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다!
큰딸의 심부름으로 오랜만에 와본 대형서점에서 잠시 나만의 시간을 즐기려고 구경하던 중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순간의 이끌림으로 구매한 책은 오랜 고심 끝에 선택한 책 보다 더 빨리 읽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전에 읽었던 오타 하지메의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유호현의 <이기적 직원들이 만드는 최고의 회사>의 내용과 유사할 것이라는 반가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저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무대 공포증 및 발표불안 극복 방안을 연구하여 국내에 아직 정착되지 않은 퍼포먼스 심리학(performance psychology)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저자는 그동안의 수많은 상담 치료 과정에서 현대 사회는 지나치게 성과주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고, 사람들은 완벽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스스로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비율의 차이만 있을 뿐 아래 네 가지 유형의 완벽주의자 성향은 누구나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 나도 그런가?”라는 물음표가 “아! 나도 그렇구나!”라는 느낌표로 다가오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네 가지 유형의 완벽주의자
이쯤 되면 독자들은 완벽주의자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일반적으로 완벽주의자라 하면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빈틈없이 일을 처리해 목표했던 결과를 기한 내에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래서, ‘당신은 완벽주의인가요?’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들일 거로 생각하고 읽었다가 점점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어떤 유형의 완벽주의자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여기서 또 한 번 독서는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반성적 성찰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위대한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네 가지 유형의 완벽주의자가 있다는 것을 그동안의 치료 경험과 연구를 통해 밝혀내고 이를 회피형, 감독형, 자책형, 안정형 완벽주의자로 정의하고 있다. 특히, 우리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지만, 위 네 가지 유형의 완벽주의 성향은 어느 정도 다 가지고 있다. 다만, 그 비율의 차이만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실, 책 표지에 적힌 〝잘하고 싶어 시작을 망설이는....〞이라는 표현이 지금 내 상황을 너무 잘 나타내 주고 있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지금 내 상황처럼 잘하고 싶지만 잘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서고, 주변에서는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며 격려해주지만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저자는 회피형(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부른다.
감독형 완벽주의자는 누구나 열심히 하면 비현실적인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유형으로 그 기준을 타인에게도 요구하는 성향이 있다. 직장 상사로 만나면 아주 피곤한 유형의 완벽주의자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학부모들 대부분이 감독형 완벽주의자에 속할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완벽주의자가 되라고 내면화시키는 부모님들에게 저자는 최고의 양육이 무엇인지 묵직하게 알려준다. “최고의 양육은 자녀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좌절을 안전한 환경 안에서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갑자기 박노해 시인의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가 떠오른다.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중 첫 번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물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자책형 완벽주의자는 타인의 기준을 자기 기준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의 사람들이다. 늘 자기 자신은 뒤처져 있고, 남들보다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며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유형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우울, 불안, 두려움에 늘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감독형 완벽주의자 성향의 학부모들과 직장 상사로 인해 자책형 완벽주의자 성향의 학생과 부하들이 생긴 건 아닐까? 우리는 늘 경쟁과 비교 그리고 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새 장 속에 갇힌 새처럼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가장 완벽한 완벽주의자는 안정형 완벽주의자이다. ‘건강한 완벽주의자’ 또는 ‘최적주의자’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며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이를 한 단계씩 이루며 성장해 가는 유형이다. 누가 봐도 이상적인 유형의 완벽주의자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이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의 사다리를 걷어차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찾아오지 않는다. 시도를 해봤기 때문에, 그리고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다음에 좀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법이다.
# 완벽주의 극복하기
완벽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자신이 완벽주의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참으로 쉽고 당연한 처방전 같지만 어쩌면 가장 어려운 방법이다. 생각보다 인간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완벽주의자라는 것을 인정하기 전에 인정해야 하는 전제가 있다. 즉,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완벽주의에 대한 인식과 완벽주의자에 대한 평가에서 벗어나야 한다.
완벽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달성 불가능한 목표와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그 원인을 자신의 능력과 노력 탓으로 돌리는 악순환이 생긴다. 실제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불일치 수준이 적당할 경우 자기를 발전시키는 데 긍정적 영향으로 작용하지만, 자기 불일치 수준이 심해지면 오히려 부정적 감정에 압도되어 우울, 불안, 번아웃 등으로 일상생활을 이어가기 힘들어진다고 한다..
완벽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세 번째 방법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용기를 내서 과감하게 시도를 했는데, 힘들게 내린 결정이니 그만큼 기대를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만큼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경험을 연속해서 하다 보면 오히려 시도 자체가 두려워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내가 보기에는 혼자 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인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시도하거나 주변의 도움을 받는다면 여러 번의 시도와 반복된 실패는 절대 좌절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완벽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큰 바람이 있다면, 개인적 차원의 이러한 긍정적 지지와 함께하는 도전이 우리 조직의 조직문화로 서서히 스며들었으면 하는 것이다.
# 마무리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로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전문 작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의사의 소견을 듣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꾸미지 않은 담백한 표현들 때문에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며 더 몰입하게 만드는 묘함이 있다. 아마도 완벽주의임을 인정하고 너무 높은 기준을 내려놓고 힘을 뺀 상태로 이 책을 쓰게 된 목적 하나에만 충실히 하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본문에서 저자가 밝힌 것처럼 완벽주의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완벽해질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부록에 소개되고 있는 “완벽주의 극복 5주 프로그램 워크북”이다. 직접 해보는 것을 추천하지만, 간략히 소개하자면 5주간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주 차에는 나를 가로막는 진짜 장애물을 파악하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연습을 하고, 2주 차에는 비현실적인 기준을 바꾸는 연습을 하고, 3주 차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들여다보며 두려움의 뿌리를 찾는 시간을 갖고, 4주 차에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실수를 기회로 만드는 시도를 해보고, 마지막 5주 차에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기회를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소개되는 체크리스트를 통해 나를 진단해보기도 하고, 마지막 부록에 나와 있는 프로그램대로 시도해보니 정말 중요한 건 스스로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한테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내가 되어야만 완벽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기에 출전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나한테 솔직해졌다면, 그다음은 함께 경기에 출전할 선수를 찾아 개인전이 아니라 단체전 종목을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부록에 나와 있는 5주간 프로그램을 함께 한다면 행복한 완벽주의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