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너무 많아

내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본 날

by 이영선

나는 내 이름이 장르이고, 나의 세계에 대한 이름이고, 내가 앞으로 발전시켜 나갈 나의 보이지 않는 세계의 국가명이다.


내 이름이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살면서 같은 반이나 가까이 교류하는 집단 안에서는 같은 이름을 마주친 적이 없었고, 흔한 듯 하지만, 한문으로는 빛을 비추고 베풀라는 의미를 가진, 흔하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얼마 전 방문한 사주명리학자가 내가 큰 태양과 같은 사주라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와 내 이름이 관련이 있는 거라고 혼자서 해석을 해보기도 했다.


영문으로도 이 이름은 마음에 든다. 독특한 조합이지만, 분명 영어에 있는 단어들이고, 그 뜻 또한 '태양', 그것도 '젊은'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들이라 외국에서도 그대로 사용했다. 한 때 나도 흔한 영문 이름으로 바꿀까 했는데, 오히려 외국에서는 고유한 이름을 왜 바꾸냐고 해서 그대로 쓰고 있다. 발음의 방식만 다를 뿐, 이중 언어로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글로벌한 이름처럼 생각했다.


또한 나는 내 이름이 중립적인 느낌이 들어 좋았다. 내 이름은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않고 쓰이며, 느낌도 들었을 땐 별 특별하게 어딘가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느낌을 준다. 그런데 바로 그런 점이 또 단점처럼 느껴졌다. 뭔가 어중간한 삶,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딱히 기억나지도 않는 무난한 느낌이 들어서 내 존재도 마치 그런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이름을 하나의 장르로, 나름의 존재를 드러내며 나도 독특한 예술가로 살고 싶은데, 내 삶은 그러한 것 같으나 내 이름은 아무도 잘 기억하지 않는다. 그게 하나의 보호막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이름은 독특한 게 시각적으로도 동그라미와 선이 중립적으로 놓여 있다. 이런 깔끔한 시각적 구성이 또한 맘에 들긴 하지만, 요즘 들어 가장 고민을 하게 되는 부분이 사회 각 분야에 위아래를 할 것 없이 동명이인의 남녀가 동시대에 공존한다는 것이다. 한 덩어리의 운명처럼, 그간 그렇게 많은 작품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색을 하면 온갖 정보가 뒤엉켜서 나의 존재는 나만 아는 구체적인 설명을 넣어야 겨우 일부만 검색이 된다는 것이다. 신기한 건 나름 제 자리에서 다들 빛을 내고 살고는 있지만, 딱히 이 이름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었느냐 하면, 역사적으로도 없던 것 같다. 나를 중립이라는 평범함의 테두리에 옭아매는 이름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에 장단점이 있겠지만, 평범함이 어떤 보호막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답답한 울타리처럼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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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통합창작예술가. 장르와 경계를 녹여내어 없던 세상을 만들고 확장하는 자. 그 세상의 이름은 이영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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