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를 선 수녀

by 이영선

햇빛도 닿지 않는 아주 깊은 바닷속에

검은 그림자 같은 수녀가 산다.

어둠 속에서도 엷게 빛나는 진주 목걸이를 하고

무겁게 가라앉은 물결 속에 우뚝 솟은 성곽에 올라

부드러운 검은 드레스 자락을 이끌며

가녀린 실루엣과도 같은 몸짓으로

거대한 종소리를 심연에 퍼뜨린다.


가라앉은 영혼들이 그녀를 물 밖으로 떠올리면

햇살에 검푸른 빛을 내며 점점 부풀어 오르는 그녀의 치맛자락 속으로

꽃들이 한가득 자라난다.


수녀는 물구나무를 선다.

마구마구 자라난 꽃들이 그녀의 어깨와 얼굴을 뒤덮고

그녀는 잠시 여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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