. 이런 모욕적인 언행을 처벌할 수 있는 사회적인 혹은 법적인 보호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부러움과 질시에서 그랬든, 세대와 문화차이에서 그랬든 이건 타인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정신적 가해를 하는 명백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 생각조차도 폭력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