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두서없는 조각 2

하이힐, 붉은 입술, 짙은 마스카라

by 이영선

그녀는 늘 하이힐을 신고

방금 파티장에 가도 좋을 옷차림으로 학교에 다녔다.

마치 신부화장을 마친 듯한 인조 속눈썹에 진한 마스카라

늘 방금 미용실에 다녀온 듯한 굵은 웨이브와 올림머리
빈틈없이 허리춤에 챙겨 넣은 블라우스와 타이트한 스커트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탈 때에도

남산타워를 향해 올라갈 때에도

그녀는 늘 스커트와 하이힐을 고집했다.

그녀는 하이힐이 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정말 편해 보였다.

그녀의 하이힐은 별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녀의 차림새는 그녀에겐 하나도 불편한 것이 아니었지만

보는 이들에겐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것이었다.


나는 내 신체에 불편할 것이라고 해서

그녀의 존재를 불편해하거나

그녀를 미워한다거나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그저 흥미로웠다.

짧은 아침 시간에 어떻게 그런 차림새를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해하지 않고

당당하게 보수적인 도시의 캠퍼스를 거닐 수 있는지

궁금하고도 부러웠다.


그녀의 별다름은 거리를 두면서도

바라보게 만드는,

그리고 다가가고 싶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와 그녀가 닮았다고 했다.

전혀 다른 차림새였지만,

뭔가 교묘히 닮아있었고
사람들이 내게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긴 했다.


‘눈에는 가장 먼저 띄었는데,

가까이 가기는 그렇고

멀리서 바라만 보고 싶은 스타일’이라고 했다.


졸업할 때 사람들이 말하길,

내 별명은 한 때

‘올라가지 못할 나무’였다고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내 주변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내게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건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작품에도

내 스튜디오에도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한다.

내게 전화를 해서 스튜디오 안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은

매우 큰 결심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대놓고 비난했다.

마치 그럴 자격이라도 있는 듯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갑자기 술에 취해

‘너의 부모님은 한국이 싫어서 떠난 거야’라는

‘너는 한국인이면서 영어도 못하는 게 잘못’이라는

그녀도 알지 못하는 말들을 길에서 카페에서 내뱉었으며

그녀의 차림새가 ‘술집여자 같다’는 말도 했다.


실제로 그녀의 차림새는 당시 한국 사람들의 눈에는

나이 든 다방 아줌마처럼 보이긴 했다.

그녀는 소위 키가 크거나, 비율이 좋거나, 얼굴이 작거나

빼빼 마르지도 않았지만

그녀가 신기했던 이유는

그녀는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었으며

미국에서는 모델로 활동했다고도 했다.


잡지에 나오는 모델들은 죄다 키가 크고

마르고 마론인형처럼 생겼었는데

나도 그녀가 하는 말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녀가 좋았다.


그녀는 누가 보아도 여기에 속하지 않았다.

자칫 촌스럽게도 보였던 그녀의 차림새에 비해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이영선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춤추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통합창작예술가. 장르와 경계를 녹여내어 없던 세상을 만들고 확장하는 자. 그 세상의 이름은 이영선입니다.

11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두서없는 조각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