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왜 생겼을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두려움이란 감정은 어떤 것을 너무 많이 알아서도 생기고, 아무것도 모를 때에도 생기는 것 같다. 치과나 병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두려움이 모두 작동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여러 감각이 매우 예민하다. 결국 병원이란 내게 그냥 두려운 무엇이다.
나는 교정치료를 실제로 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처음 상담 시에도 교정치료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새롭고 낯선 것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이런 두려움은 싫은 감정을 낳게 한다. 나도 어떤 일상의 문맥에서는 꽤나 모험적이고 새로운 것을 즐겨하는 도전적인 사람이지만, 병원은 내 신체에 낯 선 기구로 물리적 통증을 가할 수도 있다는 원초적인 방어본능이 작용하는 듯하다. 또한 치료란 내 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보호방법이라는 것에 내 두뇌가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치과 진료는 치료 기구 자체도 딱딱하고 무섭게 생긴 데다가, 온갖 예민한 감각과 인지를 관할하는 두뇌를 담은 머리통을 통제가 전혀 가능하지 않도록 누워서 고정시킨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누워있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공격성이 최소화되어 신체가 가장 나약한 상태로 있게 되는 자세가 아닐까? 사람도 같이 있는 상대와 가장 편안한 환경에서라야 바닥에 드러눕는 행동을 한다.
동물들도 상대 동물에 대한 항복 혹은 복종을 표시하거나, 상대에 대한 저항감이 없을 때 배를 드러내며 눕는 행동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는 거북이나 등이 딱딱한 벌레들은 뒤집어 놓으면 아예 스스로 일어나지 못해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치과에서 누워있는 자세는 당연히 편해서 그런 게 아니라, 무력화된 상태로 두려움에 놓여있게 되는 자세이다. 뿐만 아니라 '구강'이라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부감을 일으키는 기계 소리에 의존하며 견뎌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각의 억압에서 오는 공포감이 더욱 심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입이라는 곳 자체도 민감한 감각이 모여있는 곳이 아닌가? 특히 청각이 민감한 나는 귀와 가까운 곳에 있는 가장 예민한 더듬이가 건드려지는 것처럼 신경이 곤두선다.
병원 의료진을 생각해 보면 이들도 처음부터 신체에 물리적 방법을 가해서 몸을 치료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치료가 몸에 안전한 방식으로 더 나은 상태를 이끌어낸다는 ‘앎’이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의료가 환자보다는 친숙해졌을 것이다.
비의료인은 이런 오랜 기간에 거친 ‘앎’과 ‘익숙함’의 상태가 거의 축적된 바가 없으므로, 우선은 병원이 두렵고, 그 두려움을 긍정적인 것으로 변환하기 위해 어떤 증상이 닥칠 때 비로소 나름의 ‘앎’이라는 과정을 임시방편적으로라도 찾게 된다. ‘앎’의 깊이와 시간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날 때 이 둘의 마음속에는 극단적인 두 종류의 생각이 대립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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