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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몽상가 Aug 25. 2024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배우 차인표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소설가 차인표를 만났다. 알고 보니 그동안 엄청난 독서와 쓰기를 꾸준히 해왔고, 3권의 소설을 집필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 책은 얼마 전 가입한 직장 내 독서 동아리를 통해 추천받은 책이다. 작가님의 책이 옥스퍼드 대학 한국학과의 교재로도 채택되었다고 한다. 조만간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왕이면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가 주목하고, 내친김에 저자가 오스카 영화 각본상까지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세상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슬픔을 잊지 않고, 다시는 이 땅에 순이, 용이, 훌쩍이와 같은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인류가 노력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 제목처럼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모티브가 되었던 사건은 1997년 캄보디아에서 한국 땅을 55년 만에 밟은 '훈' 할머니의 입국 장면이라고 한다. 당시 신혼이었던 저자는 10년 정도의 집필 과정을 거쳐 2009년 <잘가요 언덕>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간했지만, 큰 호응이 없어 결국 절판되었다. 그렇게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2021년이 되어서야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우리 곁에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훈' 할머니의 이야기는 얼마 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108회에서 다뤄졌다고 해서 영상을 찾아봤다. 가슴이 이토록 아파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특히, 훈 할머니(본명 : 이남이)가 부르는 아리랑은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 가장 슬펐다.


https://youtu.be/y0kjFs1_Z6k?si=V2oW9L5tTJ61bmFJ


  소설은 1930년대 백두산 호랑이 마을에 사는 순이, 훌쩍이, 호랑이 사냥꾼 황포수와 그의 아들 용이, 그리고 일본군 장교 가즈오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순이가 바로 소설의 실제 모티브가 되었던 캄보디아 '훈' 할머니다. 물론, 소설 속 순이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작가는 왜 실제 인물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고, 순이라는 어린 소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을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도 순이처럼 어여쁜 소녀 시절이 있었을 텐데 만약 일본군에 끌려가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라는 생각을 독자들이 해주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평온했던 마을에 호랑이를 잡으러 황포수와 그의 아들 용이가 찾아온다. 용이의 엄마와 동생을 데려간 백호라는 호랑이가 이 마을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복수하러 온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황포수와 용이를 친절하게 대해준다. 백호를 사냥하러 마을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순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곳으로 용이를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순이는 다음과 같은 말을 용이에게 건넨다.

"엄마별은 억지로 띄우는 게 아니라, 원래부터 떠 있는 거래, 엄마별은 찾으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의 밤하늘에 떠오르고, 한 번 떠오르면 영원히 지지 않는대. 낮이 되어 밤하늘이 없어져도 엄마별은 지지 않는대, 잠시 보이지 않을 뿐, 늘 그 자리에 있대."

  

  순이가 용이에게 해준 엄마별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해인 수녀님의 <작은 기쁨>에 담긴 가까운 행복이라는 시의 한 구절과 <기다리는 행복>이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나 가치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지, 너무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해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용이의 엄마별도 늘 그 자리에서 용이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친 다음 날 호랑이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다. 무엇보다 논에 심어 놓았던 새싹들이 모두 넘어져 있었다. 모두 어찌할 줄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가즈오의 소대원 중 한 명이 군화를 벗고 군복을 걷어 올린 채 쓰러진 싹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한다. 그러자, 일본군과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하는 장면이 나온다. 작가는 이런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새끼 제비의 시선을 통해 묘사하는데, 그 표현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새끼 제비는 이런 모습을 보며 누가 일본군이고 누가 마을 사람인지 더 이상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일본이 비록 한국을 침략하고 짓밟았지만, 책 제목처럼 같은 별을 바라보게 된다면 한데 어우러져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던 호랑이 마을의 풍경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왜 제목을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했을까? 별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장 정확한 대답은 소설을 직접 쓴 작가님이 해줄 수 있겠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독자의 자유가 허용되는 즐거움이 바로 독서의 매력 아닐까? 책을 읽는 독자는 정답을 맞히기 위해 독서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만의 해답을 찾기 위한 이기적 인간이다. 그래서 나도 이기적으로 별의 의미를 해석해 보았다.

  별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별을 하나씩 갖고 있다. 그리고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님의 책 제목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에서 빛나고 있다. 다만, 그 별을 아직 못 찾은 사람만 있을 뿐이다. 아마도 1930년대 모두가 갖고 싶었던 별은 엄마가 있는 평화롭고 따듯한 안식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고 일본군에 강제 징용된 사람들과 위안소로 끌려간 여성들에게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고통을 버틸 수 있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점점 잊혀가는 그들의 역사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우리와 일본에게 어쩌면 별의 의미는 용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즈오라는 일본군 장교의 독백을 보면서 일본이 해야 할 사과를 그가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이 씨,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 나라에 와 전쟁해서 미안합니다. 평화로운 땅을 피로 물들여서 미안합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당신을 짓밟아서 미안합니다. 순결한 당신의 몸을 찢고, 그 아름다운 두 눈에 눈물 흘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가즈오 대위의 참회는 소설 속 순이를 포함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으로부터 들어야 했던 말이다.

  문뜩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의 역사적 한 장면이 떠올랐다. 1970년 12월 7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빌리 브란트 당시 독일 총리는 2차 대전 때 희생된 유대인을 추모하는 바르샤바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빌리 브란트가 무릎을 꿇자 독일이 일어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굉장한 울림을 준 장면이었다. 다음 해 빌리 브란트 총리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수상이 물론 중요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보여준 진정성 있는 행동 하나가 천 마디 말보다 더 정치적 효과가 크다. 일본과 너무나 비교되는 역사의 한 장면이라 꼭 소개하고 싶었다.


  물론 소설 속 등장인물의 독백이 현실에 존재하는 한 국가를 대변할 순 없다. 무엇보다, 그의 독백이 일본의 사과를 대변한다 해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이 치유되지는 않는다. 솔직히 일본은 앞으로도 가즈오 대위처럼 용기 있게 용서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은 언젠가 각자의 별을 찾아가실 거다. 정부에 등록된 240명의 위안부 피해자 중 현재 8분만 살아계신다고 한다. 그분들도 순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따뜻한 엄마별 곁에서 각자 빛나는 별이 되어 우리의 어두웠던 역사가 잊히지 않도록 환하게 비춰주실 것이다.      

  


  가즈오 대위의 용서를 구하는 독백을 듣다 보니 앞에 나왔던 가즈오의 편지들이 스쳐갔다. 가즈오라는 일본군 장교는 이 책의 첫 번째 장부터 등장한다. 소설의 첫 시작은 1931년의 백두산 마을 이야기로 시작한다.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백두산 마을을 묘사한다. 그런데 일본군 장교로 임관한 가즈오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가 뜬금없이 챕터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일본 천황 만세를 부르며, 조국의 부름에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의에 찬 편지였다. 이건 뭐지? 하며 매우 의아해했었다. 전쟁터를 누비며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던 가즈오는 순이가 있는 호랑이 마을에 도착하고 난 후부터 심경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자신이 호랑이 마을에 온 이유가 미혼 여성을 강제로 징용하기 위한 임무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인간적 고뇌에 빠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순이를 탈출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본군을 따돌리는 행동까지 하게 된다. 순이는 탈출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결국 추격하던 일본군에 붙잡히고 만다. 가즈오 대위는 울부짖는 독백을 끝으로 소설 속에서 사라진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로 처음 소설에 등장한 순간부터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가즈오 대위의 마지막 모습이 어쩌면 일본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보여줬어야 하는 바람직한 변화의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즈오 대위가 처음 장교로 임관하여 국가의 부름에 전쟁터를 나갈 때는 자신의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강인한 신념이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점점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전쟁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무 죄 없는 젊은 여성들이 겪지 말아야 할 참혹함을 목격하면서 국가의 부름에 달려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즈오는 보여줬는데 일본은 보여주지 못했다.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일지 모른다. 그래도 희망을 품어보자. 언젠가는 용서의 의미를 담은 별을 우리와 같이 바라보는 날이 올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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